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보고寶庫, 이집트
인류는 수백년 전부터 이집트 문명에 열광했다심지어 이집트 유물은 도굴의 역사만도 수천 년이 된다고 하니 어마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서구의 대형 뮤지엄들을 방문하면 어김없이 마련돼 있는 이집트 특별전시실이 이를 방증한다. 아스완댐 공사로 많은 신전이 수몰 위기에 처했을 때는 또 어떠했던가. 전 세계가 합심하여 기적같이 이들을 구해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집트 문명에 대한 관심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네 번이나1997년, 2009년, 2016년, 2019년 이집트 특별전을 개최한 것으로 갈음되겠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이집트 문명에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이 정도 되면 진짜 이집트 문명이 고스란히 보관된 이집트박물관이 궁금해진다.
사실 이집트는 국가 전체가 살아있는 뮤지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역사의 증거물 같은 신전과 사원과 무덤들이 즐비하다. 지금도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나라다. 그런 이집트에 뮤지엄의 역사도 새로이 세워지고 있다. 오랫동안 국립고고학박물관이 이집트 유물의 보고 역할을 해왔으나 늘어나는 유물을 수용할 공간 부족과 건축 노후화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규모 뮤지엄 건립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피라미드 옆의 대이집트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이 전면 개관을 준비 중이며 지금 소개할 국립이집트문명박물관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이하 NMEC도 2017년 부분 개관에 이어 2021년 전면 개관하여 전 세계 관람객을 맞고 있다. ‘문명’이라는 주제는 ‘민속’의 확장된 개념으로 우리 관의 정체성과도 여러모로 유사점을 가진다.
수천 년 전 문명이 잠들어 있는 뮤지엄
NMEC는 카이로의 구심 올드 카이로에 위치해 있다.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이곳으로 가다 보면 압도적인 도시 경관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공동묘지다. 지하는 묘지이면서 지상은 빈민들의 주거지가 되기도 한다 하니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엄청난 장면이다. 어찌 보면 서울 구도심 고궁 안에 위치한 우리 박물관의 입지와도 비슷하다. 삶이 이어져 있는 묘지를 지나 묘지보다 수천 년 전의 문명이 잠들어 있는 뮤지엄에 다다른다. NMEC는 490,000㎡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본관의 47배의 규모로 지어진 대규모 뮤지엄이다. 수려한 야외 조경과 인공호수로 둘러싸인 뮤지엄은 척박한 사막 가운데 생명력을 뿜는 오아시스 같다. 그리하여 방금 지나쳐온 숙연한 삶의 모습을 금세 잊게 만든다. 5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한 NMEC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집트가 걸어온 역사의 여정을 연대순으로 소개한다. 상설전의 세부 주제는 ‘문명과 여명’, ‘나일강’, ‘문자’, ‘국가와 사회’, ‘문화’, ‘신앙과 사고’로 구성돼 있다. 전시공간은 주제별 구획 없이 거대한 홀에 개별 부스 형태다. 그리고 지하층에는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왕립 미이라갤러리가 위치한다. 전시방식도 방대한 유물 컬렉션과 유물 하나하나의 아우라가 엄청나서인지 서사를 위한 연출이나 스토리텔링보다 갤러리형 구조를 가진다.
인류의 신화와 역사의 뿌리를 증명하는 어마한 유물들
왜 현대 인류가 이집트에 열광하는가에 대한 답을 NMEC에서 찾을 수 있었다. 5,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의 신화와 종교와 역사와 민속의 거대하고 방대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전시장 곳곳에 보석처럼 존재한다. 대여하거나 가공된 것이 아닌 이집트만의 것이고 모두가 진품이며 기록과 근거를 가지는 명확한 유물만으로 가득한 뮤지엄, 그것도 이런 대규모의 뮤지엄은 흔치 않다. 그러니 그 자체가 경이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이집트 신화와 역사를 연결해 감상한다면 더더욱 전율이 있다. 갤러리를 보듯 가볍게 유물을 보고 지나치지 않으려면 각 유물과 연계한 역사나 신화의 해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이집트에서 1호로 한국어를 배우셨다는 에즈딘 선생의 해설은 NMEC의 관람을 더 풍부하게 했다. 이 부분은 파주관 자원봉사 도슨트 프로그램 담당자로서도 느끼는 바가 많았다. 시간 속에 소멸하고 잊힐 수많은 사람과 사건이 기록과 유물로 남아 5천 년을 어제처럼 기억하게 하다니,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뮤지엄의 역할이고 정체성이기도 하겠다. 나아가 5천 년 전 시간을 마주한다는 어마어마한 경험은 사람을 숙연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필자의 경우 2005년에도 이집트를 여행했으니 거의 20년 만의 방문이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동안 필자의 삶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5천 년 시간의 증거물들 앞에서 다시 찾은 20년이 찰나 같고, 지금 머릿속 가득한 상념들이 먼지같이 가벼워지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했다.
전 세계가 주목한 행사, ‘미이라 퍼레이드’로 개관을 알린 뮤지엄
2021년 4월 3일 압델 파타 엘시시Abdel Fattah El- Sisi 대통령에 의해 NMEC의 공식 개관이 선언되면서 거행된 미이라 퍼레이드도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유명한 행사다. 이날 18명의 왕과 4명의 왕비 미이라가 이곳 특별전시실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죽어서도 후손들에게 사랑과 관심과 대접을 받으며 또한 후손들에게 전설이나 역사 이야기가 아닌 몸소 역사의 증거물이자 관광자산이 되어주는 왕과 왕비는 이집트가 유일할 것이다. 이곳 지층에 마련된 미이라갤러리는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마치 무덤처럼 어두운 지하 전시실을 찬찬히 걸으며 한 분 한 분 이름을 새기며 미이라를 마주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사십 대부터는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집트의 왕들은 죽어서도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천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미이라임에도 위엄과 아우라가 느껴진 세티 2세 왕의 모습은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뮤지엄의 본질적 그리고 확장적 역할을 생각하게 한 전시
파주관은 올해 두 개의 특별전을 준비 중인데 하나는 ‘종이’, 다른 하나는 ‘문자’가 주제다. ‘이집트’ 하면 파피루스와 상형문자가 떠오르니 지금 NMEC와의 만남이 인연 같기도 하다. 방문하는 관람객에게 저마다의 관점과 상황에서 영감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좋은 전시라고 생각한다. 국립이집트문명박물관을 통해 필자는 다시 국립민속박물관 그리고 전시를 만드는 일과 관람객과의 소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역시 5천 년 역사와 고유한 민속 문화를 갖는 나라 아니던가. 어떻게, 무엇을 전시라는 공간에 담아가야 할까… 늘 과제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다가오는 2025년은 한국과 이집트 수교 40주년이라고 하니, 양국 뮤지엄에 이를 기념할 만한 교류도 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글 | 최미옥_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