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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즐기다

봄,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 찾아왔다. 한참을 웅크리다 기지개를 켜듯 겨우내 추위에 시달리던 나무는 푸른 잎과 꽃망울을 틔운다. 파릇하게 돋은 잎 위로 불그스름한 꽃이 피는 것처럼 봄을 맞이하는 우리 마음 속 설렘이란 씨앗도 이제 막 잎이 돋아나 간질간질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은 어느덧 봄을 알리는 노래가 되어 있다.

사랑하는 그대와 단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노래 가사에 표현된 봄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광, 이 광경을 좋아하는 사람과 공유하고픈 들뜬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에 발표된 지 7년여가 지났지만 지금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아닐까?

봄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나 보다. 유숙劉淑의 「수계도권修禊圖卷」이라는 그림에 적힌 글을 보면 찾아온 봄날을 즐기는 선비들의 심상이 잘 드러나 있다.

佳處終南雨洗塵 경치 좋은 곳 남쪽에 비가 그치고 먼지를 씻어내니
羣览修禊秉蘭辰 여러 사람이 모여 난정에서의 수계를 보는 것 같네.
明山讀書憑遐矚 명산에서 책을 읽으며 멀리 경치를 바라보고
曲水流觴憶古人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잔을 흘려보내니 옛사람이 생각나네.

「수계도권」 중 일부분

「수계도권」은 1853년 삼짇날, 서울에 거주하는 중인中人 30여 명이 남산에 모여 개최한 수계脩禊 모임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렇다면 삼짇날 수계는 어떤 행사일까? 삼짇날은 월과 일에 각각 3이라는 숫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양기가 강한 날로 여겨진다.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떠났던 제비가 돌아오는 시기이자, 따스한 봄기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은 많은 사람들이 냇가를 찾아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 묶은 액을 털어버리고, 신에게 복을 기원하는 계제사禊祭祀를 지냈다. 계제사가 끝난 뒤에는 시냇물에 술잔을 띄워 마시며 시를 짓고 봄 경치를 감상하기도 하였는데, 353년 진나라 왕희지王羲之가 난정蘭亭이라는 정자에서 수계 연회를 개최한 이후로 이 행사는 선비들의 모임으로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개최되는 한편, ‘수계’, 또는 ‘난정의 수계’는 봄을 노래하는 시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민간에서도 삼짇날은 남녀노소가 즐기는 봄 명절이었다. 나물이나 새로 올라온 순을 채취해 만든 음식은 긴 겨울을 감내해 온 사람들에게 새봄이 주는 축복이었다.
막 피어난 진달래꽃을 꺾어 둥글게 빚은 찹쌀가루 반죽에 얹은 화전花煎을 만들어 먹고, 진달래꽃과 곡물가루를 섞어 반죽해 면을 만들고 오미자를 우린 물에 넣은 수면水麵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음식 자체가 봄기운 가득한 영양식일 뿐만 아니라 산과 들에 나아가 이 음식을 즐기는 방법 또한 봄을 맞이하는 축제와 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봄은 설렘이 가득한 계절이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듯 사람들도 저마다 마음속에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 근간 미세먼지로 공기가 좋지 않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바깥 활동이 꺼려지는 시기이지만, 봄은 그 이름만으로도 겨울을 지나온 모든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글_임슬기 |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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