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안내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여러분은 장애인과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활동을 한 적이 있나요? 우리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이용하고, 장애인용 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하며, 가끔은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을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전통휠체어에 앉은 지체장애인을 지나치기도 했고, 안내견과 함께하는 시각장애인을 마주치기도 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셨나요? 맞습니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장애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5%인 250만 명이 장애인으로 등록되었다고 하네요.2014년 보건복지부 기준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대상별로 문화 나눔 교육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 제가 담당하는 교육이 바로 장애인 대상입니다. 박물관에서 일하기 전에는 저도 장애인들과 직접 함께 하는 경험이 많지 않았는데요. 현장에서 만난 교육생들은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자녀였고, 또한 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장애인 교육, 그 내용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에서 진행되는 장애인 교육은 김미겸 학예연구사와 학예연구원인 저, 다양한 교육 강사 그리고 교육을 돕는 서포터즈의 협업으로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내용은 주로 민속이나 전통처럼 우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주제로 꾸려집니다. 또한, 특정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대상을 위한 맞춤형 교육도 운영하는데, 1회성과 연속프로그램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육은 박물관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외부로 찾아가기도 하죠. 이렇게 장애인교육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별히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점자도 문자도’를 더 자세하게 소개해 보려 합니다.
박물관은 전시를 통해 소통하고, 전시는 보는 것이 중심입니다.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박물관 이용은 제한적인데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준비한 프로그램이 ‘점자도 문자도’입니다.
봄꽃이 한창이던 4월의 화창한 날, 2016년 첫 번째 문화 나눔 교육 ‘점자도 문자도’ 수업이 박물관 밖,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수업은 민속박물관의 소장유물인 <문자도>를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촉감을 활용한 미술 활동으로 나만의 문자도 작품을 창작하는 시각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입니다. 전체 4회의 교육과정으로, 1~3회의 교육은 관외 외부기관으로 교육생을 찾아갑니다. 마지막 4회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해, 전시 관람을 통해 현장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습니다.
교육은 4월에 시작했지만, 2월 중순 경부터 수업준비를 시작했죠. 대상과 주제, 운영 계획 등이 정해지면, 강사를 섭외하고, 내용을 수정, 보완하는 단계를 거쳐 교육 과정을 개발합니다. 이렇게 수업이 내용이 구체화되면 대상을 모집하죠. ‘점자도 문자도’는 외부 기관이 연계된 수업이기 때문에 기관을 섭외하고, 교육대상을 모집합니다. 그리고 수업에서 함께할 서포터즈를 모집하는 등 교육 제반 사항을 준비하게 되죠. 이렇게 교육이 운영될 틀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지나갑니다.
드디어 첫 날입니다. 2016년 ‘점자도 문자도’는 4회에 걸쳐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0여 명의 교육생이 함께 했습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첫 만남! 교육생, 강사, 운영진 모두 한자리에 모여 가지각색 목소리로 인사하며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수업은 3가지 단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방의 이야기에서 느낀 감상을 색색의 펜으로 드로잉하는 내용입니다. “이번에는 보라색으로 그리고 싶어요.”라고 교육생이 도움을 요청하면, 강사와 서포터즈는 교육생의 눈과 손이 되어드립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서로를 알아가며 공감하고 조언하며 분위기가 제법 화기애애했어요.
일주일 뒤, 두 번째 시간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누며 돈독해진 모습입니다. 이번 시간은 최종적인 작품으로 표현할 <문자도>를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옆 사람의 손을 짚어주기도 하며 점자교재를 활용해 <문자도>를 알아갑니다. 지난 수업엔 상대방의 느낌을 드로잉으로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나의 기억과 경험을 다양한 촉감재료를 활용해 창작합니다. 열 가지의 다채로운 작품이 표현되었죠!
세 번째는 본격적으로 나만의 문자도를 창작하는 순서입니다. 첫 시간에 나눴던 3가지 단어를 사용한 자기소개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단어를 선택해 “나를 표현하는 문자도”를 만들게 됩니다. 먼저 클레이로 문자를 빚고, 골판지와 색색의 반짝이, 털실, 은박지, 빨대, 스티커 같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콜라주 기법으로 작품을 꾸밉니다. 마지막으로 물감으로 채색하죠.
박물관에서 진행된 네 번째 수업은 그간의 작품을 완성하고, 전시관을 관람하는 시간입니다. 이 날은 날도 따뜻해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는데요. 점자교재로 배우고 직접 만들어본 <문자도>를 전시관에서 실제 유물로 관람하고, 촉각체험용 문자도를 활용해 만지며 <문자도>를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점자도 문자도’ 수업은 4주간의 짧은 여정을 아쉬워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조금씩 열리는 마음들
‘점자도 문자도’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장품 <문자도>와 미술활동을 연계한 수업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되었죠.
“점자도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자녀에게 알려줄 수 있는 변화가 생겼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더 많은 음악, 미술 활동을 하고 싶다.”
이런 피드백을 받으며, 저 스스로 문화향유에 제약이 있는 문화소외층을 위한 박물관의 역할과 그 안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게 됩니다. 박물관 장애인 대상 교육에 학습자가 더욱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오늘도 질문합니다. 제가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