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일하며 지금껏 마주한 유물과 자료들이 꽤 많이 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도 ‘포니 픽업트럭’이 아닐까 싶다. 박물관 소장품치고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공산품이라는 성격도 그렇고, 크기나 무게 면에서 압도적이어서 다루기 쉽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소장품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보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첫 차’였던 회색 포니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산업화 유산의 가치
서울 강남구에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1)’에서 ㈜현대자동차이후 현대차 주최로, 자동차 포니를 다룬 《포니의 시간 아카이브》전展이 상설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23년 6월부터 같은 곳에서 열린, 《포니의 시간 PONY, the timeless》 특별전을 상설화한 것이다. 특별전 개막 당시에 소식을 들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가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찾으니 상설전시로 개편되면서 전체적으로 규모가 꽤나 줄어든 것 같았다. ‘포니’라는 역사적 상품을 회고함으로써, 그 역사와 이야기를 입혀서 현재의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는 포니와 더불어 현재 판매되는 차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마치 최신 차들이 옛 포니로부터 연속된 ‘전통’ 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기업이 대중을 대상으로 전시를 열 때, 오래된 과거의 상품을 그 대상으로 다루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료전시물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근본적인 목적을 고려할 때 지난 상품이나 자료를 모아두는 것은 직접적인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큰 비용이 발생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의 전신이 되는 특별전의 경우, 현대차는 이미 없어진 70년대 포니의 콘셉트를 보여주기 위해 예전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를 찾아, 남은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다시 그 차량을 복원해야 했다고 한다.
덧붙여 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산업박람회의 홍보관과 같이 신상품을 공개하거나 보유한 기술 역량을 과시하는 동시대, 혹은 미래지향적인 전시가 더 직접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실제로 그런 경우가 더 흔하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포니라는 과거를 다루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국 사회가 산업화를 진행해 온 지 이미 50여 년이 넘으면서 이제 이를 되돌아볼 시점이 된 것으로 판단한 것은 아닐까. 포니처럼 많은 소비자의 기억에 남은 상품, 나아가 대중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상품을 통해서 말이다.
포니의 기억
전시장에 들어서면 넓은 1층 로비에 새것처럼 복원된 포니와 최신 전기차로 재해석한 콘셉트카 포니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약 50년의 세월과 기술적 차이를 사이에 두고 같은 외형을 공유하는 두 자동차를 보면서 이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2층 전시실에는 전문적으로 복원된 포니 도면을 비롯하여 브로슈어, 디자이너 주지아로를 비롯한 담당자들의 인터뷰와 연구 노트 등, 제품 개발과 생산 당시의 다양한 기록들이 전시되고 있다. 말하자면 개발자, 또는 생산자 중심의 기억과 기록들인 것이다. 다만 전시물 대부분이 복제본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직접 만져보고 책장을 넘겨 가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아카이브 전시의 이점을 잘 살려낸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특히 전시된 자료들 가운데서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그 포니 픽업트럭과 함께 2017년에 우리 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던 ‘현대자동차 공장 건설 일기2)’도 있어 반가웠다.
계단을 따라 다시 1층으로 돌아오면 앞서 보았던 두 차량 뒤편으로 포니의 미니어처와 전시 포스터 등 기념상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전시에 담지 못한 더 많은 내용이 여기서 판매 중인 자료집 『Forever yours』에 담겨 있다. 리트레이스retrace, 즉 ‘되짚는다’라는 시리즈 명이 붙은 이 책에서는 개발과 생산 과정의 자료들은 물론, 과거를 추억하는 사용자들뿐만 아니라 클래식카 애호가나 자동차 복원 전문가, 미니어처 제작자의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포니와 함께하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는 ‘헤리티지 드라이브’라는 클래식카 시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수요가 많아서인지 예약이 매우 어렵지만, 성공한다면 무료로 전문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포니에 동승하여 전시장 주변을 30여 분간 다녀볼 수 있다.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관람을 마치며
전시에서는 포니와 함께한 차주들과 그 가족들의 기념사진들이 공개되고 있다.로비에 전시된 차량 바깥쪽에 슬라이드쇼 형식으로 전개되는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차와 함께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까 상상해 봤다. 포니 픽업트럭에서 어린 시절 ‘우리 집 첫 차’의 추억을 떠올린 나처럼 말이다. 전시를 둘러보고 집에 돌아가 옷장 깊은 곳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옛 사진 앨범을 애써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그 가운데에는 그때의 회색 포니와 함께 찍은 사진은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잊고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새삼 마주할 수 있었다.
1) ㈜현대자동차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시설이다.
2) 국립민속박물관, 『나도 울산사람 아잉교』, 2017, 140쪽 참조.
글쓴이 | 최효찬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