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깃거리가 많은 지역은 관광지로서 가치가 높다.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건 그곳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뜻이고, 오랫동안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건 거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거나 경제적 혹은 전술적 가치를 지닌 장소가 있다는 의미니까. 관광지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하는 많은 도시가 갖고 있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충청북도 음성에서는 어떤 일들이 어떤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을까.
조용히,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한 공간
음성군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삼한시대였다. 마한의 50여개 국 중 지침국에 속했는데, 이후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가 되었지만 고구려 장수왕에게 정복된 뒤에는 잉홀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많은 수의 고장이 그러했듯, 신라의 땅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시대에 따라 인근 충주와 진천, 괴산 등으로 편입되거나 병합되는 일이 잦았다는 점이다. 고려 시대부터 충주군으로부터 소이면이 편입된 1914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군의 영역과 행정 명칭이 바뀌었다. 하지만 음성군을 무대로 한 치열한 전투를 비롯한 역사적 사건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시간은 한반도 안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평화로운 곳이었다 해도 좋을 만큼 무탈한 역사를 자랑한다. 음성군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였다. 수도권과 인접해 있는 덕분에 다양한 공장들이 속속 입주를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각 읍면마다 최소 하나 이상의 농공단지가 운영되고 있고 대기업과 그 대기업과 연계된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국내 최초의 기업박물관, 음성에 깃들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문화 시설이 일반화된 지금과 달리, 한독의약박물관이 처음 문을 연 1964년에만 해도 ‘먹고 사는 일’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던 시기. 그런 상황에서 한독은 기업박물관을 건립했다.
“당시 이름은 ‘한독약사관’이었다고 해요. 유물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친척의 영향을 받은 故 김신권 회장님이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유물을 전시한 게 한독의약박물관 역사의 시작이었지요.”
이선영 교육사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소재하고 있는 독일약학박물관German Pharmacy Museum을 관람한 후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독은 1954년 창업 이래 세계 굴지의 제약사들과 협력관계를 맺으며 성장한 국내 최고 수준의 제약회사. 1995년 완공된 음성 공장은, 당시 국내 최고 수준의 GMP의약품 생산 및 품질 관리 및 품질 확보를 위한 규정 생산시설을 자랑했다. 공장 가동과 함께 한독의약박물관도 서울에서 음성으로 이전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더 쾌적한 관람 환경과 더 다양한 소장품을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의약학 분야의 많은 원로로부터 상당한 기증을 받은 덕분이었다.
물론 한독의약박물관이 모두 개인이 수집하거나 기증
받은 유물들로 채워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다양한 의약학 유물 2만여 점이 전시 공간과 수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중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6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점,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2점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보물 <청자상감상약국명합>은 상감 기법이 사용된 상약국명합고려시대 국왕 의료기관인 상약국의 이름이 적힌 청자으로, 보물 『의방유취』 제201권 1책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초판본으로 그 명성이 높다. 교육 프로그램의 인기도 상당하다. 매월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직접 자신의 손으로 알약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청자상감상약국명합>의 모형을 제작하거나, 간이 청진기를 만들어 신체에 대해 공부하는 프로그램 등이 인기라고 한다. 그래서 이선영 교육사는 자신 있게 한독의약박물관으로 모두를 초대했다.
“이름만 보면 딱딱하거나 어려울 거라 생각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직접 우리 박물관을 방문하신다면, 그런 편견은 모두 사라질 거라 장담합니다. 저를 포함한 박물관 구성원 모두가 더 재미있고 즐거운 관람과 체험을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더 건강한 인류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노력의 기록을 부지런히 갈무리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시간과 흔적이 모여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한독의약박물관이다.
역사가 되는 산업 현장들
흥미진진한 팩토리투어
음성에는 크고 작은 기업들이 활발히 생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 업종도 의약품부터 우유와 소시지 같은 식품들, 화장품 같은 미용품과 욕실용품까지 다양하다. 모두 음성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기업들이 생산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한독의약박물관 한편의 팩토리 투어센터에서는 이렇게 음성에서 생산된 대표 상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팩토리 투어센터는 그린팩토리를 중심으로 왼편의 플레이팩토리와 오른편의 투어팩토리로 구성돼 있다. 그린팩토리는 식물과 함께하는 휴식 공간이며, 플레이팩토리는 팩토리투어 센터의 체험 프로그램과 한독의약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진행 공간, 투어팩토리는 음성 소재 12개 기업의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철 박물관
이름 그대로 철에 관한 모든 것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철의 발견부터 활용, 산업과 역사에서 철이 가진 의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사용하던 석축형 제철로부터 동국제강 부산제강소에서 25년 동안 쇳물을 끓이던 전기화로도 전시돼 있다. 덕분에 실물을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중후장대 장비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차가운 금속성으로만 가득한 공간은 아니다. 박물관 뒤편으로는 산책하기 좋은 코스와 정자도 준비돼 있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다. 입장료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8월까지는 야외 전시만 진행하고 있다.
감곡매괴 성모순례지 성당
1896년 건립된, 작은 명동성당처럼 보이는 이 성당은 프랑스 출신의 임 가밀로 신부가 세웠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사제 서품을 받고 여주에 부임한 그는, 어느 날 발견한 너른 기와집이 서 있는 땅을 보고 성당을 짓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있는 집을 허물 수는 없는 일. 매일 같이 성모 마리아에게 도움을 간구했는데, 어느 날 그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모두 불타 없어져 버렸다. 알고 보니 그 집은 민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민비가 시해된 후 민응식이 서울로 압송되자 의병들이 조직을 규합하는 본부로 사용했고, 이를 알게 된 일본군이 불태워 버린 것. 임 가말로 신부는 신속히 부지를 매입해 지금의 성당을 건축했다. 그때 이후부터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까지 성모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성모 순례지라는 이름도 그런 연유로 얻게 되었으니, 아름다운 풍경과 신비로운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미니인터뷰
언제나 재미있는 박물관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선영(한독의약박물관 교육사)
“한독의약박물관 재밌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후기에요. ‘재미’라는 단어에는 정말 즐겁다는 뜻도 있고, 유익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한독의약박물관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 한독의약박물관이니까 배울 수 있는 교육을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이 교육을 왜 한독의약박물관에서 해야 하는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우리 박물관만의 특별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2019년부터 시작된 국립민속박물관과의 인연이 새삼스레 고마워집니다. 2021년 ‘찾아가는 어린이박물관 – 신비한 마법의 방’으로 민속박물관과 함께 첫 사업을 시작하고, 2022년에는 교육개발지원사업으로 ‘신비한 몸속 탐험’을 개발했거든요. 그 사업 덕분에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올해는 교육운영지원사업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요. 음성군은 문화 시설이 부족한 곳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관이지요. 특히 2021년에 진행한 ‘찾아가는 어린이박물관’은 참여했던 초등학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아주 많았습니다. 어린이 대상 전시가 부족했던 우리 박물관에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고요. 앞으로도 전시물 기반 학습이라는 박물관 교육의 특징에 맞는 교육을 만들고, 그 교육을 지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 정환정_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