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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끔찍하고도 낭만적인 병, 결핵

결핵이 어떤 질병인지 잘 알지 못한다. 결핵을 앓아본 적이 없고, 주변 사람 중에서도 앓는 걸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결핵이란 책에서 보거나 풍문으로 들은 게 전부다. 이상의 <봉별기>에서 “스물세 살이오 삼월이오-각혈이다”라는 문장을 보았고, 김유정의 <만무방>에는 결핵을 앓는 아내를 가진 가난한 남자가 나오고, 이광수, 나도향, 이상, 김유정, 채만식, 이효석은 결핵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체호프, 카프카,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자매, D.H. 로런스, 조지 오웰도 결핵으로 죽었다. 작가란 사람들이 유난히 결핵에 취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결핵이 오래도록 당대의 유행병이었던 까닭이다.

 

얼마나 위세가 대단했는지 196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은 질병이었고, 식민지 조선은 세계에서도 결핵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고 한다. ‘결핵에 걸리면 죽는다’라는 관념이 퍼져나갔다. 1936년 조선총독부는 결핵 환자를 40만 명, 결핵으로 죽는 인구를 4만 명으로 추산한다. 1928년 황해도 해주에 최초로 결핵 요양병원이 생긴 이래 전국에 결핵을 치료하는 기관이 퍼져나갔다. 꽤 끔찍하고도 위험한 질병이었던 것이다.

 

김유정의 <만무방>은 1935년, 이상의 <봉별기>는 1936년에 발표된다. 결핵을 다룬 또 하나의 소설 이태준의 <가마귀>는 1936년 1월 《조광》에 실린다. 결핵을 앓으면서 ‘결핵 소설’을 썼던 이상, 김유정과 달리 이태준은 결핵을 앓은 적이 없다. 일설에 따르면, 나도향과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결핵을 관찰(?)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이태준은 동맹휴교 주모자로 지목되어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하며 문학 하는 이들을 사귀었는데, 이들 중 하나가 나도향이었다.

 

왜 제목이 까마귀인가 하면 까마귀가 많은 동네가 배경이다. 작가인 ‘나’는 부자 친구가 제공한 별장에 글을 쓰러 와 있다. 까마귀가 여기저기서 우는데 ‘나’는 그게 싫지 않다. 심지어 까마귀를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까마귀를 싫어하는 여자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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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친구라구꺼정! 전 이 동네가 모두 좋은데 저게 싫어요.
죽음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구 자꾸 깨쳐주는 것 같아요.”
“건 괜한 관념일 줄 압니다. 흰 새가 있듯 검은 새도 있는 거요.
소리 맑은 새가 있듯 소리 탁한 새도 있는 거죠.
취미에 따라서는 까마귀도 사랑할 수 있는 새인 줄 압니다.”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이 여자, 결핵을 앓고 있다. ‘나’의 독자라며 먼저 알은 체를 하기도 한 그녀는 까마귀의 울음에서 죽음을 느낀다. 까마귀로부터 지척에 당도한 사신死神을 본 걸까? ‘나’는 여자를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것은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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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나 눈이 오고 또 사흘이나 눈보라가 치고 다시 며칠 흐렸다가 눈이 오고 그리고 날이 들고 따뜻해졌다.
처마 끝에서 눈 녹은 물이 비 오듯 하는 날 오후인데 가엾은 아가씨가 나타났다.
더 창백해진 얼굴에는 상장喪章 같은 마스크를 입에 댔고
방에 들어와서는 눈꺼풀이 무거운 듯 자주 눈을 감았다 뜨면서,
“그간 두어 번이나 몹시 각혈을 했어요.”
하였다.

 

얼마간 안 보이던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나타날 수 없던 사연이 드러난다. 앓았던 것. 이 부분에서 결핵이 어떤 병인지 드러난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쉽게 피로해지고, 피를 토한다. 그리고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병이라는 것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사랑하고 싶어진다. 고백하려고 하나 여자에게는 그녀가 토한 피를 반 컵이나 먹은 정혼자가 있다.

 

이후, <가마귀>는 이렇게 진행된다. ‘나’는 여자의 연인이 될 수는 없지만 그녀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까마귀를 쫓는다. 물푸레나무로 활을 만들어서 까마귀를 쏘고, 피를 흘리며 달아나는 까마귀에게 다시 돌을 던진다. 까마귀의 울음을 없애고 싶었던 것. 그래서 여자에게 있는 죽음의 공포를 없애주고 싶었던 것. 별장지기에게 죽은 까마귀의 목을 나무에 매달라 하고 여자를 기다린다. 한 달 지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나’는 금빛 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까마귀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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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은 결핵에 걸린 그녀를 매력적으로, 이들의 관계를 낭만적인 정조로 그렸다. 결핵이 끔찍한 동시에 낭만적인 질병이란 것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그러면서 살짝 홍조를 띠고, 쉽게 피로해지는 동시에 활력이 넘치고, 식욕이 감퇴하는 반면 성욕이 왕성해지고…. 이렇게 문학은 결핵 환자를 묘사하곤 했다. 오페라 <라 보엠>의 미미와 <춘희>의 마르그리트, 토마스 만 소설 《마의 산》의 한스가 앓는 결핵은 그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데 공헌한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결핵을 이렇게 말한다. “결핵은 시간의 질병이다. 결핵은 삶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도록 만들며, 삶을 돋보이게 만들고, 삶을 정화한다.”

 

처럼 글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사로잡는 주제도 드물 것이다. 생과 사를 생각하게 하고, 결국 그것들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모두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 이후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태준

1904년 철원 출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다 부모가 차례로 사망하자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 휘문고보에 다니다 동맹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에 건너가 고학하던 중 단편소설 〈오몽녀〉를 시대일보에 투고하며 등단. ‘개벽’과 ‘조선중앙일보’ 기자로 일했고, 박태원, 이상, 정지용 등과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1946년 월북했고, 1956년 숙청당했으며, 이후의 행적에 대한 기술은 불명확하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글_ 한은형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장편소설 《거짓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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