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양조장釀造場을 찾아다니기 시작한지 여섯 달이 지났다. 다니다보니 가깝게는 경기도 양평부터 멀리는 전남 여수의 낭도·개도까지 전국 방방곡곡 40여 군데 이상의 양조장을 방문했다. 양조장을 조사한다니 하나 같이 주변 사람들은 “술은 실컷 먹겠네”, “나도 그런 조사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등 부러움(?)의 시선과 말을 쏟아냈다. 물론 평소 술을 즐겨먹는 조사팀 역시 이런 환경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사를 진행하면서 양조장 안에서 술을 먹었던 기억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양조장을 가득채운 술 향기가 워낙 강해 술 생각이 싹 사라지기도 했지만, ‘술의 맛’이라는 결과물보다는 양조장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술이 생산되고 소비되는지 그 과정과 양조장이라는 공간이 지니고 있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조사하는 것이 조사팀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11년부터 근현대 생활문화 조사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근현대 생활문화 조사의 핵심은 근대 시기부터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을 낯설게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이 갖고 있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데 있다. 근대 시기 등장하여 읍면 단위 어느 지역이던 자리매김하며 숨쉬어온 양조장은 이런 관점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공간, 양조장
양조장은 근대의 공간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술은 집집마다 필요할 때 빚는 가양주家釀酒 형태로 전승되어왔다. 전통적으로 술은 농사일이나 제사 등 일상적인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과 주막酒幕에서 술을 만들었다.『조선주조사』(1935) 등 관련자료를 보면, 1909년 주세법 발포로 인해 등록된 자가용 주조의 면허 수는 최대 358,112건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제가 세수를 늘리기 위해 주세법(1909)을 제정하여 면허가 있는 사람들만 술을 만들 수 있게 하였고, 주세령(1916)을 공표하면서 자가용 술에 대한 과세를 양조장의 판매용 술보다 높게 매기는 강도 높은 면허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1934년 자가용 술의 제조 면허제를 폐지하면서 가양주는 밀주로 단속의 대상이 되었고, 판매용 술만이 ‘합법적’인 술로 인정되었다. 결국, 양조장은 합법적인 술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근대의 공간인 것이다.
양조장은 주세법(령) 등장과 함께 탄생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정책과 통제에 따라야만 했다. 술의 원료, 주조기술, 도구, 유통 및 판매 등 전 분야에 걸쳐 제도로 양조장을 규제 및 관리하였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는데 특히,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술의 원료가 시기마다 급변하게 되었다. 1965년에는 쌀로 만든 막걸리 생산을 중지시키고, 밀가루 80%, 옥수수 20%인 막걸리를 만들었다. 1977년 대풍大豐이 들어 일시적으로 쌀막걸리 생산을 허용했지만, 1979년에 다시 중지시켰고 1990년이 돼서야 쌀막걸리 생산이 다시 허용되었다. 지금은 쌀막걸리가 보편화되었지만 현재 50대 이상의 연령대가 추억하고 있는 양조장 막걸리는 모두 밀이 주원료로 사용된 밀막걸리였다.
1960년대 막걸리를 제성하는 모습
양조장을 오랜 기간 운영하거나 이용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최고의 전성기는 1970년대이다. 1960년대 말부터 추진된 양조장 대단위화 및 지역 통폐합 정책으로 인해 읍면 단위별로 양조장은 한 곳만 운영할 수 있게 되었고, 술(막걸리)의 판매 범위도 읍면 단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서 지역 내 독점으로 술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막걸리의 경우, 1974년 168만㎘의 역대 최대 생산량을 기록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막걸리 선거’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선거 때마다 막걸리가 등장했고, 농주農酒라 불릴 만큼 농사철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판매가 이뤄졌다. 이 당시 양조장은 지역사회 내 최고의 기업이자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던 최고의 직장이었다.
지역사회의 랜드마크, 양조장
양조장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다. 지금도 양조장은 대부분 지역사회 중심에 위치해 있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양조장의 입지를 정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물’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하지만, 대부분 은행·우체국·면사무소·초등학교 등과 인접하여 위치한 것을 봤을 때 단순히 좋은 물만을 찾아 자리 잡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오히려, 관공서처럼 지역민들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을 가장 중요하게 본 듯하다.
양조장은 하나의 건축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조장 건물로는 현재 충북 진천의 덕산양조장과 경기 양평의 지평양조장, 경북 문경의 가은양조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세 곳 모두 1930년대 오직 술을 만들고 저장하는 공간으로 설계되고 지어진 건축물이다. 이 세 곳이 아니더라도 근현대 시기 신축된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사입실, 종국실과 같이 온도 관리가 중요한 곳은 오늘날의 단열재의 기능을 하는 왕겨를 벽과 천장에 넣거나 통풍을 위해 위아래로 이중창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2층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동선을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설계된 공간적 배치는 일반 가정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도약하는 양조장
한때 누구나 양조장을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술심부름을 하러 찌그러진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을 찾았고, 농부나 노동자들도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 한 사발로 고된 하루를 달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막걸리가 맥주와 소주에 밀려나고 정부의 규제 강화로 외부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양조장을 찾는 이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2009년부터 불기 시작한 막걸리 열풍은 양조장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매년 우리술 품평회를 개최하고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막걸리 날’로 지정하면서 문을 닫았던 양조장을 다시 시작하거나 새롭게 양조장을 시작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났다. 특히, 2010년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약칭 전통주 산업법)이 마련되어 전통주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체계화되었고, 2016년에 소규모주류 제조 면허 법령이 공포 시행되면서 과거 주막처럼 식당에서도 면허를 받고 술과 음식을 함께 팔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현재 한국의 양조장은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물론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 문을 닫는 양조장을 수차례 목격했지만, 대중과 소통하며 성장하고 있는 능동적인 양조장도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과거의 양조장이 폐쇄적이고 정적인 공간이었다면, 최근의 양조장은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오감을 충족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2013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하고 있는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은 이러한 양조장의 새로운 도약을 지원하고 있다.
다시, 양조장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다.
글_김승유│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