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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풍속화

우린 밖에서 먹어요

과거에 외식은 대개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먹는 행위였다. “우리 오늘 외식할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면 아이들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너무 좋아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반대로 엥겔지수 높아질까 걱정하는 어머니는 속으론 좋으면서도 겉으론 밥하고 반찬이 넘쳐나는데 무슨 외식이냐고 일단 만류하고 보셨다.

 

요즘 “우리 오늘 외식할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외식은 일상다반사니까. 외식인류外食人類. 그들은 집에서 먹는 밥보다 외식이 더 익숙한 2010년대말의 신인류다. 대한민국 외식 산업을 이끄는 그들의 손에는 편의점 도시락, 간편식, 음식 배달앱이 들려 있다. 외식인류의 하루 식단을 보자.

아침에는 주말에 사온 간편식 새우볶음밥을 데워 먹고 나온다. 밖에서 사온 음식을 집에서 먹는 반 외식이다. 점심은 당연히 외식이다. 오피스 빌딩 지하에 넓게 자리한 푸드코트는 메뉴 선택의 폭이 넓고 ‘가성비’가 좋아 동료들과 식사하기에 좋다. 점심을 혼자 먹는 날에는 어김없이 편의점 도시락이다. 요즘은 ‘편도’가 어찌나 잘 나오는지. 퇴근 후 회식이 있으면 자동으로 외식. 집으로 곧장 가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해놓은 간편식 돈까스에 맥주를 곁들여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주말? 적어도 한 끼는 배달 앱으로 음식을 시켜먹어야 주말에 대한 예의 아닌가?

 

옛날 기준으로 요즘 외식인류를 판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이 좀 바쁜가. 집밥 만들려면 손이 좀 가는가. 세상에 ‘맛집’은 얼마나 많으며 엄마 손맛 뺨치는 간편식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외식인류의 외식 명분은 끝이 없다. 그들이 진짜로 외식에 만족하는지 알아보려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긴 여가를 이용해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지 여전히 외식을 하는지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18세기와 19세기를 살았던 프랑스 법률가 장 브리야 사바랭이 남긴 잠언을 21세기 외식인류에게 들려주면 그들은 뭐라고 답할까?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다오.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일러스트레이션_이우식
글_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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