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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추천

김종태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기념사진

사진을 보자. 남자 넷이 일렬로 앉아있다. 모두 도포를 입었다. 단 한 사람만이 서양식 구두에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비슷한 갓을 썼다. 이들은 서양식 커튼과 카펫이 깔린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어떤 연유로 이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을 찍은 것은 누구일까. 유물과학과의 김종태 학예연구관이 추천하는 유물은 바로 이 기념사진이다.

 
 

1906년, 일본 유학을 앞둔 민충식,
‘이와타 카나에’ 사진관에서 친구들과 사진 찍다

 

“이 사진은 1906년 4월 24일 민충식閔忠植이라는 사람이 해외 유학을 떠나기 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에서 오른쪽 끝에 안경을 쓰고 지팡이를 든, 서양식 구두를 신은 사람이 민충식이고, 그 옆으로 김유원, 이민녕, 이익녕이 차례로 앉아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중 김유원은 민충식의 척종, 즉 성이 다른 친척이고, 이민녕과 이익녕은 친구예요.”

 

김종태 학예연구관의 설명이다. 남겨진 것은 이 사진 하나뿐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있을까. 정답은 바로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액자에 들어있었다. 액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光武十年四月二十四日在漢城餞別閔忠植遊海外戚從金裕元友人李敏寧友人李益寧 광무10년 4월 24일 재한성 전별 민충식 유해외 척종 김유원 우인 이민녕 우인 이익녕」.

 

“가장 신기했던 부분이기도 해요. 요즘에도 백일사진 등 무언가 기념하는 사진에는 사진 안에 ‘백일기념’ 등의 정보와 날짜를 적어두지요. 그 정보가 바로 이 액자 안에 담겨 있는 겁니다. 당시에 필름에 글자를 새기는 기술이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이렇게 들고 찍는 것이 기술이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그런 정보를 마련해 사진을 찍었다는 게 참 흥미롭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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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액자 안에는 이 사진을 찍은 이들과 날짜,
사진을 찍은 연유 등이 적혀있다. 이것이 이 사진이 가진 메타정보이다.

 

그러고 보면 사진 프레임에 적힌 ‘韓國京城 岩田鼎한국경성 이와타카나에’ 역시 이 사진을 설명할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와타 카나에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에서 활동한 사진가로, 이 사진을 찍었을 당시 충무로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즉 이 네 남자는 친구의 유학을 앞두고 충무로 ‘이와타 카나에 사진관’을 찾아 그곳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짤막한 기록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사진이 언제 찍은 사진이며, 이들이 누구인지, 어떤 연유로 누가 찍었는지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보이는 대로 네 명의 조선 남자가 사진을 찍었다는 초라한 정보 외에는.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사진에 육하원칙을 부여하는 이유

 

이렇게 사진에 관한 텍스트 정보를 ‘메타정보Meta Data’라고 한다. 메타정보란 대량의 정보 중에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도록 일정한 규칙에 따라 콘텐츠에 부여되는 데이터다.위키피디아 참고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 자체에 카메라의 정보와 촬영 시간, 해상도, 사진 크기 등을 저장하는 기능이 내재되어 있어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과거에는 일부러 무언가로 표시해두지 않으면 이러한 정보를 남길 수 없었다.

 

“사진은 현장성을 갖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줄 수도 있어요. 일제강점기 때 찍은 사진들은 종종 문화상품이 되어 판매되곤 했어요. 1910년에 찍은 사진이 1920년대에 엽서로 발행되거나 1930년대 책자에 수록되는 식이었죠. 그런데 사진만 있고 이 사진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후대에 복식 연구자가 1930년대 책자 속 사진을 보고 ‘아, 1930년대의 복식이 이러했구나’라고 판단하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사진이야말로 육하원칙에 의한 메타정보가 꼭 필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학을 앞두고 찍은 기념사진은 다행히 그 기록이 고스란히 사진 속에 담겨 있지만, 그렇지 않은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진이 찍힌 배경이나 시대를 되짚어 가며 사진의 메타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공을 들여야 한다. 과거의 유물을 발굴하거나 사진을 입수한 박물관에서 늘 하는 일이기도 하다.

 

“박물관에서는 늘상 바보스런 일을 합니다. 과거에 조금만 신경 썼으면 남았을 기록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사해야 하죠. 후지모토 다쿠미라는 일본인 사진작가가 1970년대부터 40년 간 한국을 50차례 방문하며 찍은 사진을 기증하셨습니다. 그 분은 그저 당시의 우리나라가 아름다워 사진으로 남겼지만, 우리에게는 지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죠. 그래서 최근에 이 분과 함께 당시 사진을 찍었던 모든 곳들 돌아다니며 어느 지역의 어느 장소인지 되짚어보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런 작업이 이루어져야만 사진자료는 그 의미를 발할 수 있거든요. 메타정보가 얼마나 충실히 담겨있느냐에 따라 사진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즘 박물관에서는 새롭게 생산되는 자료들은 지침을 통해 내부에서 정보를 만들고, 과거의 자료들의 정리를 병행하고 있다. 오히려 과거의 자료들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힘을 쏟느라 새로이 생산되는 것들을 놓치곤 했었는데, 이제는 생각을 바꿔 지금의 자료들도 튼튼히, 그 정보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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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사진작가 후지모토 다쿠미와 함께 그가 1970년대에 찍었던 곳을 찾아다니며 메타정보를 수집했다.
1970년대의 합천왼쪽은, 2011년 이렇게 변화해 있었다.오른쪽

 
 

박물관의 미래 경쟁력 ‘아카이브’

 

얼마 전 국립민속박물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소장품 68,000여 건을 온라인으로 검색해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오픈했다. 더불어 이 정보들은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교육적, 문화적, 경제적 가치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이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의 힘, ‘아카이브’이다.

 

김종태 연구관은 박물관의 경쟁력은 이 ‘아카이브’에 있다고 강조했다. 아카이브란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 즉 수집, 전시, 조사, 교육 등과 같은 활동을 통해 남겨지는 자료들 가운데에 보존가치가 있는 것들을 수집하고 보존, 활용하는 것을 이른다. 어떤 주제를 연구할 때, 커다란 중심 줄기를 뽑아 전시나 도록을 통해 대중에 공개하고, 그 바탕이 된 다양한 연구•조사의 중간과정, 결과, 생산단계 등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자료들이 아카이브로 귀속된다. 이것을 박물관 기능과 함께 서비스 했을 때, 그 결과는 무궁무진해진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아카이브의 축을 이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진인데, 이것을 어떻게 정리하여 공개할까, 하는 것이 요즘 가장 큰 고민입니다. 사진사를 중심으로 보여줄 수도 있고, 시대를 대표할만한 사진들을 뽑아 세세한 기록을 남겨둘 수도 있지요. 그렇게 된다면 사진에 대한 정리지침도 세우고, 사진의 가치성도 함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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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김종태 학예연구관
 

김종태 연구관이 박물관의 데이터 구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 중반의 일이다. 박물관에 오기 전부터 IT의 기술력과 인문학의 접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그의 아카이브를 향한 정성이, 2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빛을 발하게 됐다.

 

“아카이브 전공자들이 앞으로 더욱 많아질 자료들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정리한다면 20~30년 후의 우리 박물관의 경쟁력은 달라져있을 겁니다. 바로 지금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_ 김종태 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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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고경미 댓글:

    제주도출신 사진작가 고영일님이 1960년대, 1970년대 찍은 제주 사진들을 그 아들 고경대가 그 장소를 똑같이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최근에 충무로에서 개인전 ‘부전자전’도 열었고, 제주에서도 지금 전시가 진행중인 것으로 압니다. 비슷한 발상으로 사진의 연대를 찾아가는 기묘한 장소성, 시간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이 참 아름답습니다. 한번 보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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