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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전시

《북극–얼음이 녹는 동안》
박물관에 들어온 북극,
기후위기를 말하다

2024년 10월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기후와 환경’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2관을 새롭게 개편할 예정이다. 전시를 통해 환경오염, 이상기후, 전염병, 자연재해 등 현재 우리가 처한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전시 기획을 맡은 후 국내외 다양한 사례와 자료를 조사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어느 전시회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고, 곧 사진 속 전시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유럽의 어느 박물관 미술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박물관 도시, 스톡홀름
스웨덴 스톡홀름에는 10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아 가장 붐비는 박물관 도시 중 하나로 여겨진다. 1628년 첫 항해에서 침몰한 군함 바사Vasa호를 인양하여 전시해놓은 바사 박물관Vasa Museet,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유명한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 팝그룹 아바ABBA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는 아바 박물관ABBA The Museum, 노벨상 수상자와 설립자 알프레드 노벨을 기리는 노벨 박물관Nobel Museet 등 특색있는 박물관이 스톡홀름 도시 내에 모여있다. 그중에서도 스톡홀름 시내 중심부에서 7번 트램을 타고 1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유르고르덴Djurgården 섬은 스톡홀름의 굵직한 박물관들이 모인 ‘박물관의 섬’이다. 또한 느긋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쉼과 여유를 중요시하는 스톡홀름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유르고르덴의 상징적인 박물관, 노르딕박물관
유르고르덴 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르네상스 양식의 첨탑과 높은 박공의 웅장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바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을 대표하는 생활문화사 박물관, 노르딕박물관Nordiska Museet이다. 1873년에 설립된 노르딕박물관은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500년 이상의 스웨덴과 북유럽 사람들의 삶, 문화, 역사, 민속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가구와 인테리어, 의상과 보석, 유리와 도자기, 문헌 등 150만여 점에 이르는 광범위한 컬렉션과 600만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를 보유하고 있어, 북유럽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창의적인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해서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인기많은 박물관이다.

그레이트 홀 천정을 수놓은 영상 ‘북극의 하늘’
전시의 하이라이트. 6m 높이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와 크레바스
박물관 2층에서 내려다본 전시장 모습. 얼음의 균열을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북극을 다루는 북유럽 최초의 전시, 《북극–얼음이 녹는 동안》
노르딕박물관의 그레이트 홀Great Hall은 마치 높은 아치와 기둥이 있는 고딕 성당의 본당을 떠올리게 한다. 공간 자체가 가진 분위기만으로도 압도당하는 메인 홀 중앙에 푸른 빛을 발산하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바로 그 전시, 《북극–얼음이 녹는 동안The Arctic–While the Ice is Melting》이다.
북극만큼 지구 온난화가 빠르게 증가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전시 《북극–얼음이 녹는 동안》은 세계에서 기후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북극의 삶과 변화하는 환경, 현재 직면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과거 북극은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교류가 거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지구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혹독한 기후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환경에 대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Sanne Houby-Nielsen, Nordiska Museet 디렉터

박물관에 들어온 거대한 빙산 그리고 균열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약 6m 높이의 커다란 얼음 덩어리에 깊은 균열, 크레바스crevasse1)를 연출한 것이다.나는 이 사진 한 컷에 매료되었다! 균열은 다양한 방식으로 북극에 영향을 미쳤다. 기후 위기로 인한 균열은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 전통과 현대, 환경보호자와 개발자, 세대 간 균열 등 전시에서는 북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여러 곳에 상징적 장치로 드러내고 있다.

관람객은 거대한 빙산에 생긴 깊게 갈라진 틈을 통해 전시장으로 들어가고, 이 안에서 온전히 ‘북극’을 경험한다. 하얗고 단단한 얼음에서 점차 연두색과 푸른색의 녹은 물로 변하고 결국 어둡고 짙은 푸른 바다에서 완전히 녹게 되는 얼음의 여정을 따라가게 되며, 북극과 극지방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다각적이고 시적이며 위태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북극의 여러 위치에 배치한 웹캠webcam을 통해 북극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북극이 처한 심각함과 시급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기에 전시 중간중간 들려오는 굉음,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는 우리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인 듯하다.

나에게 이번 전시가 좀 더 특별한 이유는 전시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내러티브와 공간 연출이 돋보이는 전시 디자인 때문이다. 북극의 색상, 질감, 빛 등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디자인적 요소들은 공간에 다양한 시퀀스를 만들어내며 시각적 즐거움 너머의 총체적 경험을 선사한다.

생생한 영상자료는 관람객과 북극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혀준다.
건초와 짚으로 연출한 쇼케이스가 인상적이다.
감각적인 공간 연출은 온몸으로 북극을 경험케 한다.

북극의 위기, 우리 모두의 과제
이번 전시는 스톡홀름 대학의 민족학 교수진과 북유럽 전역의 자연·사회과학 전문가, 영화감독, 디자이너, 예술가, 사진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3년여 기간 이어진 긴밀한 협업이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전시 개막 이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의 외무장관들이 노르딕박물관에 모여 북극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북유럽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이는 북극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제 전 세계에 관한 것이고, 우리 모두의 과제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전시가 새로운 담론과 방향성을 제시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전시 《북극–얼음이 녹는 동안》은 주제의 시의성과 기획력, 내용의 전문성, 공간 연출의 독창성과 참신성 등 모든 면에서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전시였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건축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사진 너머 공간이 건네는
무언의 메시지를 듣고 여기, 이곳 스톡홀름까지 온 것이 아닐까. 우리가 만드는 전시는 또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어린이 관람객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이 더 깊어진다.

1)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 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균열이다.


글 | 유민지_어린이박물관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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