요즘 한국 사회 미디어의 대세는 ‘민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파묘’는 풍수지리와 무속을 주제로 하여 관객 천만을 돌파했고, 드라마 ‘악귀’는 민속학자와 악귀의 관계를 다루어 시청률 11%를 넘겼다. 덕분에 대중은 콘텐츠에 담긴 민속을 신선한 소재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민속과 궤를 함께해 온 민속학과 이를 연구하는 민속학자의 존재까지도 새로운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다. 민속은 지나간 옛 시절의 고루한 무언가가 아닌, 지금 우리 일상에서 생동하는 ‘생각의 질서’로 조명받는 때가 왔다.
한편, 이러한 사회적 시류에 대해 민속학은 내부의 시선에서 얼마나 외부의 관심에 대해 화답하고 있는가 질문해 보면 나는 늘 한 지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민속학 입문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민속학은 꾸준한 현지 조사와 이론적 검토, 학제 간 토론을 바탕으로 초창기 인접학의 ‘보조학문’에서 하나의 ‘독립학문’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학문 정립에 대한 민속학자의 고군분투만큼, 민속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그 공감대를 형성코자 하는 움직임 역시 걸맞게 이루어졌는가 하면 여기에는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다. 민속학의 깊이만큼, 쉽고 재미있게 풀어 대중의 입소문을 끌어올 대중서가 부족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임승범 작가의 『민속의 착함 삶의 온기를 담다』흐름, 2021은 지극히 대중서의 성격을 띤다. 책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글은 저자가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다룬 민속 이야기를 추려 만들었다. 저자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즐겁게 들어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서 일반 대중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소재거리들을 수면 위에 올려두고 그 기저에 민속이 자리하고 있음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글을 풀어가고 있다.
책은 1부 ‘민속’과 2부 ‘역사’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민속 현상을 화두로 제시하면서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실제 역사적 사실과 결부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난산을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글에서는 부인이 난산을 겪을 때 남편이 지붕 위에 올라가 소 울음소리를 낸다는 전통적 관행에 대해 단지 의미 분석으로만 종결짓지 않고, 『백범일지』의 김구 선생 탄생 스토리를 끌고 와 민속과 역사를 한데 엮는다. 또한, 제주도의 ‘신구간’ 민속에 대해서는 인터넷 광고 사례에 실린 문구를 소개하며, 신이 부재한 기간에 관한 관행이 여전히 제주도민에게 위력 있게 공유되고, 그 배경에 신의 ‘인사발령 시즌’과 인간 살림살이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소개한다.
탄생과 죽음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대해 단군신화, 금오신화, 인물신 ‘단종’의 흥미로운 기록을 함께 훑어보며 민속의 역사적 깊이를 조망하기도 한다. 특히 단군신화에서는 이것이 예로부터 전해오는 단순한 허구적 서사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삼국유사’의 3・7일, 21일만에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내용에 대해 아이가 태어나는 삼칠일, 즉 예로부터 아이가 태어나고 세 번의 칠일동안 지켜왔던 관행들과 견주어 볼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2부는 역사의 기록에서 민속을 찾는 역사민속학의 면모가 엿보인다. 이 파트에서도 ‘전염병 극복방법’, ‘사랑’, ‘여행’ 등 오늘날 우리 일상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주제들이 내용의 주류를 이룬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전염병의 기록을 꺼내 놓으면서, 당시 조정에서 왕과 신하가 머리를 맞대고 병의 확산세를 막고자 공사 중지, 죄수 석방 등 인구 밀집 최소화 정책들을 펴 나아가는 내용에 주목한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오늘날 코로나19 전염 속에서 사람이 모일만한 요인들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들과 맞닿게 된다.
다소 무거운 소재에서 사랑을 길어 올리는 저자의 노력도 확인된다. 『월인천강지곡』에 담긴 소헌왕후에 대한 세종대왕의 애틋한 마음을 풀어내는가 하면, 『월하정인』의 그림과 화제畫題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거쳐 신윤복이 구현하고자 했던 당대의 사랑관을 그려낸다. 또한, 경복궁 낙선재를 놓고 헌종과 경빈 김씨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의 기록으로 살펴 낙선재의 공간, 건축, 문양을 두루 살피기도 한다.
역사에서 민속을 찾는 저자의 시도는 육당 최남선의 ‘전주 여행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남선이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전라도 일대를 답사하고 신문을 통해 연재했던 『심춘순례』라는 기행문을 다루면서,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의 언행과 특징을 공유하고, 그가 여행 중 주목했던 장승, 선돌과 같은 전승 문화와 더불어 현지인을 통해 얻고자 했던 정보의 수집 방식 즉, 민속조사의 시초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민, 민속, 민속학, 민속학자가 원고 한가운데 모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속을 바라보는 민속학에 관점에 대해 저자는 본문에서 말하고 있다.
인간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초월적 존재에게 구하는 절실한 염원,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는 간절한 정성이 만들어낸 문화가 아니었을까요. 혹자는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무식하니까 그렇게 했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붕에서의 추락과 출산과의 상관관계를 굳이 의학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심성과 삶을 대하는 철학의 문제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 중에서)
저자는 “삶을 대하는 철학의 문제”에 대해 본인이 직접 보고 느낀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하여 그 실감을 높인다. 저자가 직접 현장 조사를 다녔던 내용을 토대로 마을 신앙물인 선돌에 얽힌 이야기와 마을의 지리적, 생업적 특징을 종합해 살피면서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그것이 결국 민속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민속조사방법론의 개관을 대중의 눈에서 수긍할 수 있도록 전문용어를 풀어 설명한 내용들이 눈에 띈다.
환경적・역사적 요인의 발생 자체를 주목하는 것은 인접 학문의 몫이며, 환경과 역사 발생 문제에 우리가 대처하는 자세와 방식에 천착하는 것은 민속학의 몫이다. 임승범 작가의 이번 책은 민속학을 중심축에 두고 인접 학문이 다루는 내용까지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 민속에 다소 생소한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대중과 쉽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민속학 포켓북’ 발간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 강석훈_국가유산청 근현대유산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