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미술관이 변화하고 있다. 가장 은밀하고 보수적인 공간인 ‘수장고’를 공개함으로써 대중들과의 거리를 한층 더 가깝게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기존 경복궁내 국립민속박물관의 수장고를 떠나 파주의 새 보금자리로 이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이삿짐을 싸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 역시 ‘개방’이라는 시류에 동참,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수장고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개방형수장고로 여는 새 시대
수장고 이전과 관련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유물과학과 직원들의 시간을 빌리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전과 관련된 세부사항을 담당하고 조율하면서 ‘무사 이전 완료’라는 중책을 맡은 임세경 학예연구사와 황경선 학예연구사의 일정을 비집고 들어가는 건 더욱 어려웠다. 임세경 학예연구사가 유물과학과로 발령을 받아 이사 준비를 시작한 것은 2018년, 이전 대상 소장품을 실사, 정리하고 포장하면서 전반적인 메인 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그에게 이듬해 9월 황경선 학예연구사가 합류하면서 수장고 이사 준비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파주 수장고 이전 계획은 2014년도부터 짜여 지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7월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개방형수장고 건물 건립이 착수됐고 유물과학과에서는 기존 수장고의 방대한 소장품을 실사·정리하는 한편, 파주 수장대의 배치와 격납 계획까지 수립하느라 지금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서울에서 파주까지 완전히 자리를 잡는 프로세스상 현재 약 40%가 정도 진행됐고 소장품 포장 작업은 88% 정도 진행이 된 상황입니다.” 임세경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수장고 이전의 배경은 국립민속박물관이 문화재청 ‘경복궁 2차 복원정비계획’에 따라 2031년까지 철거해야 하는 계획안에서 파생되었다. 본관 이전에 앞서 수장고를 먼저 파주로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의 수장고가 이미 포화상태여서 더 이상 새로 입수되는 소장품을 격납할 공간이 부족했던 것도 보다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개인이 살던 집도 이사를 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시간이 소요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1966년부터 경복궁에 자리를 잡아 왔던 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의 이사는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알 법한 고생담을 청하자 임세경 학예연구사와 황경선 학예연구사가 온전히 해탈한 듯한 미소를 짓는다.
첫째도 소장품의 안전, 둘째도 소장품의 안전
이전 준비 내내 두 학예연구사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바로 수장고의 주인인 ‘소장품’이다. 민속박물관의 특성상 모양도, 재질도, 용도도, 너무나 다른 수많은 소장품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주로 그대로 옮겨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어마어마하게 느끼고 있다는 소리다. 소장품의 포장에서 운송 격납에 이르기까지 유물과학과 직원 하나하나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이며, 따라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파주 수장고 이전과 개관 준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 대략 12만 점의 소장품 중 10만 점이 이사를 가는 상황에서 동전 하나까지도 제대로 포장해 출발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파주 수장고에 격납될 때까지 유물과학과의 그 누구도 발 뻗고 편히 잘 수 없는 상황이다. 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년 상반기 개관을 앞두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수장고는 기존의 여느 수장고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설 예정이다. “현시대 관람객들의 니즈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지요. 파주 수장고 역시 ‘개방형’이라는 새로운 색깔을 갖고 시작하는 만큼 전시적인 성격과 교육적인 성격이 더해지면서 복합문화시설의 면모를 갖추게 될 거예요. 박물관 직원조차도 아무나 볼 수 없는 폐쇄적인 수장고를 관람객이 직접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체가 100% 달라지는 거니까요.”
파주 수장고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로비에 타워 형태로 된 유리 수장고 6개를 만날 수 있다니 벌써부터 개방형수장고에 대한 기대감이 모락모락 치솟아 오른다. 그러나 황경선 학예사는 박물관 직원으로서 갖는 걱정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단순히 투명한 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관람객이 수장고에 직접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불러오는 우려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같은 경우에는 수장대 위에 작품을 노출시켜 놓고 관람객들이 그 사이를 지나다니며 여러 각도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놨어요. 정말 과감하게 노출을 한 셈인데 개관 이후 단 1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합니다.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데 사실 미술관과 박물관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몇백 년 혹은 그 이상 되는 오래된 유물의 경우 아무리 작은 손상이라도 치명적이에요.”
상시 오픈을 할 것인가, 시간차를 두고 관객들의 인원수를 제한할 것인가, 운영관리 차원의 고민이 지금도 계속되는 이유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갈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개방형수장고가 갖게 될 선한 영향력과 대중들에게 선사할 즐거움에 대한 믿음도 갖고 있다. 12만 점이나 되는 소장품이지만 전시·노출되는 빈도가 그 양에 비해 많이 적은 상황에서 박물관이 가진 걸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의미, 공개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소장품과 연계된 수많은 정보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는 것이다.
“전시 방식도 본관의 전시와는 좀 많이 다를 거예요. 스토리 중심에 다양한 매체들로 체험요소가 가미된 전시보다는 소장품 자체에 집중하여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거예요. 예를 들어 소반이 주제라면 다양한 여러 유형의 소반을 등장시켜, A소반과 B소반을 비교하고 조형적인 면이나 지역적인 특색에 집중하는, 좀 더 직관적인 방식의 전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잘 정돈된 새집에 들어가는 기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상쾌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그 과정의 고단함과 힘듦을 제3자가 세밀하게 아는 건 불가능하다. 매 순간 확인하고 살피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때로는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며 ‘개방형수장고’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사람들. 이들이 안팎에서 쏠리는 이목에 대한 부담감과 걱정을 덜어내고 일에 매진할 수 있는 건 윤성용 관장의 한마디 덕분이다.
“전시는 가장 완벽할 때가 폐막할 시점이 다가와서입니다. 오픈했을 때의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을 계속 채워 나가다 보면 폐막 시점에 와있을 때는 완성에 다가가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부족하면 바꾸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가면 되는 겁니다.”
이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상반기,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수장고가 문을 여는 순간, 유물과학과 사람들은 그때부터 또 다시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치열한 레이스에 서게 되지 않을까? 임세경 학예연구사와 황경선 학예연구사가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또 부지런히 달려 나간다. 한가득 풀어놓은 자신의 짐들을 마저 싸기 위해.
글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