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양조장釀造場이 등장한 지 백 년의 세월이 지났다. 술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 할 만큼 긴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해왔지만 국가로부터 면허를 받고 상업적인 전문 시설을 갖춰 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일제강점기인 1916년 주세령酒稅令 시행 이후 술이 과세의 대상이 되면서 국가의 통제와 규제 아래 있는 양조장에서만 술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양조장에서만 술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가양주家釀酒로 전승되어온 우리 술 문화는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양조장은 우리 일상생활에 친숙한 공간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일반적으로 양조장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시가지市街地나 읍‧면‧동 소재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양조장 주변에는 시장 ‧ 초등학교 ‧ 경찰서 ‧ 우체국 ‧ 대형마트 ‧ 면사무소 등 지역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공공기관이나 편의시설이 밀집해있어, 근처에 거주한 이들은 한 번쯤 고소한 술밥 냄새를 맡고 텁텁한 밀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매일 같이 양조장을 드나든 사람들 중에도 양조장의 ‘속살’을 본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출입구 앞에 있던 사무실 또는 판매실에서 술을 살 수 있었지만 술을 만드는 내부 공간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외부인 통제구역이었다. 그만큼 양조장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잘 알지 못했던 곳이었다. 이 글에서는 양조장 내부 공간 중 가장 ‘은밀하고 특별한’ 두 공간을 함께 들어가 살펴보기로 한다.
#1 오감으로 술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발효실
발효실醱酵室은 술을 만드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덧술과 발효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실제로 양조장에서는 ‘담금’의 일본식 표현인 ‘사입실仕込室’이란 표현을 가장 많이 쓰지만, 최근에는 순화된 표현으로 담금실, 숙성실 등으로도 불린다. 술을 만들지 않는 양조장은 있을지 몰라도 발효실이 없는 양조장은 없을 만큼 발효실은 양조장에서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공간이다.
양조장에 들어가 보면 실내 온도가 외부와 확연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발효실은 에어컨을 틀었나 싶을 정도로 여름철에도 한기를 느낄 수 있다. 술을 원활하게 발효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온도 관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발효실은 독특한 구조와 건축양식을 적용해 지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벽체의 두께다. 현재 남아 있는 양조장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진 1930년대 양조장 발효실도 대부분 굉장히 두꺼운 벽체로 지어졌다. 대개 500~800㎜ 정도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안에는 왕겨나 수수깡 등을 넣어 단열 효과를 높였다. 천장에도 왕겨나 가마니를 넣어 사방으로 단열 효과를 높였다.
또한 벽면과 천장에는 환기를 위한 창을 갖췄다. 벽체의 두께에 따라 문도 상당히 두꺼우며 이중문을 만든 곳도 많다. 지열을 활용하기 위해 발효실을 지하 구조로 설계한 곳도 있다. 1931년에 준공된 충남 논산시 양촌양조장이 이에 해당한다. 양촌양조장의 발효실은 반지하 구조로 입구에는 꽤 깊은 계단이 있다. 지하 구조는 단열에는 탁월하지만 덧술 작업 등을 위해 직원들이 드나들기에는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양촌양조장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자 술밥을 식히는 냉각실을 발효실 바로 위에 두고 바로 덧술을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사람의 작업 동선을 최소화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한 지혜가 돋보이는 구조다.
발효실은 말 그대로 술이 익어가는 공간이다. 발효실은 들어가는 순간부터 향기에 취할 정도로 술 냄새로 가득하다. 발효실에 있는 원주原酒는 제성(술을 거르는 공정)하기 전 상태의 약 13~14℃의 술로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보다 도수가 높다. 혹시나 발효실 항아리에 담겨 있는 술을 덜컥 많이 맛보았다가는 걸어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발효실에서는 술이 익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또 술이 발효되면서 활발히 움직이는 미생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청량한 소리와 함께 술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완성된 술만 먹었던 사람들에게는 분명 생경한 광경일 것이다. 충북 충주시 주덕양조장은 발효실에서 술의 발효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좋아지듯 미생물도 음악을 들으면 발효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덕양조장의 발효실은 항상 술 익는 소리와 클래식 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술은 기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술은 적절한 환경과 기술, 그리고 정성이 함께해야 비로소 잘 만들어질 수 있다. 술을 ‘빚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경남 함양군 마천양조장 발효실에는 정화수 그릇 하나가 항상 놓여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양조장을 지금까지 이어나가고 있는 곽옥근 사장은 아침에 양조장에 도착하면 항상 발효실부터 들려 정화수를 떠놓고, 오늘도 술을 잘 빚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린다. 마치 농부가 풍년을 기원하듯 좋은 술이 나올 수 있게 기원한다. 이때 치성을 드리는 공간이 바로 발효실이다. 비단 마천양조장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양조장에서 행해졌던 치성이나 고사는 대부분 발효실에 이뤄졌다. 발효실은 술의 성패成敗를 좌우하는 곳이고 양조장의 핵심이며 가장 신성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2 가장 은밀하고 통제된 공간, 국실
국실은 술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발효제를 만드는 공간이다. 전통방식의 막걸리나 약주(청주) 제조법에는 반드시 누룩이 들어갔다. 따라서 용수나 술 항아리가 전근대사회 술을 빚던 가정의 필수품이었듯이 누룩 틀도 한두 개쯤은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전에 건축된 막걸리 양조장에서는 발효제를 만드는 별도 공간이 없었다. 주세령 시행 이후, 전통 누룩도 별도의 면허를 받은 제조장에서만 만들 수 있었기에 양조장에서 자체적으로 누룩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실은 1960년대 들어 양조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1957년 이후 주질酒質의 안정성과 맛의 향상을 위해 막걸리에 입국을 넣는 것을 국세청에서 권고하게 되면서 국실은 빠르게 보급된다. 1962년 처음 시행된 주세법 시행령 시설기준에도 막걸리 제조장에는 국실을 반드시 둬야 하는 것으로 명시되었다. 기존 양조장은 1962년을 기점으로 국실을 별도로 증축하게 된다.
입국을 만드는 과정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입국은 쌀, 보리, 밀가루를 찐 후 순수 배양한 곰팡이 종국을 접종 ‧ 배양한 누룩으로, 첫 단계인 파종부터 마지막 단계인 출국까지 총 48시간이 필요하다. 종국의 번식과 발아가 잘 될 수 있게 보쌈, 뒤집기, 입상, 갈아쌓기 등의 중간 과정을 거친다. 2~3시간마다 수차례에 걸쳐 반복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의 정교한 손길이 필요하다. 양조장에서 숙직실이 있는 것도 입국 제조의 영향이 컸다. 지금은 자동으로 온도를 조정하는 장치가 있어 숙직을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밤에도 정기적으로 국실의 상태를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기술자나 보조 기술자가 교대로 양조장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들을 생략하거나 시기를 놓치면 입국이 제대로 뜨지 않아 결국 술맛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실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양조장 직원이라 하더라도 허락을 맡은 사람만 국실에 출입할 수 있었다. 국을 만드는 기술자는 양조장 내에서 소수일뿐더러 그들은 기술을 다른 직원, 심지어는 사장과도 공유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국실은 양조장 내 가장 은밀하고 통제된 공간이었다. 국실의 위치가 대부분 양조장에서 가장 깊숙한 공간에 있거나 사무실 근처에 있는 것도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감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백 년의 세월을 지나온 양조장이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동안 우리는 일상적으로 술을 마시면서도 ‘술의 맛’이라는 결과물에만 집중한 나머지,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양조장의 은밀한 공간을 들쳐보니 우리가 마시는 술은 양조장이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버텨온 만큼이나 술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 어린 마음과 노력이 녹아든 축적물이었다. 우리가 양조장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글_김승유 |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