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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집과 가족을 지켜주는
가신과 단지

전통사회에서 주거공간은 가족들의 생활을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의례가 행해지는 신앙의 공간이었다. 공동체의 단위인 마을을 지켜주는 마을신[洞神, 동신]이 있다면, 가정에는 집안의 안녕과 재산을 지켜주는 가신家神 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마을신을 모시는 의례는 주로 남성이 주재한다면, 집안의 가신은 주로 여성이 의례를 주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신줏단지
우리나라 가신은 신체가 보이지 않는 ‘건궁’ 형태가 많은데, 일부 집안에서는 가신이 머무는 공간에 독이나 단지에 햇곡식을 넣어 바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마루에 성주단지, 안방에는 조상단지, 부엌에 조왕단지, 헛간에 용단지, 집터에 터주단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단지의 크기는 약간씩 차이를 보이나 이렇게 똑같은 단지를 각각의 공간에 모시면서도, 인식을 달리한 것은 각각의 가신이 갖는 직능을 달리 인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주단지와 용단지는 항아리를 사용하며 가신 단지 중 가장 크고, 그다음이 터주단지, 조상단지, 조왕단지 순이다. 그리고 조왕단지는 매일 청수水를 떠서 갈아주지만 나머지 가신의 단지는 가을걷이를 하고 나서 햇곡식이 나면 묵은 곡물을 햇곡물로 교체해준다. 곡물로 애용되는 것은 주로 벼, 콩 등이다.

성주단지 앞에서 행하는 성주 제사

일반 단지에서 신령의 용기로
가신의 단지는 특별히 제작된 것이 아니라 일반 단지나 사발을 사용하나 허리가 넓고 보기 좋은 단지를 고른다. 가신단지가 되는 순간 그 단지와 사발은 성물聖物로 인식하고 관리에도 세심한 신경을 쓴다. 만약 단지가 깨지기라도 하면 불길한 일이 발생한 징조로 여겼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신줏단지로는 조왕단지민속80967, 조상단지민속80966, 터주단지민속 90624가 있다. 이들 단지는 모두 기증품인데, 조왕단지민속80967와 조상단지민속80966는 2019년 김오성 씨가 기증한 것으로 주암댐1984~1991 건설로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흥리 고향 집이 수몰되면서 이주할 때 보관한 단지이다. 그러나 조왕단지민속80967는 김 씨의 어머니가 부엌에서 모셨다는 제보와 그 재질이 사발인 것을 보면 조왕단지로 사용한 것이다. 조왕단지는 위가 넓적하고 운두가 낮으며, 바닥면에 굽이 달린 형태이다. 표면에는 ‘壽’, ‘福’자 새겨져 있는 우리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던 밥그릇이다. 크기는 높이가 6.7cm, 바닥지름 5.5cm, 입지름 20cm이다. 조상단지는 조상의 혼령을 위한 단지로 민간의 조상숭배를 볼 수 있는 한 형태이다. 조상단지는 구연이 입과 바닥의 지름이 비슷하고 허리둘레가 배가 부른 형태로, 바닥은 납작하다. 크기는 높이 7.4cm, 입지름 8cm, 바닥지름 7.2cm이다.

 

단, 조상의 혼령을 담긴 것으로 생각하는 조상신은 조상단지와 신줏단지의 형태로 다소 구분이 되는데, 조상단지는 사당이나 벽감에 모신 조상4대봉사과 달리 모든 조상을 숭배하고, 1개를 마련한다. 반면 신줏단지는 위패나 신주독을 대신하는 것으로 조상제사의 대수代數와 마찬가지로 4대 이내로 4개를 놓거나 각 대의 부부를 별도로 해서 8개까지 놓기도 한다. 또 신줏단지 안에는 쌀이나 한지를 넣고, 한지에는 조상의 이름을 적기도 하고 뚜껑이 있는 대바구니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단지 형태로 모시는 또 하나의 가신이 터주인데, 터주는 집터를 지키고 관장하는 신으로, 보통 곡물을 넣은 단지를 짚주저리로 씌운 후 뒤뜰이나 장독대 근처에 둔다. 아래 사진의 터줏단지민속90624는 2017년 김재옥옹진군 연평면씨의 기증품으로 그 모양은 배가 부른 항아리 형태로 표면 중앙에 2줄의 음각선이 둘러 있고 내면에는 무늬가 음각되어 있는데, 적어도 15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터주단지는 집터 뒤쪽 장독대 주변에 있기에 일반적으로 뚜껑을 닫아 쥐로부터 곡물을 보호한다. 크기는 높이 22cm, 입과 바닥지름이 각각 22.5cm로 동일하다.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하여 다루는 모양을 ‘신줏단지 모시듯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단지는 비록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조그마한 항아리에 불과하지만, 신령이 깃든 단지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가신 숭배가 거의 사라지면서 신령 단지를 보기가 어려워졌고, 과거 가신 단지만 덩그러이 남아 있는 경우는 그 생명력이 다한 것이다. 이제라도 전국의 박물관이 나서 가신 단지를 수집하고, 그것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글 | 정연학_민속연구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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