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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야구, 관중과 호흡하다

 

야구는 온 국민이 즐기는 인기스포츠다. 야구시즌이 되면 많은 이들이 경기장을 찾고 있다. 2010년, 이미 누적관중 1억 명을 돌파했고, 2억 관중 돌파도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다. 국민스포츠라고 해도 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야구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 이병훈 야구해설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프로야구 출범과 관중문화의 변화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했다. 당시 정권은 국민들의 정치적인 관심을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 출범을 서둘렀고, 그 시작이 어떤 의도였든 프로야구는 전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범 당시 프로야구팀은 MBC청룡,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즈, 삼미 슈퍼스타즈 등 6개 팀이었다. 각 구단이 본거지를 둔 지역의 팬들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구장을 찾아 더욱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다.

“1986년에는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었고, 1990년에는 MBC청룡이 LG트윈스로 팀명이 변경되었습니다. 1991년에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프로야구에 진출하면서 총 8개 구단이 되었습니다. 당시엔 정말 야구팬들이 열성적이었습니다. 지금도 프로야구 시즌이 되면 많은 야구팬들이 경기장을 찾지만, 그때는 상상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인기였죠.”

 

1990년, MBC청룡으로 화려하게 입단하여 프로야구를 시작한 이병훈 해설위원은 당시 응원문화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야구가 인기였던 만큼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아직 응원문화가 성숙해지지 못했을 때였다. 매 경기마다 관중들이 싸우고, 음주를 한 후 그물망에 올라가고, 경기장 안으로 콜라병이나 음료수 캔을 던지기도 했다. 연패한 팀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갈 때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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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패하면 관중들이 그 팀의 구단버스 앞에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야구선수들은 전투경찰버스를 타고 귀가하기도 했지요. 야구가 유일한 여가생활이었고, 야구를 사랑했던 만큼 과격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안전요원들도 있고, 관중문화가 많이 성숙해지면서 과격하게 행동하는 관중들은 설 자리가 없어졌지요. 선수들 역시 경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요.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 나름의 추억이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지금의 야구선수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야구중계, 야구에 재미를 더하다

 

지금도 재미있는 입담으로 높은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이병훈 해설위원이지만, 야구선수 시절에는 다른 선수들이 하지 않는 톡톡 튀는 행동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홈런을 친 뒤 환호하고, 팬들을 향해 다양한 제스처를 보내는 그의 세레모니는 어린아이들이 따라할 정도로 화제였다. 게다가 찬스에 강했고, 주말경기나 TV중계를 하는 경기에서는 유독 실력을 발휘했기에 대중들에게 더욱 사랑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80~1990년대만 해도 한 달에 2~3번밖에 야구중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계를 할 때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야구시즌이 되면 거의 매일 야구중계를 하니까 야구선수들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얻고, 동기부여도 하는 것 같습니다. 대중들 역시 굳이 야구장에 가지 않아도 매일 야구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요.”

그는 부상으로 인해 야구선수를 그만둔 후 하일성 해설위원의 권유로 야구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2000년 SBS 야구해설위원으로 시작해 이후 KBS N, SPOTV 등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해까지 야구경기를 생생하게 해설해 왔다. 현역시절의 경험에 더해진 날카로운 분석과 재치 있는 입담 덕분에 그의 해설은 마니아층까지 형성되어 있다.

“캐스터 혼자 야구중계를 해도 되지만 해설위원이 있는 이유는, 경기를 재미있게 풀어서 이야기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야구경기가 4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해설 없이 보면 지루하거든요. 특히 요즘에는 ‘재미’를 많이 요구합니다. 뉴스까지 재미있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선수들이 열심히 하지 않을 때는 따끔한 말도 잊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은 수준 높은 경기를 볼 권리가 있기 때문이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야구해설은 긴장의 연속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자칫 말실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진행, 야구선수 행동, 관중들의 응원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해설위원들의 대사와 감정에도 변화가 생긴다. 이병훈 해설위원도 야구해설을 하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경험했다. 바로 대한민국 선수로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선수가 은퇴하던 경기중계에서였다.

“박찬호 선수가 마지막으로 등판하고 선수대기석으로 내려가서 앉아 있더라고요. 카메라가 박찬호 선수의 얼굴을 계속 클로즈업하는데, 눈에 눈물이 점점 차오르는 게 보였어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와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죠. 사실 박찬호 선수가 마지막쯤엔 성적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선수로 뛰었던 건 야구를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거든요.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눈물이 안 멈춰서 참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야구, 관중들을 참여시키다

 

올해 프로야구에는 840만688명의 관중이 찾아 역대 최다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2년 연속 800만 관중 돌파 기록이다. 많은 스포츠 중에서도 야구의 인기가 대단하다. 야구시즌에는 경기티켓을 구하기 위한 예매전쟁이 벌어지고,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에는 정규방송 편성까지 취소하고 야구중계를 하고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은 유독 야구에 열광할까?

“야구는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이 같이 있습니다. 농구나 축구는 공을 골대에 넣기 위해 선수들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관중들이 선수의 행동을 미리 파악하거나 전술을 생각해낼 틈이 없죠. 하지만 야구는 생각할 시간을 줍니다. 만약 투수가 공을 잡고 있으면 관중도 투수가 됩니다. 변화구를 던질까, 약간 오른쪽으로 공을 던지면 어떨까 함께 고민하는 거죠. 한 게임에서 관중들은 투수, 타자, 감독의 역할을 모두 해볼 수 있습니다. 야구는 관중들을 참여시키고 함께 호흡합니다.”

야구선수, 그리고 은퇴한 후에는 야구해설위원으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야구와 함께해온 그에게 마지막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야구’를 주제로 전시를 한다면 어떤 것을 담고 싶은지 물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현재 10개 구단의 선수들 유니폼과 야구장비에 사인을 받아서 진열하고 싶습니다. 현재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장소가 없습니다. 역대 레전드로 평가 받는 야구선수들의 야구 관련 소품들도 함께 전시하면 좋을 듯합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도 계실 텐데, 만약 전시를 한다고 하면 가족분들이나 팬분들이 기증하실 수도 있고요. 준비하다보면 의미 있는 전시품들이 수집되지 않을까 합니다.”

글_이병훈 │ 야구해설위원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0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활동하다가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를 거쳤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SBS 야구해설위원으로 변신하면서 이후 KBS N, SPOTV 등으로 자리를 옮겨 활약했다.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그는 최근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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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장원준 댓글:

    이병훈 해설위원 이렇게 보니 또 새로운 면이 있으시네요.앞으로도 해설현장에서 재미있고 깊이 있는 해설을 들었으면 합니다.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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