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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글을 그리다

5세기 전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어떤 이들은 ‘디자인’한다. 디자인이란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 하는 것’이다. 한글 서체 디자이너 장수영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일이 디자인이라는 개념의 ‘기본’에 가장 충실한 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영 작가가 서체 디자인에 끌린 것도 이 작업이 그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한글 서체 디자이너 장수영을 만났다.

 

Q. 한글 서체를 디자인한다는 건 일반인에겐 낯선 개념이다. 작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장수영_워드 프로세서에 보면 서체를 선택하는 칸을 클릭할 수 있다. 그 많은 서체들은 누군가가 디자인 한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의 모양을 디테일하게 그리는 거다. ‘ㄱ’을 하나 디자인한다고 해도 그 ‘ㄱ’이 들어가는 글자의 경우의 수를 모두 생각해야 한다. 쌍기역일 때, 또 받침이 될 때 등등 경우에 따라 모양이 다 다르다. 그것들을 전부 디자이너가 조율해야 한다. 일러스트 프로그램 안에서 일일이 그리는 거다. 자음과 모음이 일렬로 늘어서 단어가 되는 알파벳과 달리, 한글은 네모꼴 안에 자음과 모음의 위아래 위치가 다르고, 그에 따른 굵기와 크기 등을 생각해 공간을 분배해야 한다.

 

Q. 자음과 모음만 디자인하면 나머지는 컴퓨터가 조합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장수영_일반인이 한글 서체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나오는지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자음 모음 열 몇 개만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니다. 모든 글자의 경우의 수를 전부 생각해서 디자인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온갖 신조어들이 등장하고, 인터넷 채팅창에서는 기상천외한 단어들이 타이핑된다. 예를 들어 ‘뷁’ 같은 단어도 타이핑이 되려면 디자이너가 그 글자를 디자인해야 하는 거다. 그렇게 글자들이 모두 깨지지 않고 타이핑되기 위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풀 세트가 1만1천172자가 된다. 물론 그건 정말 힘든 일이고, 일반적으로는 KS 코드라고 해서 한글표준규격이 있다. 거기에서 규격으로 삼는 게 2천350자다. 근데 이게 1970년대에 제정된 거라 시대 상황에 맞춰 몇 백자를 추가해 작업한다.

 

Q. 지금 금호미술관에서 펜바탕 레귤러서체를 전시하고 있다. 작업을 오래했다고 들었다

장수영_서체 하나 만드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규격화해 말할 순 없다. 다른 일도 하면서 하니까. 이번 작업은 2014년부터 시작했다. 방일영 문화재단의 한글 글꼴 창작지원사업 공모에 당선돼 지원을 받아 시작했다. 만으로 4년이 넘었다. 작년에 마포 디자인출판지원센터에서 「양장점 펜바탕 전시회」를 가져서 일단 발표를 했다. 같이 작업하는 양희재 씨가 알파벳을, 내가 한글을 맡았다. 펜바탕 서체는 펜으로 쓰는 손 글씨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글자의 기울기, 비뚤비뚤 미묘한 손 글씨의 질감을 살려야 해서 구조적으로 복합적인 일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세 번 정도 갈아엎었다.

 

장수영의 최근작 ‘펜바탕 레귤러’는 펜으로 쓰는 손 글씨 느낌을 살린 서체다

 

Q. 사실 장수영하면 격동고딕이 유명하다

장수영_정확히 말하면 ‘산돌격동고딕체’다. 대학교 4학년 때 산돌커뮤니케이션으로 취직을 했는데 6개월 간 인턴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서체를 제안하는 게 인턴 과제였다. 그런데 마침 졸업 작품도 만들어야 해서 ‘졸작’ 겸 인턴 과제를 겸해서 만든 게 격동고딕체였다.

 

Q. 인턴이자 학생 신분으로 만든 첫 작품이 유명해진 건 이례적인 일이다

장수영_운이 좋았다. 회사 선배들 도움도 많이 받았고.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시기를 잘 탄 것 같다. 이름도 뭔가 복고적이고. 사실 ‘격동’이라는 이름을 넣는 것에 선배들은 너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걱정을 하기도 했다. 서체는 하지만 그때는 ‘격동’이란 단어에 꽂혀서···(웃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물론 저작권은 산돌에 있다(웃음). 나는 회사에서 격동 고딕과 굴림까지 제작했고, 다른 후배가 명조를 만들어 ‘격동 시리즈’를 완성했다.

 

한글 서체 디자인은 적어도 2천350가지 경우의 수를 감안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Q. 글자를 디자인하는 진정성에 마음이 끌려 한글 서체 디자이너가 됐다고 들었다

장수영_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처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건 아니다. 이것저것 해보며 하나씩 쳐내는 경우였다. 광고도 했고. 그런 과정에서 ‘디자인이란 뭐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부딪혔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은 제품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게 경쟁상품에 비해 얼마나 좋은지 설득하고, 어떻게 치장해야 매력적으로 보이는지에 중점을 둔다. 본래 모습보다 치장하고 포장하는 데 집중하는 게 나는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주에서 ‘한글 서체 디자인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최종호 선생의 전시를 보게 됐다. 우리가 늘 쓰는 바탕체를 만든 그의 작업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피상적으로 뭔가를 꾸미는 게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를 만지고 그린다’는 그 작업이 근본적인 고민으로 보였고 큰 의미로 다가왔다. 우리가 문서 프로그램 안에서 무심코 골라 쓰는 서체들을 누군가 고생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Q. 회사에서 독립해 나와 바로 양희재 씨와 양장점을 차렸다

장수영_나의 성씨와 그의 성씨를 조합해 ‘양장점’을 만들었다. 한글 서체를 만드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은데, 독립 디자이너들은 몇 십 명 정도 된다. 기본적으로 시장이 정말 작다. 회사를 나와 유학을 생각하던 시기, 마침 막 유학을 다녀 온 양희재 씨를 만났다. 그와 함께 해 나의 한글과 그의 알파벳 디자인이 만나면 한글과 라틴 알파벳이 모두 가능한 ‘완전체’ 글자체가 탄생하는 거다. 그 첫 작업이 ‘펜바탕 레귤러’였다.

 

장수영의 격동고딕체와 펜바탕체를 이용해 편집한 책들

 

Q. 강연도 하는 걸로 안다. 한글 서체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

장수영_아직 한글 서체 디자인 역사가 얼마 안 된다. 한글이 창제되고 나서 역사가 단절되지 않았나. 양반의 공식적인 문자는 끝까지 한자였고 한글은 개인적인 문자로 명맥을 이어왔다. 일제강점기도 있었고. 그래서 역사가 6백년 가까이 된 글자지만 한글 디자인 자체는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한글 조형은 아직 실험 단계라는 것. 해볼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장점이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정말 어렵다. 나도 좀 더 살아봐야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알 것 같다(웃음). ‘해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하지는 못하지만 창작 차원에서만 보면 확실히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은 분야다.

 

Q.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장수영_아직 ‘펜바탕 레귤러’ 작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스펙’을 맞추는 작업이 남아있다. 글자가 더 추가가 될 수도 있고, 디자인이 수정될 수도 있다. 그 이후에는 양희재 씨가 디자인한 라틴 알파벳 디자인을 내가 한글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재미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가지고 있다.

 

펜바탕체는 씬, 레귤러, 세미볼드, 헤비가 모여 한 벌을 이룬다

 

Q. 한글 서체 디자이너로서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은가?

장수영_하나의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 한글 서체 시장은 여전히 개척 단계라 우리 양장점처럼 독립 스튜디오로 생존을 해나가는 데 참고할 만한 선례가 거의 없었다 대학 교수로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분들이 간혹 작업을 내놓거나 아예 회사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우리처럼 독립 스튜디오 개념의 디자이너는 정말 드물었다. 다만 긍정적인 것은 워드 프로세서의 서체도 저작권이 있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같은 독립 스튜디오들이 나름의 생존에 성공해서 같은 직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아, 이렇게 살면서 이런 작업을 했구나’라는 걸 보여주는 선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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