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민속 不老口

겨울, 둥근 만두가 떠올랐습니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지나면, 일기는 부쩍 쌀쌀해진다. 동네 입구 작은 가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도 등장한다. 뽀얀 빛의 둥그런 달 같은 호빵. 두 손으로 가르면 포근포근하면서 달콤한 팥이나 고기와 채소가 섞인 소가 든 호빵. 그렇게 겨울이 온다.
 
 

얇은 피에 소를 넣고 싼 것은 ‘만두’
밀가루를 발효해 쪄낸 것은 ‘상화’

 
만두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지만,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만두와 중국의 만두는 다르다. 중국에서는 밀가루를 발효해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만두를 ‘포자包子’라 부르고, 얇은 피에 채소, 고기, 생선 등 다양한 소를 넣고 싸는 만두는 ‘교자餃子’라 부른다. 교자 중에도 작고 예쁘게 빚어 쪄내는 만두는 ‘쇼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밀가루 반죽 외에도 고기, 생선, 채소를 얇고 넓적하게 펴 어느 것이라도 소를 넣고 싼 것을 통칭 ‘만두’라 불렀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로 쓴다.
 
상화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던 말로,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해 발효시킨 뒤 팥소를 넣고 둥글게 빚어 찐 떡이다. 고려가요 「쌍화점雙花」에 등장하는 ‘상화 사러가고신대 회회아비 내 손목을 주여이다’만 보아도 상화라는 말이 일찍이 고려 시대 때부터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만두와 빗대어 자주 쓰였으나 점차 상화는 사라지고, 만두로 쓰여졌음이 옛 조리서나 기행문에 나타나 있다.
 
 

‘상화’를 설명한 우리 기록들

 
만두를 상화라 부른 예로는, <해유록>에 ‘일본에는 만두란 것이 있어 우리나라 상화병과 같은데 겉은 희고 안은 검고 맛은 달다.’라 하였으며 <연행일기>에는 ‘유박아란 우리나라 상화떡처럼 밀가루로 만든 것인데, 우리 만두처럼 가장자리가 쭈글거린다. 이것은 옛 만두로 돼지고기와 마늘을 다져 만들며 덕 중에 가장 맛이 좋다’라고 하였다. <훈몽자회>에는 ‘만’은 상화 만, ‘두’는 상화 두라 하였으며 <동국세시기>와 <주방문>에서는 상화를 이두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표기법로 霜花라고 적었다. <역어류해>에서는 ‘상화란 중국의 증고, 증병’이라 하였으며 <성호사설>에서는 ‘기수起溲, 술기운으로 발효시킨다’라고 하였다. 또 <명물기략>에서는 상화병 또는 상애병이라 하는 것은 발효하고, 만두는 소를 넣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했다. <육전오례>는 ‘상화는 그 모양과 성질이 중국인의 기호에 맞으므로, 중국 사신이 오면 그들을 대접하는 데 썼다.’라 적었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상화는 밀가루를 발효시켜 쪄낸 음식이었으나 후에는 귀한 밀가루보다 구하기 쉬운 멥쌀가루를 발효시켜 떡으로 만들어 ‘기주떡’, ‘증편’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증거로 안동장씨가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 상화병 만드는 법에 나타나 있다.
 
‘잘 여문 밀을 곱게 가루를 내고 좋은 살가루 한줌 넣어 끓인 후, 밀기울을 넣어 섞어 차게 두었다가 누룩가루로 좋은 술을 만들어 섞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 둔 다음, 가루를 넣고 반죽하여 부풀린다. 소는 오이, 박, 표고, 석이를 기름장으로 볶고, 잣가루를 넣어 빚어 부풀도록 두었다가 시루에 쪄낸다. 또 붉은 팥을 쪄서 꿀을 넣고 말아 소를 넣어 빚어 쪄낸다.’
 
여기에 이어 쌀가루로 만드는 증편도 소개되어 있으며 ‘상화같이 찌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161020_blog_img
 
 

오래전부터 일상화 된 만두의 흔적

 
만두의 유래를 보자면, 누구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중국 송나라의 <사물기원>이 회자된다. ‘삼국시대 촉나라 제갈공명이 노수를 지날 때 풍랑을 멈추게 하려고 수신에게 양고기, 돼지고기를 밀반죽에 싸서 사람 머리 모양을 만들어 제단에 올렸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사>에 충혜왕5년1343에 궁의 주방에 들어가 만두를 훔쳐먹은 자를 벌하였다는 기록이 등장하며, <음식디미방>1670, <도문대작>1611, <주방문>17세기 말 등에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까지의 고조리서에 껍질 안에 속을 채워넣는 법이나 재료를 다져 속을 만드는 과정을 대부분 ‘만두를 하듯이’라고 비유하는 기록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것만 보아도 만두는 우리에게 일상화 된 음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음식디미방>에는 메일만두, 어만두, 수교이, 수어만두, 석류탕만두 등 무려 다섯 가지의 만두가 등장한다.
 
만두는 껍질의 재료, 모양새, 소의 종류, 익히는 방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껍질은 밀, 메밀, 생선, 동아, 천엽, 양, 계란, 전복 등으로 나뉘고, 모양으로는 편수, 변씨, 미만두, 보만두, 굴림만두로, 소로는 석화, 숭채, 침채, 꿩, 제육, 준치 등, 조리법으로는 삶은 만두, 탕만두, 찌는 만두 등으로 구분된다.
 
 
물론 궁중에서도 만두는 특별했다. 궁중 사극 <대장금>에도 궁중음식을 알리기 위해 만두 경연대회를 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고. 궁중 잔치에 오른 만두는 육만두, 어만두, 골만두, 양만두, 천엽만두, 생치만두, 병시, 침채만두, 동아만두 등 다양한데 아마도 솜씨를 부리고 먹는 이들이 즐기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만두가 아니었을까. 그 옛날 무척 맛있지만 진귀하여 쉽게 먹을 수 없었던 만두가 이제는 냉동음식, 포장음식으로 쏟아져 나와 각자의 기호에 맞게 골라먹는 시대가 되었지만 말이다.
 

*<해유록> – 1719년숙종45 신유한申維翰이 통신사의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온 사행일록使行日錄
*<연행일기> – 1712년숙종39 김창업의 중국기행문
*<훈몽자회> – 1527년중종22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한자 학습서.
*<역어류해> – 1690년숙종16 조선 시대 사역원司譯院에서 든 중국어 어휘사
*<성호사설> – 이익이 40세 전후부터 책을 읽다가 느낀 점이 있거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으면 그때 그때 기록해 둔 책
*<명물기략> – 1870년에 펴낸 책으로, 이름이 있는 각종 사물에 대해서 한자로 표제어를 쓰고 그 아래에 그 한자어의 우리말 뜻을 밝힌 한자와 한글 어휘집
*<육전오례> – 조선 말기 육조 각 관아의 사무 처리에 필요한 행정법규와 사례를 편집한 행정법전

 
 

글_ 한복려 | 궁중음식연구원장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3대 기능보유자. 궁중음식 연구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식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 하는 것에서 사람의 기본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기며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