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역서는 전남대학교 나경수 명예교수가 번역하고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최근에 발간한 책이다. 정말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원서 제목은 『Mythistory; The Making of a Modern Hostoriography』인데,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역사학과에서 근대 유럽사와 유럽 지성사 등을 강의한 요셉 마리Joseph Mali 교수가 2004년 시카고대학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다. 번역서의 제목은 『신화역사론 현대사학사 만들기』이다.
이 책은 인문학 분야의 연구자료를 구축하고 학술연구 활성화를 위한 국립민속박물관, 그리고 구비문학, 신화학, 민속학 등의 전공 영역에 대한 확장과 심화에 힘써 온 나경수 명예교수가 합작해 이룬 소중한 결과물이다. 이 책이 특히 대단하다고 느끼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는, 번역문에서 중요한 건 의미 파악도 파악이지만 그 의미를 원작자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국어 문장으로 얼마나 잘 옮기느냐가 중요할 터인데, 총 350쪽번역 480쪽에 가까운 분량을 신화학자의 내공으로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그리고 ‘신화’ ‘역사’라는 주제는 영어에 대한 부담으로 대학원에서도 원서강독이 쉽지 않고, 한국어로 번역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개념 용어 하나하나에 최대한 적합한 용어를 선택해 어려운 문장을 쉽게 해독한 노련함이 두 번째 이유다.
신화는 신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태초의 이야기이다. 죽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 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산과 강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신성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또한 신화의 세계는 무수한 상징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상과 환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따라서 신화를 공부한 이들이라면 신화라는 비과학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역사와 어떻게 만나고 이어지는지를 고민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신화역사mythistory”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신화역사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Myth신화’와 ‘History역사’의 복합어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두 단어와 영역의 복합이 아니라 ‘mythistory신화역사’라는 새로운 영역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이 신화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이 한 권의 책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신화역사’라는 용어의 시작에서부터 고대 신화학을 거쳐 현대의 신화학에서 신화역사의 의미를 탐색하려 했다. 책의 목차를 통해서도 방대한 작업을 보여준다.
1장. 신화, 역사, 신화역사라는 용어가 시작된 출처, 2장. 비코의 길: 리비우스에서 미슐레까지, 3장. 야콥 부르크하르트: 신화역사학자, 4장. 아비 바르부르크: 고대 신화학으로서의 역사, 5장. 에른스크 칸토로비치: 새로운 신화학으로서의 역사, 6장. 발터 벤야민: 현대 신화학으로서의 역사, 7장. 이상적 사실의 역사: 조이스로부터의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수많은 철학자 역사학자, 신화학자들의 이름과 도서들이 열거되고 난해하고 선험적인 개념들을 다루고 있어 다소 지루하고 논점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런 이유로 어쩌면 이 책을 끝까지 보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요셉 마리는 누구보다 신화와 역사를 상반되고 만날 수 없는 양단의 극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말에서 썼듯이 “궁극적으로 왜 신화가 여전히 모든 종교, 국가, 문명의 집단적 상상과 문화적 전통을 담보하고 있는지를 지적하였다. 신화의 실체 즉, 역사 속으로 유입된 이야기와 역사가 된 이야기”에 대해 이해시키려 하였고 “신화역사의 중요한 임무는 불가피하고 궁극적이고 가치 있는 개인 및 공동체의 정체성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신화역사의 핵심은 신화가 역사적 사실을 담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점을 제공하느냐의 문제를 설명하려 했다고 나는 이해하였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학자들의 논문과 자료들을 요셉 마리 교수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의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기원전 480년경에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는 상상이 아니라 직접 조사해서 쓴 대서사시라는 점에서 현대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제1장 첫 페이지에 헤로도토스Herodotos, BC484? ~ BC425?를 언급함으로써 현대의 역사에서 신화를 이해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역사에 대한 신화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현재를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중대한 사건과 관련지어 설명해주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반적 서사foundational narratives’라 하였고, 이것이 엘리아데가 말한 ‘원초적 시간’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엘리아데가 말하는 신화는 엄밀히 말해서 역사적이지는 않지만 “세계, 인류, 삶 등에 대한 초자연적인 기원과 역사를 가지며, 이러한 역사가 중요하고, 가치가 있으며, 규범적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신화가 역사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하였다. 또한 신화는 믿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허위나 허구 자체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신화는 대개 공동체의 역사상 뭔가 중대한 문제들을 드러내고,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믿고 삶을 영위하는 실천적 진리와 관련되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논리적이거나 역사적인 추론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역사적인 신화를 소환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원래의 형태는 영원히 파악하기 어려울지라도 신화는 전승되고 반복되어 온 그 뭔가로 알려져 있다”고 정의하였고 크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신화는 감성의 상징적 모델”이라 했다. 인류학자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역사적 상황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인 신화는 전통에 대한 교의적 이야기가 아니라 극적인 이야기이고, 사회적 이정표가 된다”고 했으며, 말리놉스키Malinowski는 “신화는 사회적 헌장”이라 하였다.
사실 번역서의 끝으로 갈수록 지성사의 이해와 검토 없이는 난해하기만한 이 대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어내기는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흐름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유용성으로 확대되어간다는 측면에서 학문과 지성의 힘을 느껴볼 만한 이 책을 추천한다.
글 | 박혜령_섭외교육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