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예부터 경치가 아름답고, 오곡이 풍성하여 사람 살기 좋기로 이름난 곳이다. 경상도의 상尙자가 유래된 고을로,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수륙교통과 군사요충지로 그 역할을 이어 왔으며, 지금도 오랜 역사의 향기가 눈길 닿는 곳마다 묻어난다. 상주의 역사문화를 오늘에 담아, 내일을 잇는 상주박물관이 그곳 상주에 가면 있다.
사벌국에서 상주까지, 유구했던 역사의 현장
상주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삼한시대 때부터. 사벌국沙伐國 혹은 사량벌국沙梁伐國이라는 이름의 부족 국가로 번성을 시작했는데, 사벌국이 신라와의 관계를 끊고 백제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가자 신라 장군 석우로가 토벌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사벌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라에서는 이곳을 합병한 후 사벌주로 불렀고 525년법흥왕 12년에는 2경 5주 중 하나인 상주독음은 같지만 당시엔 上州였다로 이름을 바꾸었고, 757년경덕왕 16년에 지금과 같은 상주尙州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신라가 이처럼 상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이곳이 백제와의 접경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흥왕 때는 1개 군단을 두었고, 진덕여왕 때는 김유신 장군을 상주행군 총관으로 임명했으며, 무열왕은 김유신, 품일, 흠춘 등의 군사가 백제정벌을 위해 출전하자 상주 금돌성에 머물다 의자왕의 항복 보고를 받고 소부리성으로 떠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1314년고려 충숙왕 원년 상주와 경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경상도라 이름하였고, 1408년태종8년 상주목에 경상도 본영이 설치되고, 1459년세조 5년에는 진鎭이 설치되며 명실상부 경상도의 중심지가 된 상주는 한시의 끊임없이 변모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런 깊고 뚜렷한 역사의 발자취를 한눈에 돌아보기 위해서는 상주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역사의 모든 순간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상주다운 공간
상주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007년. 가칭 ‘상주박물관건립자문위원회’가 결성된 지 9년 만이었다. 개관과 함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상주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것은 당연한 일. 그런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상주박물관은 상주의 역사와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한계를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지역 박물관으로서 가용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 그럴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곳이 국립민속박물관이었다고 한다.
“2013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의 민속생활사협력망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교육을 위한 교재개발에 대한 지원을 여러 차례 받을 수 있었지요. 2017년에는 공동기획전이 열렸는데, 덕분에 오랫동안 상주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계시는 종가의 종손과 종부들을 만나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조연남 학예연구사는 “상주에는 총 17개가 넘는 종가가 여전히 그 위상을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 체계화된 정리작업이 진행된 적은 없었다”며 당시 공동기획전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자칫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소중한 유무형의 민속 유산들을, 국립민속박물관의 지원을 통해 최대한 정성스럽게 갈무리해 전시를 진행하는 한편 개막식날 도록도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주박물관 단독으로는 해낼 수 없는 작업이었다는 조연남 학예연구사는 “공동기획전 덕분에 박물관과 저 개인의 역량 모두가 상당히 향상되었다”며 웃었다.
그런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일까. 상주박물관은, 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 순식간에 관람객의 이목을 잡아끄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낙동강을 오가던 배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로비는, 상주가 아늑하면서도 장엄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은유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대담한 구성 덕분에 전시에 대한 기대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상설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는 유물들은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주가 한반도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들. 분지이면서도 낙동강과 접하고 있는 덕분에 물자와 사람이 활발하게 오가는 요지였고, 그래서 인심이 후하고 문화적 수준이 높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혹은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사려 깊은 전시를 이어오고 있는 상주박물관은, 농경문화관이라는 별관은 물론,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전시를 위해 활용하는 실용적인 면도 돋보인다. 자투리 공간들을 활용한 어린이체험실과 기증유물실, 작은 전시 등은 상주박물관이 관람객에게 더 즐겁고 수준 높은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 상주가 얼마나 많은 보물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건,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상주 추천 여행코스
경천대
상주는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본격적인 남하를 시작하는 지점. 그래서 예로부터 낙동강의 여러 구간 중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바로 “하늘이 스스로 만든 아름다운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경천대다. 상주 및 인근의 선비들이 달 아래 배를 타고 시회를 즐겼던 ‘뱃놀이시회낙강시회’의 오랜 전통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상주 이곳저곳을 잔잔하게 굽이치며 돌아가는 낙동강이 너른 벌판을 휘돌아 가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경천대에서는, 상주가 얼마나 넉넉한 품을 갖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경천섬
경천대와 멀지 않은 곳에 경천섬이 낙동강 한가운데에 떠 있다. 계절마다 연이어 꽃이 피어올라 나들이에 더 없이 좋은 이곳은, 총 4개의 코스로 구성된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걷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장소를 찾기 힘들 정도. 그늘이 부족한 환경을 보완하고자 곳곳에 천막을 쳐놓았는데, 그 모습이 낭만적이기에 경천대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에게 “인증샷 맛집”으로 손꼽히고 있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 섬에 닿을 수 있다는 점도, 그 어느 곳보다 깊은 낭만을 자아낸다. 주변에 낙동강문학관과 상주의 맛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곳도 함께 있다.
자전거박물관
상주가 전국 최고의 자전거 이용률을 자랑하는 도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분지 형태인 덕분에 상주 자체는 평평한 지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자전거 애호가들에게는 성지聖地와도 같은 곳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상주다. 상주와 자전거의 인연 그리고 역사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1층 기획전시실과 고전, 이색, 레저 자전거들을 다양하게 관람할 수 있는 2층 상설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는 이곳 박물관은 한 번이라도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아울러,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돋보인다.
미니인터뷰
모든 관람객이 상주를 더욱 깊게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초대합니다
-조연남(상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상주박물관은 시내와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이곳에 이르는 길도 “한적하다 못해 오지로 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시는 분도 계실 정도고요. 분위기가 굉장히 정적이지요.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면 경천대와 경천섬, 자전거박물관, 상주국제승마장,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이웃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곤 반가워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물론 저희 박물관 자체만으로도 일부러 찾아온 보람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야외 놀이터와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도 준비돼 있을뿐더러, 박물관 마당에는 사방치기 같은 전통놀이를 할 수 있는 구획도 정리돼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패드 키오스크 등이 설치된 전국 최초의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박물관으로 도약하는 한편 어르신을 위한 ‘큰 글씨 안내문’을 비치하는 등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답니다.올해 상반기에는 “인쇄출판, 역사와 지혜의 숲을 만들다”라는 타이틀로 기획전시를 진행 중입니다. 상주의 독특한 인쇄출판문화는 물론, 대한민국의 인쇄출판문화의 전반적인 변천 과정을 보여주자는 기획으로 구성된 전시지요. 물론 대승기신론소와 같은 보물은 물론, 유럽의 인쇄물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는 전시이니 꼭 관람하시길 바랍니다.아울러 현재 증축을 진행 중인 수장고가 완성되면 관람객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한 수장고 탐방과 유물 보존처리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므로 앞으로도 저희 박물관의 향후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 정환정_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