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박물관에서는 #3

상설전시관 1 《한국인의 오늘》
개편 비하인드

지금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두 문자 ‘K’보다 더 뜨거운 감자가 있을까. K-팝, K-푸드, K-무비, K-클래식까지 바야흐로 K의 시대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가 K에 열광하고 K라벨이 붙은 물건은 불티나게 팔린다. 이렇듯 유행의 정점에 서 있는 ‘K-컬처’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특별전시도 아닌 상설전시로 전시하다니……. 주제 선정부터가 큰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대중문화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K-컬처를 ‘민속’의 시각에서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전시 개편 주제가 정해진 순간부터 희뿌연 안개 속을 헤쳐 나가는 막막한 심정이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박물관이 그동안 고민하고 추구해온 방향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오랜 기간 과거의 민속뿐 아니라 민속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전시로 표현하기 위한 시도를 거듭해왔다. 이번 전시 개편에서도 《한국인의 오늘》이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을 대대적으로 전시에 담는다는 점에서 이 험난한 모험의 의미와 새로움을 찾을 수 있었다.

어제가 아닌 ‘오늘’을 이야기 하는 전시
상설전시는 박물관의 정체성을 반영한 대표 콘텐츠를 보여주는 곳으로 ‘박물관의 꽃’이라 불린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는 《한국인의 하루》, 《한국인의 일 년》, 《한국인의 일생》 총 3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에 상설전시관1 《한국인의 하루》는 2018년 개편 이후 5년 만인 2023년 12월, 《한국인의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새로 단장한 상설전시관1은 ‘K-컬처’라는 주제 아래 3부의 메인 구성과 프롤로그 및 에필로그로 채워졌다.

1부 ‘쓸모 있는’은 과거 유물로 알려진 물건들의 새로운 쓰임에 대해 전시하고, 2부 ‘자연스러운’에서는 자연과 일상이 공존하는 한국인의 생활을 보여준다. 3부 ‘함께하는’은 타인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오늘날 한국인의 일상을 전시로 풀어냈다. 이를 통해 K로 각광받는 오늘이 있기까지 그간 우리가 살아온, 그리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반추한다.

전시 디자인도 동시대성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민속’과 ‘K-컬처’라는 다소 상반된 이미지의 콘텐츠를 현대적이고 조화롭게 담아내고자 했다. 전시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온화하게 연출하고 중성적 색채를 주조 색으로 선정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물이 온화하고 중성적인 바탕에서 더욱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콘텐츠와 어우러지며 변주가 가능하도록 구조 및 집기 디자인에서도 장식적인 요소를 줄이고 담백함을 더했다.

도입부 공간: 아름다운 빛과 음악으로 기대감을 높인다.

빛과 음악, 미디어로 마주하는 전시
전시의 도입부는 음악과 빛의 합작collaboration으로 시작한다. 장구, 대금 등 전통악기와 피아노로 이루어진 잔잔한 연주곡은 본격적인 전시에 앞서 분위기를 환기한다. 여기에 아름다운 빛의 연출과 도입부 대표 유물의 마리아쥬mariage는 관람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새로운 공간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이 공간은 한국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한국을 바라본 외국인의 시선은 텍스트 그래픽으로 담아냈고, 오늘날 세계인이 열광하는 K-한국의 이미지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채로운 빛의 연출로 보여준다. 여기에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의 연주곡이 더해져 더욱 감성적인 공간으로 완성됐다. 전통악기와 현대 악기의 조합으로 구성된 연주곡은 시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K-컬처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1부는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해온 호미, 지게, 한지, 옹기로 대표되는 ‘쓸모 있는’ 물건들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 물건들이다. 이 물건들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관람자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이 물건들을 진열장 속 유물이 아닌 쇼윈도 너머의 상품처럼 보이게 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접근에 다다랐다. 그래서 1부 공간에 들어서면 유물보다 미디어가 먼저 눈에 들어오도록 4개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마치 상업 광고처럼 심플하지만 함축적이고 심미적인 영상을 구현하여 관람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다. 익숙함에 가려졌던 쓸모 있는 물건들의 새로운 면모를, 미디어를 통해 발견하고 천천히 곱씹으며 ‘다시 보기’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백자의 동그란 형태감과 색감을 살려 디스플레이 한 2부 도입 공간
2부 전경

자연과 쉼의 여유를 즐기는 전시
2부는 ‘자연-소색-다색-뷰티’로 이어지는, 자연에서 비롯된 우리만의 미감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연에서 뷰티까지의 연결성을 시각적으로 부각하기 위해 2부 공간 전체가 그라데이션gradation으로 표현된 하나의 거대한 그림처럼 보이도록 했다. 소색과 다색 코너 사이에는 흰색의 두루마기와 유색의 장옷, 도포를 순차적으로 배치해 연결성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또, 선조들이 자연을 늘 곁에 두었던 것처럼 관람자들도 자연 속에서 쉼과 함께 전시를 여유롭게 즐기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연을 전시관 안으로 끌어들였다. 대형영상이 끝나면 특수스크린 뒤의 조경공간이 은은하게 비치도록 계획했는데, 조경 연출은 ‘한국적인’ 것,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초점을 두었다. 동네 뒷산 어귀, 시골집 창밖 풍경같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한국만의 정서를 담아내고자 했다.

몰입과 참여로 완성하는 전시
3부는 나와 나를 감싸는 타인과의 소통, 연결 그리고 연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관념적인 이야기를 어떤 물건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늦은 퇴근길 소주 한잔에 담긴 소통과 연대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단지 몇 개의 물건만으로 잘 전달될 수 있을까. 이에 개편팀은 몰입형immersive 영상을 3부 공간 전체에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냈다. 또 영상스크린을 곡면으로 설계하여 전시 공간에 들어선 관람자가 영상의 일부가 된 듯 더욱 몰입도를 높였다. 영상은 실사 촬영을 기반으로 제작하여 우리가 소통하고 연대하는 모습들을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계획했다. 마지막 에필로그 ‘The-K존’은 체험과 놀이, 쉼이 결합된 공간으로 꾸몄다. K-컬처의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우리관람자가 전시 콘텐츠의 일부가 되어 만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늘어지게 앉아 K-팝을 감상하고, 책을 읽으며 K를 즐기고 느낄 수 있다.

K-컬처를 향유하는 공간인 The K-존 전경

내일을 위한 디자인, 모두를 위한 디자인
이번 전시 개편에서는 국립 박물관이 마땅히 지향해야 하는 새로운 시도가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환경과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재활용 소재를 전시 마감재로 적극 활용했다. 폐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소재를 활용해 ‘The-K존’의 스툴, 벤치, 테이블 상판 등을 제작했다.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유의미한 실험이었고, 향후 진행되는 특별전시에서도 지속적인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3년 전 필자가 담당한 상설전시관3 개편에 이어, 보다 나은 관람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모두를 위한 디자인Universal design’ 1)은 이번에도 계속되었다. 일부 코너에만 적용했던 디지털 레이블은 모든 유물로 확대 적용하고, 풍부한 사진 자료와 상세설명을 부가했다. 점자패널, 점자 배치도촉지도, 큰 글자 설명책Large print guide2)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촉각물에는 음성해설도 추가했다. 이번에 새롭게 시도한 것은 전시관 내 공간별 특징소음, 밝기, 밀도 등을 표기한 감각지도Sensory map3)를 전시관 입구에 마련한 것이다. 외부 자극에 민감한 관람자들은 관람 전에 정보를 확인하고 주체적인 관람계획을 세울 수 있다. 또 점자표기를 더한 유인물handout 형태로도 제공하여 관람자들이 편리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관 바닥에는 동선을 안내하는 대형 사인물을 설치하여 관람 순서를 직관적으로 안내한다. 촉각 전시물이나 음성해설·수어해설 등의 감각 매체가 있는 곳 바닥에 별도의 색을 표시하여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였다. 이러한 시도들은 ‘누구에게나’ 편리한 관람을 위해 보다 다양한 채널로 전시물을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K-컬처’에 담긴 여러 가지 이미지를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하고, K-컬처의 알파벳‘K’와 ‘사람’의 모양을 이중적인 조형성으로 풀어낸 포스터 디자인. 그래픽 디자이너 유나 킴 씨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익숙하고 새로운 오늘을 만나는 전시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는 모두에게, 언제나 열려있다. 새롭게 개편한 상설전시관1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외국인에게는 낯설었던 과거 한국의 모습이 세계를 열광케 하는 K-컬처가 되기까지 한국인의 하루하루가 만들어낸 ‘우리 모두의 익숙하고 새로운 오늘’을 이곳에서 만나보길 바란다.

1) 남녀노소, 장애인·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편리하고 안전한 관람환경을 설계하는 것
2) 시력이 약한 노년층이나 저시력자를 위해 큰 글자 및 점자로 이루어진 전시물 설명 책자
3) 소음, 밝기, 밀도 등 공간별 특징을 표기한 안내지도이다. 자극적인 요소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주체적인 관람계획을 돕는다.


글 | 이보라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