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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영화 <워낭소리>

경북 봉화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 온 칠십 대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 그리고 늙은 소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워낭소리>이다. 이충렬 감독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듯 촬영했고 78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완성했다.
 
대중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내용이라 우려했지만 다행히 극장이 잡혔다. 2009년 1월 독립 영화 상영관 여섯 군데에서 개봉했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결과는 창대했다는 말이 꼭 어울린다고 할까. 할아버지와 소에 관한 영화를 300만이나 되는 관객이 보았다. “소는 정말로 주인과 교감하는 것일까?” 감독은 단지 고기가 되어 버린 요즘 소를 보면서 이 명제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감독은 이 일에 성공했고 관객들도 동의한 것 같다.

 

 
‘워낭’이란 소의 목에 다는 방울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와 소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영어 제목은 ‘Bell Ringing’ 정도가 될 듯 한데 뜻밖에도 〈Old partner〉이다. 감독은 영어 제목을 통해 이 영화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시작부터 분명히 밝혔다. 늙은 파트너, 오래된 파트너, 오랜 세월 함께 한 파트너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영화에는 9남매를 낳아 기른 노부부가 등장하지만 감독의 시선은 이들이 아닌 할아버지와 소를 향해 있다. 소는 할아버지에게 있어 농사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농사가 삶의 전부인 할아버지에게는 결국 인생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어릴 때 침을 잘못 맞아 다리 한 쪽이 성치 않다. 힘줄이 오그라 붙은 다리는 계집 아이의 팔보다도 가느다랗다. 그 다리를 질질 끌며 소 먹일 꼴을 직접 베고 기계도 없이 논 바닥에 엎어지다시피 모내기를 한다. 이러니 할머니도 죽을 만큼 힘들다. 그래서 맨날 잔소리고 푸념이다. 주인 잘못 만나 이 모양이라고. 이젠 힘들어서 못하겠으니 기계로 농사 짓고 농약도 치자고. 그러자 영화 내내 말씀 몇 마디 없으신 과묵한 할아버지가 결정적 한마디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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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안 하나?”

 
순간, 한 방 크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힘들면 못하는 거지, 안 하는 게 당연하지. 기계도 있고 사료도 있는데 굳이 힘들게 살 필요 있나, 미련하게. 라고 생각한 우리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가 싶어서. 할아버지는 평생 이런 방식으로 극진하게 늙은 소를, 파트너를 대했던 거다.
 
할아버지와 소의 이야기라니, 단조롭고 지루할 것 같지만 영화는 제법 재미있다. 특히 할머니의 잔소리가 인상적이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할아버지가 대꾸를 안 하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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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바람에 가지라도 흔들리지, 할아버지는 통 말이 없네”
“저놈의 소 새끼가 죽어야 내 팔자가 펴지. 아이구 내 팔자야.”

 

그리고 오래된 라디오가 더는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자 할머니가 명대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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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고물이네. 영감님도 고물, 라디오도 고물. 하하하.”

 
그러나 웃음도 잠시, 두 ‘고물 古物‘은 기어이 우리를 울린다. 누렁이가 정말로 거의 다 되었다는 수의사의 진단을 듣고 할아버지는 코뚜레를 빼주고 목에서 워낭도 풀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는 사람마냥 목을 툭 떨구고, 생을 마감한다. 임종을 지키던 할아버지가 나지막이 말한다. “좋은 데 가래이.” 노인네들을 위해 땔감을 듬뿍 해놓고 소는 마침내 갔다.
 
그들이 파트너임을 느낄 수 있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일을 마친 할아버지와 소가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다. 할아버지는 아픈 다리를 끌면서도 달구지에 타지 않고 소와 나란히 서서 걷는다. 어깨엔 소 먹일 꼴을 잔뜩 짊어졌다. 카메라는 두 파트너의 다리를 보여준다. 한쪽 다리를 못쓰는 할아버지와 한 발자국도 옮기기 힘든 늙은 소가 그렇게 나란히 길을 걷는다. 파트너로, 그리고 동지로.
 
현대인의 외로움이 이 영화를 보게 했다. 누구나 계산하고 잇속을 차리는 관계가 아닌 진짜 파트너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았으므로 주위엔 그런 이가 별로 없다. 마음 둘 데가 없고 외롭다. 이럴 때 이 영화가 나타났다. 외로운 사람들이 노인과 늙은 소, 그들의 극진한 파트너십에 빠져든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파트너는 하루 아침에 얻어지지 않는다. 상대가 잘났든 못났든 서로 보듬으며 한 세월을 살아내야 비로소 파트너가 된다. 오랜 세월을 함께 겪으며 서로에게 ‘고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빠르게 해내야 하는 우리는 ‘고물’이 되기도 어렵고, 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서로에게 ‘고물’이 되어버린 관계는 부럽다. 이런 우리가 이 영화를 보았다. ‘고물’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러므로 이 영화는 ‘고물’들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헌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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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로, 2009년 1월에 개봉했다. 경북 봉화 산골의 노인 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늙은 소의 마지막 몇 년을 담았다. 단 여섯 군데의 개봉관에서 시작한 <워낭소리>는 한국 독립 영화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총 관객 수 292만명을 기록했다. 출처: 명필름 홈페이지
글_ 최인아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아무 것도 안할 자유” 등의 카피를 쓴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 제일기획 부사장. 지금은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서울’ 등에서 강의를 하며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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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김평배 댓글:

    워낭소리에 옛날이 그립기만 하네요 말없이 묵묵히 할일만하는 누렁이의 모습 보고싶네요 초등학교3학년 늦동이와
    함께 영화을 보고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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