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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측우기에서 뿌리를 찾다

 

우리 민족은 농경에 근간을 둔 농업 위주의 생활을 영위해왔다. 예로부터 기온과 낮의 길이를 알기 위해 24절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1442년 세종 24년 5월에는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해 측우기를 만들어 서울과 각 도의 군현에 설치하였다. 이처럼 날씨를 안다는 것은 농사는 물론 국가경제의 흥망을 가르는 ‘절대 자원’을 갖는 것과 같았다. 한국기상산업진흥원 김종석 원장을 만나 기상 측정의 역사와 중요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기상산업, 21세기의 블루오션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2016년 세계위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요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 대응실패가 꼽혔습니다. 각 위험요인이 연계되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특징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는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 지구온난화에 의한 폭염, 미세먼지 등 기상기후 변화에 따른 문제들을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기상산업의 화두는 기상기후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서 기상시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기상산업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상산업이 빠른 시일 내에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기상기술과 기상서비스 연구‧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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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블루오션이 기상시장이라고 합니다. 농업, 건설업, 가스, 전기, 에너지, 제조업, 도‧소매업, 재정‧보험, 부동산 등 세계 모든 산업이 기상정보에 80~90%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농업 중심사회였을 때도 기상정보가 무척 중요했던 것처럼 현대의 다양해진 산업 현장에서도 기상기술의 발전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WMO보고서에 따르면, 기상정보의 활용가치는 연간 3조 5천 억~6조 5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기상산업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기술이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는 하드웨어 중심의 기상장비제조에 더 중점을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성큼 다가온 만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기상기술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드론 관측기술 개발, 스마트홈 기기 제품 개발 등 기상-신기술 융・복합 연구지원, 기상사업 공동 창업공간 조성을 통해 혁신기반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상이 된 날씨정보, 삶을 바꾸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기상산업이라는 용어가 자체가 없었다. 6.25 전쟁 이후 미국에서 원조한 관측 장비가 전부였고, 이를 기반으로 1956년 2월 15일에 세계에서 68번째로 세계기상기구에 가입했다. 이 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창문을 열거나 집을 나서야지만 그날의 날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리면 급히 우산을 사거나 옷으로 머리만을 가린 채 비를 피해 뛰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날의 날씨는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한 주의 날씨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별, 나라별 날씨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기상관측‧예보가 발달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고장 난 관측 장비를 수리하는 정도의 기술에서 이젠 지상관측장비를 개발하고 저개발국에 수출할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일부 관측 장비는 선진국에 수출하고 있기도 하지요. 1960년대에는 단순예보를 했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에는 위성, 레이더 등 원격장비들이 도입되면서 기상기술 분야 중 분석기술이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IT기술을 도입하여 변화하는 날씨를 자동으로 감시하는 자동기상관측장비를 개발했고, 근래에는 드론 관측기술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지요. 기상산업이 발전하면서 우리 삶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옷을 입을지, 우산을 챙길지, 주말에 나들이를 가면 좋을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와 앱으로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날씨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여행이나 레저를 계획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기업에서는 날씨정보를 활용하여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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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대장, 광복 이후, 기상 상황을 기록한 장부로 본문에는 날짜 별로 기온,
강우량, 습도 등이 기재되어 있음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하지만 아직 기상산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1442년 세종대왕의 측우기를 기점으로 관측 장비의 발전이 있었지만, 그 후 과학지의 기상장비 발전사엔 우리나라가 제외되어 있는 것도 아쉬운 면이지요. 기상산업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있어야지만 우리의 기상산업 발전과 함께 관측 장비의 역사적 기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천문의기, 선조들의 지혜를 담다

 

그는 우리나라 기상산업의 뿌리를 측우기에서 찾는다. 측우기는 조선에서 발명된 최초의 우량계로, 1442년 5월에 관련 제도가 제정되고 서울과 각 도의 군현에 설치되었다.

“측우기는 아시다시피 빗물의 양을 재는 기술입니다. 이것이 대중적으로 이용되면서 당시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는 홍수 또는 가뭄 피해를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게 되었습니다. 서양보다 약 200년이나 앞섰으며, 우리는 이때 처음으로 ‘기상관측’을 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나라 기상장비 국산화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정조 때 박지원의 문하생 유득공이 실사구시의 한 방법으로 산업진흥을 주장했었는데요. 그때 국제적으로 측우기를 판매했다면 외화획득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측우기 외에도 홍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하천의 수위를 재기 위한 ‘수표’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하는 ‘풍기대’도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낸 기상관측 기기이다. 풍기대는 오늘날 풍력발전소에서 볼 수 있는 바람개비 모양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천문의기’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천체관측기기를 ‘사람을 의롭게 하는 그릇’이라고 하여 옳을 ‘의’에 그릇 ‘기’를 써 의기義器라고 표현했습니다. 측우기, 수표, 풍기대 등은 자연재해를 과학적으로 대처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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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측우기錦營 測雨器,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 _출처 문화재청

그렇다면 30여 년 동안 기상관측 전문가로서 살아온 그가 ‘기상’을 주제로 박물관에서 전시를 한다면 어떻게 기획을 하고 싶을까?

“고려 초기에도 태사국太史局이라는 기관이 있었고, 1308년충렬왕 34에는 서운관書雲觀이라는 기상관측기관이 설치되어 조선 초기까지 존속하였습니다. 대구 선화당 측우대, 금영측우기. 관감측우대 등이 남아 있습니다. 보물 561호인 주척이라 불리는 대나무자 및 수표, 풍기대 및 조선왕조실록에 표현된 기상관측기록 기상 및 관측시설에 관련된 옛 기록들을 전시하면 좋을 듯합니다.”

또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는 가뭄에 대한 기록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많은 기상관측기록들도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물들을 통해 기상 관측기술과 기상정보를 활용한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오래 전부터 날씨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상을 관측할 수 있는 기구들을 발명하였다. 날씨를 예측하는 일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경쟁력인 시대가 된 지금,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더욱 빛나는 이유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김종석 원장 | 한국기상산업진흥원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본부 공군기상단장을 역임한 기상분야의 최고전문가이자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태풍에 대한 연구를 한 태풍전문가이다. 지난해 한국기상산업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우리나라 기상산업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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