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 앞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 /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까 싶이 묻고 / 박이무우 알암말도 얼잖게 간수하소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10월령 중
쓰임에 따른 항아리의 이름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2013년 12월에 간행한 도록 <옹기>를 보면, 식생활부터 주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쓰임새와 모양의 옹기를 접할 수 있다. 기껏해야 장醬을 담은 항아리 정도만 보고 커온 요즘 세대 사람들에겐 도대체 ‘뭣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생소한 것들이 그득하다. 그만큼 옹기가 한국인의 생활에서 차지한 영역은 광범위했다.
조선 후기 문인인 정학유1786~1855가 지은 「농가월령가」 중 10월의 풍경을 담은 구절을 보면 조선 시대 김장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독, 중두리, 바탱이, 항아리’ 등 모양과 용도에 따라 옹기 종류만도 여러 개가 줄지어 등장한다. 어디 그뿐인가? 김치에 들어갈 고추, 마늘, 생강은 질확독에 갈아 양념단지에 담고, 젓국은 기다란 직선 모양의 옹기젓독에 보관하며, 배추를 씻는 데 필요한 물은 질동이로 길어 날랐다. 무엇보다 김치 담을 때 사용하는 옹기의 진수는 김칫독이다.
혐기嫌氣발효를 하는 김치는 발효되는 동안 산소의 유입을 차단하고 이산화탄소는 배출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용기에 보관해야 한다. 김치가 세계적으로도 독창적인 식품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한국의 옹기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옹기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자기磁器가 발달한 중국의 경우, 데치거나 말려 만든 절임채소문화의 비중이 높은 데 반해, 한국은 생채소를 그대로 넣어 옹기 안에서 자연 발효시킴으로써 완성되는 독특한 김치 문화가 발달했다.
김치냉장고가 지켜내다
1930년대 김장 풍경 사진을 보면 어린아이 한 명이 들어갈 정도로 큰 김칫독이 족히 열 개는 되어 보인다. 최근 탈북한 이탈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지금도 1인당 100kg 정도의 김장김치를 준비해 묻어두고 먹는다고 한다.
반면 남한의 경우, 1970년대부터 주거문화가 급격히 아파트 형태로 바뀌며 옹기는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그나마 협소한 베란다에 조그마한 장독 몇 개를 두는 정도였으나 1970년 마포의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이후 항아리가 적치된 베란다 하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아파트 ‘장독대 철거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마저도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에는 땅속에 묻지 않아도 되는 특수단열재를 사용한 스테인리스 김칫독이 개발되어 시판되기도 했고, 법랑으로 만든 밀폐용 김칫독이 상품화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김칫독을 스티로폼으로 감싸 보관하는 문화만큼 대중화되지는 못하였다.
김치냉장고 제조업체들은 저마다 원조라고 주장하지만, 현재와 같은 김치냉장고의 흥행이 가능해진 것은 90년대 중반 정말 땅속과 같이 온도 편차가 적은 뚜껑을 위로 여는 형태의 김치냉장고가 개발, 시판되면서부터라고 보아야 할 거 같다. 사용해 본 주부들의 입소문을 타며 신뢰를 얻게 된 김치냉장고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까지 하게 되었는데, 자칫 사라질 뻔한 한국의 김장 문화를 연장해준 고마운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 독창적인 음식을 보관하려다 보니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단일 식품 보관 목적의 냉장고가 개발될 수 있었고, 덕분에 우리 김장 문화는 수 천 년을 지난 현재까지 이어져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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