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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이 전하는 조상들의 여름나기

엄청난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날, 다들 어떻게 더위를 극복하셨나요? 연일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하고 일 평균 기온은 30도를 웃돌았습니다.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는 실내에서 나오기만 하면 땀이 흐르는 이런 더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손풍기’라고 불리는 휴대용 선풍기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손에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약 1~2년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현대인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를 틀고, 길에서도 선풍기 바람을 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전기가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이런 무더위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무더웠던 지난날을 떠올려보며 우리 조상의 여름나기 물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 시대의 손풍기, 부채

현대인에게 휴대용 선풍기인 손풍기가 있다면 그 시절 우리 조상에게는 부채가 있었습니다. 부채는 ‘부치는 채’라는 뜻으로 과거에는 귀한 물건으로 여겨져, 국교품으로 다른 나라에 진출되기도 했습니다.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여름이 다가오는 단오에는 부채를 선물하던 풍습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선물용으로도 사용되던 부채는 그 속에 명필의 글씨나 그림을 그려 선물하게 되면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부채에 글씨를 쓰는 것과 관련하여 추사 김정희와 부채 장수에 대한 일화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팔덕선
부채
합죽선

어느 날 김정희가 외출하고 돌아오니 집에 부채 보따리가 있어 청지기에게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부채 장수가 부채를 팔러왔다 날이 저물어 하루 묵고 가기를 청했다고 전했다. 김정희는 이야기를 듣고는 문득 부채에 글씨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청지기에게 부채 보따리를 가져오라 해 부채에 쓰고 싶은 글귀를 써 내려갔다. 이를 본 부채 장수는 부채를 다 버리게 되었다며 슬퍼했다. 그런 부채 장수에게 김정희는 장에 가서 추사 선생이 글씨 쓴 부채라 하고 가격을 몇 곱절을 더 부르면 너도나도 사 가려고 할 것이라 귀띔해주었다. 그날 부채 장수는 순식간에 부채를 다 팔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나 속담에서 알 수 있듯 부채는 우리 조상들에게 여름철 필수품이었습니다. 현재에는 전기의 공급, 기술의 발달에 의해 부채 사용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여전히 관광 상품으로나 장식품, 예술 행위의 도구, 무당이 사용하는 의례용 도구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기능성 의류, 등등거리와 등토시

등등거리는 여름철 웃옷 안에 받쳐 입던 것으로, 등나무 줄기를 가늘게 쪼개서 엮어 조끼 모양으로 만든 여름 상의입니다. 이는 여름철 웃옷과 살이 직접 닿지 않게 하며 옷과 피부 사이의 공간으로 바람이 통하게 해 통풍을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옷에 땀이 배지 않는 효과도 있었지요. 등등거리와 함께 사용했던 등토시는 팔뚝에 착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등등거리와 같이 등나무 줄기로 만들어졌으며 그 역할 또한 같습니다. 『임원경제지』 3권 섬용지贍用志 의 기록에 의하면 말총으로 만들거나 털을 넣어 만든 등등거리와 등토시는 모두 값이 비쌌다고 합니다. 또 서민들은 대나무나 담쟁이풀, 모시풀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등등거리와 등토시는 양반과 서민 모두 즐겨 입었던 우리 조상들의 여름나기 의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등등거리
등토시
죽부인

그 시대의 바디 필로우, 죽부인

‘열대야’라는 말을 아십니까? 열대야는 밤이 되어도 실외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무더위가 지속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런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이후, 열대야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낮에 몸이 매우 피곤한 상태를 일컫는 ‘열대야 증후군’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여름철 잠을 잘 이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나 봅니다. 우리 조상들도 잠 못 이루는 여름밤,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자기 위해 죽부인을 사용했습니다. 죽부인은 대나무를 쪼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침구입니다. 크기는 꼭 사람만 하며 긴 원통형 모양에 얼기설기 엮인 대나무의 안은 비어있어서 그 공간 사이로 공기가 통해 숙면을 가능하게 합니다. 죽부인은 집안의 남자들이 사용하는 물건이었으며 아버지가 사용하던 죽부인을 아들이 쓰는 것은 금기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죽부인을 같이 태웠습니다.

그 시대의 테라스, 평상

나무 또는 대나무로 만들어져 사람이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만든 대를 평상이라고 부릅니다. 바닥이 듬성듬성하게 짜여 있어 바람이 잘 통하여 여름에 사용하기에 알맞습니다. 이런 평상에서 사람들은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으로 시골 마당에 놓고 부채질을 하며 그 위에서 수박이나 옥수수를 먹는 모습을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테라스처럼 우리 조상들은 평상에서 더위를 피해 잠을 청하거나 일상생활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조상의 여름나기 물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더위를 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통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 옷과 살 사이의 통풍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등등거리와 등토시, 잘 때 이불 속에 바람이 통하게 해주었던 죽부인, 바람이 통하게 짜인 평상 등 모두 자연의 이치인 더위를 자연으로 다스리려는 우리 조상의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 잘 반영된 여름나기 물건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조상의 여름나기 물건을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바람 솔솔 통하는 시원한 여름의 끝을 바라면서 말입니다.

글_장윤정 | 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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