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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팬데믹 시대에 알맞은 우리의 차는?

1662년에 영국 해군력이 필요했던 포르투갈은 캐서린 브라간자Catherine of Braganza 공주를 영국 왕 찰스 2세Charles Ⅱ와 정략결혼시킨다. 공주는 결혼 지참금으로 인도 서해안의 항구도시 봄베이Bombay와 자신이 마실 차를 잊지 않고 가져왔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봄베이를 발판으로 거점을 확장하여 19세기 중반에 인도 북동 아삼지역을 영국 국민을 위한 홍차 대량생산기지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영국에서는 성인 인구의 80% 이상이 차를 마시며, 50% 이상은 매일 마신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조치Lock down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심리적 안정과 위안’과 ‘수분섭취, 그리고 친구·가족 간의 교류를 위해서’ 홍차를 더 마시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홍차 판매량이 약 50% 이상 증가했다.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에 따르면, 태국인 유학생 키티 차 상마니Kitti Cha Sangmanee는 1983년에 프랑스의 마리아주 프레르Mariage Frères를 인수한 후 마르코 폴로를 포함하여 수많은 가향차를 직접 만들어 대박을 쳤다. 그냥 ‘홍차’를 마시던 시절에 품종, 떼루아, 가공방법 등 차의 맛과 향의 차별성을 중요하게 여길 시대를 예견하여, 고급화와 다양화를 도모했다. 불과 40년이 지난 지금은 영국의 포트넘앤메이슨, 해롯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유수의 차 회사로 유명해졌다. 2021년 파리의 본점을 찾았을 때, 프랑스 사람들은 물론 필자 역시 수백 개의 차 메뉴에서 뭐를 마실까 고르느라 매우 즐거웠다. 태국인 젊은이 한 명이 프랑스의 홍차문화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올린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영국 차 회사들은 왕실의 이벤트를 홍차 마케팅에 잘 활용해 왔다. 1907년에 창립한 포트넘앤메이슨은 백화점 본점 4층에 있는 애프터눈 티로 유명한 세인트 제임스 레스트런트를 2012년 재오픈하면서 다이아몬드 주빌리 티 살롱The Diamond Jubilee Tea Salon이라고 명명했다. 오픈 행사에 온 엘리자베스 여왕이 포트넘을 상징하는 ‘민트색’의 원피스를 입은 것이 놀랍기만 하다. 2020년 어렵게 예약해 먹을 수 있었던 애프터눈의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의 맛은 여왕과 함께하는 듯한 잊히지 않을 감동을 손님들에게 주고 있었다. 그런 포트넘은 2015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최장 재위의 기록을 갈아치우자 케냐 홍차를 중심으로 블렌딩한 ‘퀸스 블렌드Queen’s Blend’를 내놓았었다. 1952년 공주였던 엘리자베스가 영연방 국가인 케냐에 머물 때 아버지 조지 6세가 사망했고, 거기서 바로 여왕에 즉위한 것에 착안한 것이다.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차 생산량은 약 650만 톤이다. 이중 약 300만 톤을 중국이 생산한다. 그 뒤로 인도, 케냐, 스리랑카가 있다. 중국의 녹차와 인도의 홍차 생산량 대부분은 자국에서 소비된다. 따라서 차 수출량으로 보면 세계 1위는 케냐이며, 케냐의 외화소득 1위 상품 역시 놀랍게도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커피’가 아니라 홍차이다. 대부분 생산지가 표시되지 않은 티백제품에 블랜딩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런 영연방 케냐의 홍차산업을 영국왕실과 포트넘이 합작해서 브랜딩화해서 띄운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세계 차 생산량 가운데 6대 다류의 비율을 보면 홍차50%-녹차36%-흑차7%-청차5%, 백차·황차2%의 순이다. 이 중 홍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차가 중국에서 생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 차대부분 녹차 생산량은 4,061 톤으로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0.0624%를 차지한다. 미미한 수준이지만, 강진·김해·남원·보성·제주·하동 등의 차 산업은 분명히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차 시장이 많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은 차 관련 박람회뿐만이 아니라 시골의 차밭과 찻집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부쩍 는 것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매우 부족하다고 차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전한다. 우리 차문화 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부를 포함한 차인들의 다양한 노력이 모색되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17세기경부터 영국 런던과 교외 지역에는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이 즐기는 좀 고급스런 놀이공원으로 ‘플레져 가든’Pleasure Garden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남자가 숙녀에게 관심이 있으면 실수인 척 치마를 밟고 사과의 뜻으로 차를 대접하겠다고 제안한 것이 유행이 되어 ‘티 가든’Tea Garde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765년 라넬라그 가든 로텐다Ranelagh Garden Rotunda 홀에서는 9살 음악 신동 모차르트의 연주회를 비롯해서 다양한 공연과 실내행사가 이어졌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장소와 행사에서 차를 마시게 되면서 홍차는 점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에게는 물론,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영국 사람들이 찾는 사랑받는 음료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홍차의 여왕 엘리자베스 버금가는 인기를 가진 K-drama와 K-pop 등 인기절정을 달리는 한류스타들이 있다. 물론 올림픽, 월드컵 그리고 국빈만찬을 비롯하여 다양한 세계적인 행사들도 얼마든지 개최할 수 있는 국력도 있다. 그런 이벤트들에 맞춰서 부대행사로서 또는 만찬 시의 식전 ‘차’로 그해 만든 우리의 명품 차를 대접하는 것은 어떨까? 커피나 탄산음료 대신 차를 공급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우리 차문화 산업의 발전과 우리 차의 대중화를 위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부분이다.

(좌) 구례 고차수 공현식 대표의 행다 모습, (우) 하동 진주요 홍우경 작가의 하동차박물관에서의 케이팟(K-pot) 전시

일본녹차 하면 다도茶道 즉 끓어앉아서 큰 사발에 녹차 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 대나무 솔차선로 휘저어 마시는 맛차말차: 抹茶를 생각한다. 그러나, 다도는 일부 일본인 만의 취미생활일 뿐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녹차를 우려 마시거나 그조차도 어려워서 RTD1) 형태로 마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마저도 별 인기를 끌지 못한다. 스타벅스 등에서 파는 녹차라떼 등의 판매량이 느는 것에 힌트가 있을까? 얼마 전 제주도 올티스 달빛차회에서 이원희 대표가 올해 말차로 만들어준 녹차라떼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요즘 녹차를 만드는 우리 장인들은 홍차나 백차, 청차를 가리지 않고 잘 만든다. 아직은 배우는 중이고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라 아쉬운 점도 없지 않지만, 고차수의 공현식 제다장인을 비롯한 일부 명인들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우리 수제 녹차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일본의 찐 차와 다르게 덖은 차의 구수한 맛은 그냥 우렸을 때 그 강점을 충분히 발휘한다. 녹차는 홍차와 다르고 우유와의 상생력에서 보다 떨어진다. 우리 녹차는 그냥 우리 좋은 물에 홍우경 작가가 만든 백자 K-pot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공들의 차 도구에 우려 마시는 게 정말 최고인 듯하다. 차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홍차 애호가인 조지 오웰 역시 설탕을 넣지 말라는 등의 제안을 오래전에 한 것으로 안다.

프랑스의 예에서 봤듯이, 우리 역시 지난 10여 년간 고품질 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차에는 카페인이 적고 카데킨, 테아닌 같이 커피 속에 없는 성분이 들어있어 이들이 카페인의 인체 내 흡수를 줄여준다. 따라서 같은 한잔을 마셔도 차를 마셨을 때 흡수하는 카페인양이 최종적으로 더 적다. 테아닌은 신경전달물질이며 인지능력 향상, 집중력 강화에 도움을 주며, 긴장 완화를 통해 몸과 마음에 여유를 준다. 커피는 날카롭게 정신을 깨우고, 차는 편안하게 정신을 맑게 한다고 보면 된다. 21세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커피일까, 우리의 녹차일까?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국민건강과 함께 우리 농업 보호를 위해서라도 차에 대한 수요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코로나 시대 영국 국민이 겪는 경험은 비단 영국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인의 공통적 일상과 다르지 않다. 팬데믹으로 각종 스트레스가 쌓여가기만 하고 있는 요즘, 일상으로 돌아가는 어쩌면 평상심을 되찾게 해주는 우리 차 한 잔의 여유를 찾아봐야 한다.

1) Ready-to-drink의 약자로 유리병이나 캔, 페트병에 들어있는 음료를 말한다


글 | 하도겸_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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