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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걸어갈 길

새롭게 다시 태어날 국립민속박물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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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시점으로 박물관을 말할 때, 그 화법은 창의적이고 기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열정 가득한 예술가 출신의 장인경 ICOM 부회장. 그런 그가 박물관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박물관을 열어 관장을 맡기까지,
국제박물관 커뮤니티의 주요인사가 된 그에게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자 민속 연구기관이라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자랑스러운 나의 국립민속박물관
박물관에서 일하는 여러 인사 중에서도 유난히 맵시가 돋보이는 장인경 부회장. 깊이 있는 식견을 갖추면서도 그 언어는 발랄하고 소탈하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친절한 자문가’라는 별칭을 듣고 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그가 귀한 시간을 낸 것은 국립민속박물관에 대한 깊은 애착 때문이다.

“2004년에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대회가 열렸어요. 당시 제가 조직위원 중 한 사람으로 국제위원회 코디네이터를 맡았거든요. ICOM의 국제위원회는 다양한 분야의 박물관과 전문직의 네트워크로 교육, 전시, 보존 등 박물관 관련 전문 분야를 중심으로 현안을 논의하고 교류하는 활동을 합니다. 2004 ICOM 서울대회의 주제는 ‘박물관과 무형유산’으로 박물관이 물질 중심의 사고를 획기적으로 변환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2007년 박물관이 다루는 자료와 활동에 ‘무형유산’을 포함하는 ICOM 박물관의 정의를 개정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국립민속박물관은 그 당시 대회에서 국제생활문화박물관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for Museums and Collections of Ethnography와 협업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주요 논제에 기여할 수 있었죠. 세계 박물관인이 모이는 대회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은 국가 기관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열린 사고를 발휘하며 국제 박물관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행사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06년부터 국제저널 무형유산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을 발간해 현재까지 세계무형유산에 대한 인식 증진과 보호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린 시각과 전문성에 대해 국립민속박물관의 학예사, 관계자들께 지금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친을 오마주하며 예술가에서 박물관장으로
현재 장인경 부회장은 국립민속박물관 국제저널 무형유산 편집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토록 그가 박물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유년 시절 가정의 영향이 컸다.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엘리트 예술학도였던 그에게 아버지는 유물의 가치를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당시 제강공장에서 가족과 살며 고철이 철근이 되어 나오는 것을 직접 보면서 자랐지요. 어린 나이지만 산업 현장의 역동성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선친께선 문화유적에도 조예가 깊으셨는데, 아버님과 함께 불국사,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등을 다니며 저 역시 자연스럽게 문화유적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가 어린 시절 보고 자란 ‘철’은 그가 철박물관을 운영하게 된 모티브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님의 오마주로서 존경의 의미가 담겼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기계에 워낙 관심이 많았던 아버님은 오래된 기계가 지금도 가동되는 광경을 ‘이런 기계들을 들여와 우리나라에서 전시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겠다’, 말씀하시며 열성을 보이셨죠.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가족들은 선친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고 그렇게 철박물관을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철박물관에는 철의 탄생부터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각 시대와 공간별로 인류를 이롭게 해준 철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등록문화재 제556호 전기로는 1960년대 본격화된 한국 산업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로 철박물관 대표적인 소장자료다. 박물관 야외에선 예술가의 창의성이 더해져 잘 가꾸어진 정원과 조각 작품이 어우러져 박물관의 미적, 기능적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분리에서 융합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할 때
“우리나라 박물관은 미술관과 과학관의 경계가 특히 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요. 백자 항아리라는 오브제로 전시를 한다면 미학적으로는 예술품이지만, 백자를 굽는 기술과 흙이 도자기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과학적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겠죠. 하지만 생활사를 통해서도 백자의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듯, 오늘날 박물관들이 고전하는 이유가 콘텐츠를 분리함으로써 과거의 것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시대가 진화하고 사람들의 관심사가 변해가는 추세에 맞춰 박물관도 바뀌어야 한다고 장인경 부회장은 조언한다. 우리나라 역시 그 흐름에 맞춰 융합된 형태의 새로운 기획전이 선을 보이고 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가 주최하고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주관한 ‘2023 박물관·미술관 주간’ 사업이 좋은 예라고 장인경 부회장은 말한다.

“사업에 선정된 한양대학교박물관의 ‘치유의 파빌리온’ 전시는 대학의 최대 장점인 다양한 학문 분야의 협업이 크게 돋보였어요. ‘박물관, 지속가능성과 웰빙’이라는 올해 세계박물관의 날 주제를 동아시아 특유의 구조물을 통해 공간이 주는 치유의 즐거움으로 경험할 수 있게 했어요.”

눈에 보이는 자료에 사람들이 직접 필요로 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21세기 박물관의 커다란 흐름이다. 과거에 수집된 유물을 미래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미래를 위한 현재의 박물관 수집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박물관과 종사자들의 연대를 통해 공동체를 지향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이 시대 박물관의 역할이라 그는 강조한다.

“미국은 박물관 커뮤니티가 매우 발달해있어요. 이들은 한국과 같이 중앙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이 거의 없음에도 미국박물관연맹을 통해 자발적으로 전문성을 교류하고 콘텐츠 연구와 윤리의식을 공유하는 등 열린 마인드로 자신들의 기준과 규칙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국내 박물관은 주인의식을 통한 연대와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 다소 아쉬운 대목입니다.”

2022년 국립민속박물관 국제학술대회 자유토론 장면

국립민속박물관은 즐거움을 아는 전문가들
외국의 좋은 사례는 우리나라 박물관의 학문적 토양과 연구의 다양성을 풍성하게 해준다. 전 세계 곳곳의 박물관을 지켜본 그의 편력은 박물관의 수준과 규모가 천차만별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박물관이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그의 눈에 비친 국립민속박물관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얘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연구의 깊이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이에요. 그동안 쓰레기전, 청바지전 등 여러 기획전을 둘러보면서 굉장히 시의적절한 주제를 선정하고 디자인 역시 유쾌하고 흥미 있게 꾸며놓은 모습을 보며 매번 감탄해왔어요. 그럼에도 안타까운 점을 들자면, 민속에 대해 다소 학문적 천착에 몰두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는 학문에 근거해 문화를 해석하는 것과 민속문화를 보여주는 것은 분명 다른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박물관에서 ‘유물’보다 ‘자료’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요즘, 이 두 가지 범주는 박물관 운영자들이 깊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펜데믹도 우리 역사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사건이에요.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은 남들이 생각지 못한 것을 파고들어 항상 먼저 시도한다는 점에서 굉장한 장점을 지닌 곳입니다. 자료조사를 위해 전국 곳곳을 누비며 조사와 연구에 몰입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은 뭐랄까, ‘즐거운 전문가’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 시대의 리더로, 성공하는 박물관이 되기를
이제 국립민속박물관은 세종시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국립민속박물관의 재탄생을 앞두고 장인경 부회장은 희망찬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그동안 서울 경복궁에 위치하면서 국내외 관람객들을 위해 많은 것을 보여줘 왔습니다. 변화는 그 자체보다 어떻게 변화를 맞을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잖아요. 익숙한 것과의 이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변화를 어떻게 주도할 것인지 신중하게 고민할 시기인 것 같아요.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는 것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영구히 자리 잡고 그동안 축적된 국립민속박물관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저로선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일상문화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기록해야 하며, IT와 AI 등 기술의 발전이 10년 뒤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더불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이 노골화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국립민속박물관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우리의 전통 문화와 정체성에 큰 위기가 찾아온 시기라고 생각해요. 어느 국립박물관보다도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박물관계와 전문직을 위해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왔습니다. 세종시에 새 둥지를 틀게 되면, 소박한 민중의 시선으로, 유쾌한 일상의 이야기로 미래의 국내외 박물관 협력을 주도하는 시대의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글 | 장인경_철박물관 관장,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부회장
인터뷰·정리 | 임도현_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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