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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은밀한 생활기록서, <토정비결>

어떤 일을 앞두었거나 지나온 시간이 답답했을 때, 문득 궁금해진다. 운이라는 것이. 특히 한 해가 새로이 시작될 때, 그해의 신수를 <토정비결土亭祕訣>에서 찾아보곤 하는데, 이 책은 1년간 내가 얻게 될 길운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토정비결>은 과연 어떤 책일까. 명리학 박사 김만태 교수를 만나 물었다.

 

글만 읽을 수 있다면 누구나
대단히 대중적인 점술서 <토정비결>

 

“심리적인 거죠. 삶이 늘 평탄하기만 하면 궁금하지도 않을 텐데, 돌아보면 미련이 남고, 늘 일이 잘되지만은 않으니까요. 사람들은 보통 어떤 시작을 앞두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담배를 끊어보자, 운동을 하자. 그리고 이런 다짐을 하는 시점은 대체로 새해이지요. 그때 나의 운세도 궁금해지는 거죠.”

그런데 이 <토정비결>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찾아보는 사주四柱 풀이나 신점神占과는 조금 다르다. 사주풀이처럼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요하지도 않고, 신점처럼 과거의 일부터 미래의 일까지 꿰뚫듯 알려주지도 않는다. <토정비결>이 알려주는 것은 고작 앞으로 1년간의 신수身數일 뿐이다.

“연주年柱,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를 사주라고 합니다. 여기에 10가지 천간天干과 12가지 지지地支를 보태고 음양오행을 따져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사주 풀이입니다. <토정비결>은 태어난 시가 중요하지 않아요. 생년월일만으로 따져볼 수 있죠. 그것을 계산법에 따라 주역괘로 바꾸면 144개의 괘가 나오게 됩니다. 그 괘에 들어있는 운세를 찾아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앞으로의 운세를 살펴본다는 목적은 같지만, 그것을 따져보는 도구가 다른 겁니다.”

<토정비결>에서 태어난 시를 따지지 않는 것은 대중성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에는 자신의 태어난 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난 시와 분까지 세세히 기록하고 기억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자신의 한 해 운을 살펴볼 수 있고, 어렵지 않게 다른 이들의 신수도 따져볼 수 있다.

“예전에는 정초에 점을 본다고 하면, 3명 중 2명은 <토정비결>을 보았어요. 동네에 가방 든 할아버지가 집집마다 돌며 그 해의 <토정비결>을 읊어주고 다니셨죠. 근데 <토정비결>이라는 것이 4언 4구, 16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것이 전부라 나중에는 글자 공부 좀 하신 분이 장에서 책을 사와 동네 사람들 <토정비결>을 다 봐주곤 했어요.”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가 내 운명을 묻지 않아도, 글만 좀 읽을 수 있다면 다 알게 되는 신수. <토정비결>은 이렇게나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점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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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토정비결> 표지.
표지에 그려진 숫자는 주역 계산을 계산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단한 백성을 위해 태어나
세상과 맞물려 돌아가다

 

<토정비결>이 등장한 시점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토정土亭이란 조선 시대 중기의 학자이자 문인이며 기인인 ‘이지함李之菡’ 선생의 호로, 당시 백성들의 삶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그가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와 앞으로 1년 간의 신수를 보아달라는 요구로 이 책을 지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김만태 교수는 <토정비결>과 토정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가탁假託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인물의 이름을 빌려 이론에 신빙성을 좀 더 부여하는 것이죠. 이지함 선생이 이 책을 지었다면 이미 1800년경에 발행된 <경도잡지京都雜志>, <세시풍요歲時風謠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정초 점치는 내용에 <토정비결>도 포함이 되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토정비결>이라는 말이 처음 언급된 것은 1899년 12월 19일 <황성신문> 논설 부분이에요. 이때에도 운세를 보는 내용으로 소개된 것은 아니에요. 조선이 곧 망하게 될 테니 처신해야 한다고 예언한 <정감록鄭鑑錄>과 함께 언급되었죠.”

본격적으로 <토정비결>이 대중의 삶과 밀접해지게 된 것은 1910년 이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처했을 무렵이라고, 그는 말을 보탰다.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토정비결>이 등장했고, 모두 조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담긴 논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문서는 아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라를 잃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고, 늘 슬픈 일상이 지속될 무렵, 아마도 주역에 대해 공부한 이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토정의 이름을 빌려 <토정비결>을 만든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한자로 이루어진 4언 4구를 백성들은 읽을 수 없으니 1918년 한글로 이루어진 <윷과 점책>이라는 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죠.”

‘점’이라는 것은 세상과 맞물려 돌아간다.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비슷하던 농촌사회에는 풍작, 건강 등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고, 산업화를 통해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인구의 이동이 잦아지자 구설수를 조심하고, 인간관계를 주의하라는 등의 조언이 많아졌다. 난세일수록 그 내용은 희망적인 것들로 채워진다. 괘사점괘를 풀어놓은 글에 시대상이 담기는 것이다.

“4언 4구로 유지되던 괘사가 60년대부터 4언 27구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 무렵 삶의 형태가 다양해졌다는 것이죠. 그랬던 것이 2003년 4언 48구가 돼요. 사회가 복잡해지고 있으니 설명해야 할 말들이 많아질 수밖에요.”

<토정비결>의 변천사를 연구하면 시대상이나 각 시대의 민속적 측면 또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김만태 교수는 말했다. 세상과 동떨어진 괘사는 나올 수 없다.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반영해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토정비결>을 찾는 것인지 헤아리는 것이 괘사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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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명문당에서 4판 째 발행한 김혁제 풀이의 <토정비결>. 이 책은 4언 45구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조언하고 위로하는
당신만을 위한 맞춤형 치유서

 

“<토정비결>의 표현은, 누구에게나 해당이 될 법한 보편적인 것들이에요. 구설수 조심, 사람 조심, 건강 조심. 별일 없이 넘어가면 다행인 거고, 그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들어맞았다고 여기죠. 저희 아버지도 <토정비결>을 보고 받아온 종이를 벽에 붙여두고 수시로 살피셨습니다. ‘이것이 맞았네’라고 하시면서요. 맞을 수밖에요.웃음

매년 <토정비결>이라는 이름을 단 책들이 출판된다. 보통 수년 전에 발행한 책이 인쇄를 거듭해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회 이상 재인쇄 한 책도 부지기수이고, 80회에 이르는 인쇄를 거듭한 책도 있다. 이 정도면 조용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토정비결>은 때론 소설이고, 때론 수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지침서와 같은 역할이죠.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복잡한 머릿속을 쉬게 하고, 위안받기 위한 힐링서, 치유서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어떨까요. 나의 생년월일을 통해 ‘이것은 조심해라, 이렇게 하면 좋을 거다.’라고 나만을 위한 치유법을 알려주는 따뜻한 치유서 말입니다.”

이제는 더 많은 점술이 보편화 되었다. 타롯카드, 별자리운세, 띠별 운세 등 조금만 품을 들이면 다양한 점괘를 얻을 수 있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는 날씨 옆에 운세가 놓여있다. 날씨만큼이나 자신의 신수가 궁금한 것이다. 게다가 이제 1년 단위가 아니라 그날그날의 운세까지도 알고 싶어진 것이다. 행운의 색, 행운의 숫자, 행운의 옷 등 내용이 자세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욕망이 조금 더 깊어졌음을 대신 말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옛날 것이라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삶과 꽉 맞닿아 있다.
“시대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토정비결> 또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형태,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가 꿈꾸던 세상, 더불어 욕망 어린 속내까지도 <토정비결>을 빌려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해오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조금은 은밀하게, 그러나 희망차게.

김만태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조교수
인하대학교 항공공학과를 졸업하고 명리학에 뜻을 갖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조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명리성명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실용서로 읽는 조선>공저, 2013, <한국 사주명리 연구>2012, <세시풍속의 역사와 변화>공저, 2010 등이 있다. 「정초 점복풍속에 관한 연구-윷점·오행점·토정비결을 중심으로」, 「天干의 상호 변화작용 관계로서 天干合 연구」, 「간지기년干支紀年의 형성과정과 세수歲首·역원曆元 문제」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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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유어신 댓글:

    요즘 barnum effect . forer effect 란 말들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높이 평가받을 필요가 있지만, 스스로에게는 비판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성격에 나약한 측면이 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사용할 수 있는데 사용하지 않은, 익숙하지 않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당신은 훈련되어 있고 자신감에 차 있지만, 당신의 내면은 주저와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종종 당신의 행동이나 말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의심이 당신을 공격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당신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좋아하고 변화에 열려 있으며 구속과 제약을 받을 때 잘 견디지 못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독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대개 당신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며 예의 바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향적이고 말이 없으며 차갑기도 합니다. 당신의 바람 중에 몇 가지는 조금 비현실적일 수도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넘 효과 [Barnum effect]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한국심리학회)

    얼마만큼 정확한가요. 저에겐 그럴듯 하게 보이네요. 우리 LEEEY 에게두요.

    사람이 고독한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앞을 볼 수 없기에.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무언가에 기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언을 받아들이고 위로를 받는 선에서 만족하는 하나의 문화로 잘 자리잡기를 바래봅니다. 힐링서로써의 토정비결.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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