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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기록, 화장

화장은 모든 문화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존재했고, 시대에 맞춰 변해왔다. 어쩌면 그 시대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와 방법론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민속’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장만큼 온전히 기록되기 힘든 민속도 드물다. 사람의 얼굴에 따라, 유행에 따라, 쓰이는 화장품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물론, 처음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럼 우리는 화장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이러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국내 메이크업 분야의 일인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을 만났다.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며

 
화장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아주 오래전 시작된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화장은 종교의식에 필요한 치장이나 치료 행위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지금과 같이 아름다움을 위한 독립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요즘의 화장은 얼굴에 대한 기술로 국한됩니다. 아직 헤어와 스타일링, 메이크업을 함께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점점 더 그 경계가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화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정샘물은 지금을 ‘아름다움을 경쟁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한 화장으로 나를 꾸미는 데 목적이 있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나의 의도를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것이 화장의 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6년 메이크업 트렌드가 뭔 줄 아세요? 바로 ‘노 메이크업 메이크업’이에요. 메이크업하지 않은 것처럼 메이크업하는 거죠. 누구에게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 있잖아요. 가장 ‘나’다울 수 있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행위가 바로 화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뷰티의 시작점 또한 바로 그곳입니다.”
 
대중이 트렌드를 쫓는지, 트렌드가 대중을 쫓는지는, 닭과 달걀의 우선순위 다툼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트렌드나 장소, 목적에 맞춰 색을 입히는 것에 앞서 아름다운 시절의 나로 되돌려 놓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화장이다.
 
 

K-뷰티, 트렌드와 시대를 앞서다

 
최근 K-뷰티의 인기가 뜨겁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화장품을 개발했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빠른 성장을 이룩한 데에는 질 좋은 화장품 개발 기술도 한몫했지만, 역시 자연스러운 화장법에 대한 좋은 평가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메이크업의 경우 해외 다른 나라들보다 자연스러운 표현력이 특징이자 핵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유의 피부 결을 잘 살리는 데 능숙하죠.”
 
재미있는 것은 K-뷰티의 ‘자연스러운’ 화장법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송나라 때 쓰여진 《고려도경》에는 고려 여인의 화장에 대해 ‘부인이 치장하는 데 있어서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분을 바르더라도 연지는 칠하지 않았으며 눈썹은 이마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그렸다.’는 내용이 있다.문화원형백과 「고려도경에 나타난 고려 여인 관련 자료」 흰 분칠과 가늘고 긴 눈썹 등이 유행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화권인 주변국의 옛 자료만 보아도 진한 화장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가부키 화장이나, 중국의 경극 화장처럼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게 진한 화장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배우가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새로운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연극판에서 조차 우리나라는 화장이 아닌 탈을 사용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화장은 ‘나’를 감추는 용도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국내 색조 화장품의 발전은 기초 화장품에 비해 늦어 10여 년 전만 해도 해외 브랜드들이 국내 메이크업 시장을 독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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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쓰였던 분통들
 

“제가 처음 메이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색조 화장품은 해외 브랜드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색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맞지 않아 화장품을 섞어 색을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터뷰할 때는 조금 곤란하기도 했죠. ‘어떤 색을 쓰셨나요?’ 하고 물으면 너무 많은 색을 늘어놓아야 했으니까요.웃음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고 나니 K-뷰티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한국인의 정서에 맞춘 자연스러운 표현력을 핵심으로 한 화장품과 피부결까지 살린 섬세한 화장 기술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익숙해진 요즘의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화장법은 새로운 트렌드가 된 것이다.

 
 

화장, 색으로 남다

 
자연스러운 화장이란 쑥스러울 때 뺨 위로 올라오는 홍조나 눈동자의 색, 입술을 깨물면 올라오는 붉은 색 같은 ‘나의 색’을 잘 발전시켜 얼굴에 구현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색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메이크업을 가르치는데 도저히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사용하는 말의 대부분이 ‘아름답게’, ‘예쁘게’, ‘곱게’ 같은 형용사였죠. 그러니 학생들의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요. 한계를 느끼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어요.”
 
서른 살이 넘어 유학길에 올랐다. 그가 선택한 전공은 바로 순수 미술. 인물화를 수도 없이 그리고 수많은 색을 사용하고 나니 형용사로만 표현되었던 색들이 비로소 명확해졌다. 명확한 지식을 얻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것을 도식화하는 일.
 
“이제 설명이 훨씬 쉽죠. 레드 색상과 보색인 그린 색상을 옅게 섞으면 다크 브라운 색상이 돼요. 깊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어울리는 색상을 찾은 거예요. 레드와 그린이요.”
 
이는 아직 진행 중인 작업이다. 여전히 사람과 색과 기술의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고, 이론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미 일인자로 우뚝 선 그가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것은 역시 ‘전승’을 위해서다.
 
“제가 가진 화장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다음 세대의 후배들에게 오롯이 전달해주기 위해 순수 미술을 배웠다면, 이를 이론으로 만들고 기록하는 과정은 그다음 후배들, 또 그다음 후배들까지 고려한 작업이에요. 이 작업이 완성되면 메이크업도 하나의 예술로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화가에게 캔버스가 있다면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는 얼굴이 있다. 굴곡지고 다채로운 얼굴 위에 색을 덧입히는 일, 그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러나 온전히 남아 시대를 살아가는 캔버스와는 달리 영원히 남을 수 없는 화장의 기록은 여전한 숙제다.
 
화장은 국가와 문화,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함축하고 있던 ‘민속’이다. 그래서 정샘물은 화장을 기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누군가 이 기록을 보고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우리를 기억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화장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향수이자, 개인의 역사이므로.
 
 

정샘물 |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및 정샘물 뷰티 대표. 연예인 메이크업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늘 새로운 화장법으로 시대의 유행을 선도한다.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의 컨설턴트이자 동시에 뷰티 방송계의 스타 방송인. 이제 자신의 기술과 정보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 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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