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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교육을 받거나 직업을 가지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집안일을 했다. 그러나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신식교육을 받는 여성들이 생겨났고, 조금씩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거에, 그리고 지금 여성들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 지난해 여성기자 최초로 정년퇴임을 한 유인경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청첩장이 사표였던 시절

 

지난 1982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해 지난 2016년 정년퇴임한 유인경 씨는 경향신문 부국장 겸 선임기자, 시시주간지와 여성지의 편집장을 거쳤다. 30년 동안의 기자생활, 그리고 여성기자 최초로 정년퇴임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그녀에게 사람들은 유독 관심을 보였다. 한 직장에서 정년퇴임하는 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아마도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례가 된 것이다.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만해도 여성기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20세기엔 여성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호의적이지 않았고, 보수적인 신문사에서 여성기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요. 정치부나 사회부는 당연히 남성기자들이 가는 곳이었어요. 여성들은 문화부나 생활부, 연예부에서 일하는 게 일반적이었죠. 결혼해서 아이라도 있으면 일하기는 더 힘들었어요. 청첩장이 곧 사표이던 시절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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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직장에 다니다가도 결혼을 해 아이를 낳으면 퇴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육아가 여성의 의무라고 여겨졌던 사회에서 육아 대신 직장과 자신의 커리어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성애가 부족하다며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고, 일을 선택한 여성들은 아이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기도 했다. 유인경 씨 주위에도 일과 육아를 고민하다가 결국 사표를 내는 동료와 후배들을 많았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모두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요즘에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 Life Balance를 강조하는데, 모든 직장인들은 이게 쉽지 않다는 걸 알잖아요?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하는 ‘일-가정 양립’ 역시 여성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죠. 저는 육아보다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많은 여성들은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 그리고 신문사 여자후배들을 보면 참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여성들이 당당하고 유연해지길

 

여전히 유리천장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대학진학률은 여성이 남성을 넘어섰으며, 행정고시 등 주요 시험에서도 여성들이 수석과 차석을 차지했다는 뉴스를 접하곤 한다. 금녀禁女의 직업도 점차 사라져 어느 분야에든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많은 여성들의 노력 덕분이죠. 물론 지금도 여성차별이나 여성이라서 겪는 불합리한 일들이 많죠. 그러나 여자라서 피해를 당한다다고 불평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조금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요. 또 강하게 대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에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죠.”

여자에 대한 사회적 변화는 출산 성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0~1990년대는 남아선호가 강했다. 아이를 많이 낳던 1970년대까지는 성별을 따지는 분위기가 덜 했으나, 1980년대부터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운동이 진행되면서 남아 선호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출생비율을 보면 여아 100명, 남아 116명일 정도로 남자아이 출생이 많았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저 때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했어요. 아들을 낳으려고 온갖 미신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죠. 딸 3~4명에 막내만 남자인 집도 적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아선호사상’이라는 말이 생겼지요. 그리고 제가 어릴 때는 반장은 무조건 남자가 했었어요. 여자는 아무리해도 부반장밖에 못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많이 변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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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들의 삶 조명하면 흥미로울 것

 

그렇다면 여성을 주제로 박물관에서 전시를 한다면 어떤 기획을 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 후기에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이 나타나는데요. 신여성의 대표적 인물인 일엽 김원주 등의 당시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사상 등을 보면 정말 멋있어요.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세련됐고 당당했지요. 당시 신여성들의 모습을 전시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신여성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부터 그들의 사진이나 소품 등을 소개한다면 흥미로운 전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당시 신여성들은 높은 구두를 신고 머리는 파마를 했으며 크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착용했다. 겉모습만 꾸민 것은 아니었다. 신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일본유학을 다녀오거나 국내의 중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세계 문학서나 사상관계 서적을 읽기도 했다.

“신여성들은 부모가 정해주는 배필을 만나 자식을 낳고 사는 것이 아닌, 자유의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해서 자유연애를 하다가 자유결혼을 하는 것을 꿈꿨어요. 애인을 여러 명 두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어요. 이러한 여성들의 역사가 새롭게 주목된다면 좋지 않을까요?”

여성들의 지위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여성들이 혼인 후에도 남성의 성姓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성을 갖고 있었다. 남편과 사별했을 때 언제든지 재혼할 수 있었고, 자녀균분상속으로 여성도 많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남자와 여자 간의 차이와 지켜야 할 도리가 강조되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크게 하락하였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은 어떨까? 제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을 테지만, 그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글_유인경 │ 방송인
전 경향신문 부국장 겸 선임기자.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던 해인 1982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전업주부로 3년을 보낸 후, 결혼생활이 로맨틱영화가 아니라 처절한 다큐멘터리임을 확인하고, 1990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다. 2016년 여성 기자 중 최초로 정년퇴임한 기자가 되었고, 올해의 여기자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내 인생 내가 연출하며 산다》, 《유인경의 해피 먼데이》, 《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 《내일도 사랑을 할 딸에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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