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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민속보고서

가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다

 

스타일 디렉터로서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의 스타일을 만들어왔다. 2014년 12월, 우연한 기회로 MBC 예능프로그램인 ‘복면가왕’에 사용될 가면을 만들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가면은 보통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분야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다. 그러나 방송에서 쓰일 가면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면이 아니었다. 얼굴과 가면이 붙어서도 안 되며 탈부착도 쉬워야 했다. 연예인들이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불러도 화장이 번지거나 머리가 헝클어지면 안 됐다. 이러한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줄 자신이 없어 몇 번을 거절했지만, 결국 수락하게 되었고 그렇게 가면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번에 전시도록인 <신의 표정 인간의 몸짓, 중국탈 : 김학주 교수 기증전>(2002)에 관한 글을 요청 받았을 때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락을 한 것은 이러한 가면과의 인연 때문이다.

 

탈, 다양한 의미와 특징을 담다

 

전시도록에는 중국탈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세계 대부분의 민족이 문명의 초기단계에서부터 탈을 제작하여 착용하였다고 한다. 탈은 곧 가면이며, 대부분 상장례喪葬禮와 귀신을 쫓는 의식이나 원시 무용 등에 사용되었다. 예로부터 중국 사람들은 영혼이 머리에 있다고 믿어왔는데 죽은 사람의 얼굴을 가리면 영혼이 도망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얼굴을 덮은 것에 영혼이 묻어나 주술적인 힘이 생긴다고 믿어 탈을 귀신을 내쫓는데 사용하였다. 동물모양을 한 야수형, 사람과 야수의 혼합형, 장군형, 속세형 네 가지로 만들었으며 각각의 특징이 뚜렷했다.

특히 중국의 탈 중에는 연희와 관련된 탈의 종류가 가장 많다. 중국의 연희탈 대부분은 종교, 제사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연희와 제의의 직접적인 관계 유무에 따라서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 번째는 공연 중간이나 끝에 제의가 등장하는 연희로 지희, 운빠둔 놀이, 경극 등이 속한다. 두 번째는 연희의 방식을 빌려 종교적인 제의의 내용과 과정을 표현하면서도 그 성격이 이미 연희화되어 있는 부류다. 오락적인 성분이 끊임없이 강조되지만 그 종교적인 성격의 틀은 연희의 기본적인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이렇듯 아주 오래 전부터 제작되었던 탈은 저마다의 특징과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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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역시 출연하는 연예인의 개성에 맞게 가면을 제작해야 했다. 단순히 화려하거나 멋진 모양이 아니라, 의미를 담아내야 했다. 사진자료를 통해 중국과 한국의 탈들을 모두 살펴보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모든 가면들을 구입해서 분석하였다. 부자재들을 결합하여 개성 있는 가면들을 만들어보는 일을 수십 차례 반복하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반가면오페라가면은 화려하고 멋스러운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지만, 하관과 헤어스타일이 들어나 누구인지 숨겨야 하는 프로그램 취지와 맞지 않았다. 스판덱스 소재의 레슬링가면은 얼굴을 다 가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쓰고 벗기가 힘들며 메이크업을 해야 하는 연예인에게는 맞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 탈은 얼굴도 가려주고 메이크업도 번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딱딱한 박소재가 부드러운 피부에 마찰을 일으켜 불편함을 주었다.

 

가면에 대해 연구를 하는 동안 방송날짜는 다가왔고 이렇다 할 가면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네오프렌이라는 원단을 떠올렸다. 원단시장에 가서 네오프렌을 바로 구입해 지금 방송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면의 기본 틀을 재단하고 얼굴에 착용해 보았다. 원단 특성상 얼굴에 닿아도 부담이 없고 가벼운 소재여서 장시간 착용하고 있어도 불편함이 없었다. 바로 눈과 입을 재단하였고 머리 뒤 고정부분은 지퍼와 갈고리단추 등을 달아본 끝에 벨크로라는 부자재를 사용하여 간단하게 탈부착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고대에는 황금, 옥, 상아, 도자기, 돌, 인골 등으로 탈(가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직접 써보지는 않았지만 그 무게나 재질에서 오는 불편함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원단과 부자재로 가면을 만들 수 있으니 편리함을 물론이고, 가면을 쓰는 이의 개성을 더욱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가면, 무엇이든 담아내고 드러내다

복면가왕에서 EXID 솔지가 쓴 가면 _출처 유안마스크

그렇게 만든 가면을 가지고 만난 제작진과의 첫 대면 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던 가면이고 시커먼 검정색에 눈과 입만 뚫렸으니 어찌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기본 틀은 스케치북과 같았고 그 위에 어떤 디자인도 입힐 수 있게 되어 다양한 디자인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첫 번째 가면은 검정 네오플렌 원단 위에 그간 의상제작을 하며 모아둔 반짝이는 원단 자투리들을 재단하고 이어 붙여놓고 보니 색감도 화려하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왔다. 아이돌그룹 EXID의 솔지에게 전했고 ‘자체검열모자이크’라는 닉네임으로 쓰고나와 최종 우승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복면가왕 프로그램을 통해 그간 활동이 부진했던 연예인과 방송인들이 새로운 인기를 얻었다. 세상에 편견 속에서 자신의 끼를 맘껏 발휘하지 못하며 용기를 점점 잃고 있을 때 가면을 통해 재능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용기가 없어 가면 뒤에 숨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가면으로 잠시 가림으로써 있는 그대로를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면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목 받지 못했던 재능 있는 연예인들은 가면을 통해 재조명을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가면은 자신을 숨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주는 소중한 도구인 셈이다.

 

현재 가면을 디자인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에 늘 공감하고 있었다. 한글과 태극기에 자부심이 있었고, 패션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가면에 꼭 한 번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제작한 것이 애국호랑이와 방패연 가면이다. 호랑이의 눈은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둘로 나뉘어 표현하였고, 호랑이의 무늬를 태극기의 궤로 표현한 한국적인 가면이다.

 

애국호랑이 가면(좌)과 방패연(우) 가면 _출처 유안마스크

 

한복도 현대인들의 생활에 맞춰 개량한복으로 변형되어 세계에 알려지고 있듯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한국의 탈 역시도 현대화 흐름에 맞게 간편하고 편리하게 제작하여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 다양한 모양새와 의미를 담아 오래 전부터 제작되어 온 가면.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이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춰 새로운 의미를 담아내는 일도 의미 있는 행보일 것이다.

 

| 신의 표정 인간의 몸짓, 중국탈 : 김학주 교수 기증전 PDF

 

글_김유안│스타일 디렉터
유안컴퍼니 대표로 패션 제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오승환, 이특, 장근석, 김수로, 홍석천, 조세호 등 유명 연예인들의 스타일 디렉터로 활약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가면을 디자인 및 제작했으며, 현재 유안마스크를 런칭하여 한국적인 가면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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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조수진 댓글:

    한국의 정서에 맞는 혼이 실린 탈을 많이
    제작해 대박나시길 바랍니다.

  2. 신혜철 댓글:

    다양한 분야에서 멋과 실용을 겸비한 가면이 많이 사용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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