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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영화 <곡성>

곡성의 한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살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인심 좋은 동네이었던지라 마을 전체가 떠들썩해진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를 난자해 죽인 남편은 기이할 정도로 사리분별이 없고, 끔찍하게 피칠갑 된 사건 현장에선 도무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독버섯을 먹고 정신이 돌아서 그리 됐을 것이란 소문만 무성하다. 그리고 마을에선 괴질에 걸린 환자들이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연이어지면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소문은 바로 언제부턴가 산 속에 거주하는 정체불명의 일본인이 이번 사건의 원흉이라는 것. 그리고 기괴한 상황을 목격했다는 이들도 등장하는 와중에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중구곽도원는 소문의 근거지인 산 중턱에 있는 일본인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꺼림칙한 것들을 목격하고 경험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중구의 딸 효진김환희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증상이 발생하고 이것이 그동안 기이한 살인을 저지른 이들이 앓은 괴질과 유사한 현상임을 알게 된 중구는 일본인에 대한 깊은 의심을 갖게 되고 이는 곧 증오로 번진다.

한 마을의 기괴한 일을 다룬 곡성,
우리의 토속신앙에서 비롯되다

<곡성>은 <추격자>와 <황해>를 연출한 나홍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지난 2016년 5월에 개봉해 한 달 사이에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에는 관객을 압도하는 괴력이 있다. <곡성>이란 제목의 본래 의미는 ‘곡하는 소리’라는 한자어이지만 제목과 동일한 곡성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곡성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현상과 그 현상에 연관된 한 남자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곡성>은 개봉한 뒤 수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세부적인 의미에 대한 논쟁을 벌일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에 동원된 다양한 종교적인 은유와 신앙에 대한 논쟁적인 태도가 주로 화두에 오르곤 했는데 나홍진 감독은 이 영화가 활용한 종교적 모티브는 가톨릭과 한국의 토속신앙 그리고 네팔의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도 <곡성>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박수무당 일광황정민의 굿 장면에 관해서도 수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만큼 압도적인 박력이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문제적인 그 굿 장면에서 일광을 연기한 황정민을 제외하고 굿에 연관된 모든 인물들은 배우가 아니라 실제 무속인들을 캐스팅한 것이다. 그리고 굿 장면에서 등장하는 모든 소품들 역시 무속인들에게 직접 자문을 받고 실제적인 굿에 활용되는 제기와 소품들을 사용해 연출했다고 한다.

또한 현장에서 굿 장면을 촬영할 때도 15분간 카메라의 촬영을 끊지 않고 단 한 번에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덕분에 현장에서 황정민의 연기를 지켜보던 무속인들은 그에게서 진짜 굿을 하는 무당 같은 인상을 느꼈다고 하며 혹시나 그에게 신기가 내린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고도 한다. 그만큼 배우의 열연이 대단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그 덕분에 영화의 압도적인 분위기를 한층 거세게 끌어올린 명장면이 완성됐다.

신과 인간을 잇는 중매자 무당,
나쁜 기운을 몰아내다

무엇보다도 <곡성>을 통해 화제가 된 이 장면 덕분에 굿을 비롯한 토속신앙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기도 했다. 사실 굿이란 샤머니즘의 영향 아래 놓인 한국의 대표적인 토속신앙 중의 하나로 신에게 올리는 제의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굿을 행하는 이는 신과 인간을 잇는 중매자 역할을 하는 무당이다. 보통 굿을 할 때 무당들은 격렬하게 몸을 흔들거나 뛰며 춤을 추는데 이를 통해 무아의 경지에 들어섬으로써 육체로부터 혼을 이탈시켜 접신하게 된다. 혼이 빠져나간 육체는 신을 받아들이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현실의 인간들에게 신의 언어를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보통 굿을 하는 이유는 집안에 깃든 병마를 비롯한 갖은 걱정거리들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이미 들어선 집안의 화를 다스리기 위해 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쁜 일을 앞두고 나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행하는 굿과 집안에 발생한 흉흉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행하는 굿으로 나뉜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곡성>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귀신에게 살을 날리는 굿은 흉사를 몰아내기 위한 것이므로 후자에 해당할 텐데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살을 날린다’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살의 기운, 즉 원진살과 같이 지독한 악귀를 물리치기 위한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행하는 굿의 성격과는 차이가 있는 영화적 설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굿을 비롯한 한국의 굿과 무당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상당한 억압을 받아 한때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기도 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무당 김금화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을 보면 무속인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로 남한군이나 북한군 그 누구에게도 환영 받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항상 죽음의 위기와 직면해야 했다. 새마을운동 당시에는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전통문화 자체에 대한 경시가 동반됐고, 특히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무속문화 자체에 대한 공격적인 행위도 자행되곤 했다. 이를 테면 마을의 오래된 서낭당을 파괴한다거나 무당에 대한 멸시와 굿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방해하는 일이 잦았다. 덕분에 다양한 전통 굿의 명맥이 끊어질 뻔한 위기를 맞았지만,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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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곡성>은 감상을 마비시킨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압도적인 작품이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와 무관하게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 자체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건져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 보여진 굿 장면을 비롯한 토속신앙에 대한 모티브들 또한 인상적이라 간과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곡성>을 통해 무당과 굿에 대한 관심이 생긴 이들이 있다면 앞서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을 이어보길 추천한다.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자 현대미술가인 박찬경이 연출한 <만신>은 무당과 굿이라는 초현실적 세계과 현대적인 역사와 어떤 호흡을 하며 살아남았는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 어디에 있는 누구와도 마음만 먹으면 마주볼 수 있는 21세기에도 무당과 굿이 존재한다는 건 여전히 우리가 마주볼 수 없는 어떤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을 부른다. 물론 호기심은 갖되 지나치게 현혹되지 않길.

글_ 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이자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올레TV <무비스타소셜클럽>의 인터뷰 코너 ‘스타케치’에 출연 중이며 KBS와 EBS 라디오에서 영화 소개 코너에 출연 중이다.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와 세상만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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