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3

새해 ‘복’ 관련 소장품, 복조리
“복조리 사시오, 복조리요”

글 김윤정(민속기획과 학예연구관)


생각해 보면 행복의 근원은 역시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과 무탈한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도 농사가 잘되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었으면…,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일 없이 평온한 날들이었으면…’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습니다.
그 바람을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의식을 행해왔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점차 풍속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행복의 근원은 역시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과 무탈한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도 농사가 잘되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었으면…,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일 없이 평온한 날들이었으면…’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습니다.
그 바람을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의식을 행해왔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점차 풍속이 되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2 <한국인의 일 년> 전시실

인류가 생존하고 발전하게 된 기반은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에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만들어낸 삼각주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허강 유역의 황하 문명, 이른바 세계 4대 문명 역시 강의 범람으로 만들어진 비옥한 토지에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을 직접 ‘생산’해 내는 것이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것을 경험한 인류에게 농사는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사의 수확량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고대부터 사람들은 항상 한 해의 농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다양한 기원 행위를 해왔습니다. 중국 한나라 문제文帝(재위 기원전 180~157)의 조서에서 유래한 “농자천하지대본 민소지이생야農者天下之大本也 民所恃以生也(한서漢書, 문제기文帝記)” 즉,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며 백성들이 의지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에서 앞머리만 떼 내어 장승에 새기고, 농기에 써서 한 해의 풍요를 기원했습니다

정월은 한 해가 시작되는 시기이면서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기도 합니다. 정월 풍속은 농경문화에서 유래해, 한 해의 풍요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례와 놀이로 발전한 것들이 많습니다. 생솔가지로 만든 달집에 불을 붙여 액운을 쫓고 복을 비는 달집태우기, 논밭에 불을 놓아 해충을 죽이고 땅의 기운을 북돋울 뿐 아니라 액운을 쫓는 의미까지 갖는 쥐불놀이, 마을 공동체 전체가 참여해 한 해 농사의 성공을 점쳐보고 노동의 협동심을 기르는 줄다리기 등도 모두 농경에 기반해 한 해의 행운과 풍요를 기원하는 풍속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몸의 건강과 행복한 생활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풍속도 더해졌습니다.
대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깨물고 오곡밥을 먹어 부스럼 없는 건강한 한 해를 바라기도 합니다. 또, 나쁜 기운을 막고 복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 해 첫날 새벽에 복조리를 사서 집안에 걸고 대문에 세화를 붙였습니다. 복조리를 사서 집 안에 걸어 두는 풍습은 1980년대까지도 새해 첫날이나 대보름에 흔하게 볼 수 있던 풍경이었습니다.

‘섣달 그믐밤을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밝히고 나면 새벽에 처음 들리는 소리는 “복조리들 사려…” 외(치)는 그것이다. 새해를 맞는 이날 새벽에 인간 만복을 조리로써 건져 들이라는 의미이니 우연만 하면 두서너 개 사 둘 만도 한 일이라 대개는 사지 않는 집이 없다. (중략)’
1932년 2월 8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제석부터 상원까지의 세시 이야기에 나온 내용입니다.

조리는 원래 쌀이나 잡곡 등을 이는 전통 조리 도구입니다. 대나무나 싸리대를 성글게 엮어 국자 모양으로 만듭니다. 옛날에는 쌀의 껍질을 벗기는 기술과 도정된 쌀을 잡물이 섞이지 않게 하는 기술이 부족해 쌀에 돌이나 껍질 등이 섞이는 경우가 종종 있어 조리는 생활필수품이라 할 정도로 집집마다 있었고 80년대까지 플라스틱으로 된 것을 사용했습니다.

이 조리를 섣달그믐부터 설날 새벽에 돌아다니는 장수들에게 사서 집안 곳곳에 걸어 두면 복이 온다 하여 ‘복조리’라 불렀습니다.
조리가 먹을 것과 직결되는 쌀과 같은 곡식을 걸러 건져내는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좋은 것을 건져 올린다는 확장된 의미로 복조리를 사서 걸어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성글게 엮어 생긴 복조리의 무수한 구멍의 모양이 무엇인가를 지켜보는 눈 모양 같다 하여 잡귀와 부정으로부터 한 해 동안 집안을 지켜 줄 것이라 해서 복조리를 걸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조리 장수는 조리를 팔기 위해 섣달그믐날 밤에 “복조리 사시오, 복조리요.” 하고 외치면서 밤새도록 골목을 돌아다녔고 행여 나쁜 기운이 들어올까 설날 파는 조리는 값을 깎지 않고 샀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두세 개 이상 샀기 때문에 꽤 많은 양의 복조리를 만들어야 해서 농한기에 복조리 공동 작업장이 생길 정도였고, 어떤 마을은 복조리마을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장식용 복조리 장수

복조리를 짜고 있는 사람(국립민속박물관 민속아카이브 00104357)

벽면에 걸린 복조리(국립민속박물관 민속아카이브 00516514)

제액을 막기 위한 벽사의 세시 풍속
정초에는 제액除厄을 위한 여러 가지 세시풍속도 있습니다. 제액에는 예방을 위한 방액防厄, 태우는 소액燒厄, 멀리 보내는 송액送厄 등이 있는데 정월의 세시는 대체로 이들이 이들이 중복됩니다. 부적의 역할을 하는 세화歲畵도 방액하는 기능을 가진 그림이었습니다.
세화歲畵는 묵은해를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모두들 평안하고 풍요롭기를 비는 마음으로 문에 붙이고, 또 서로 선물했던 그림입니다. 요즘은 새해가 되어도 문에 그림을 붙이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잊힌 풍속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문에 붙이는 것은 매년 새로 갈아붙였기 때문에 유물이 남아 있기 어려워 더욱 쉽게 사라졌습니다.

세화歲畵로는 문배도를 많이 붙였습니다. 액막이로 계견사호鷄犬獅虎, 용호龍虎, 신도·울루, 울지공·진숙보와 같은 문신門神들을 그림이나 글씨로 그려 사용했습니다. 신도·울루는 문배의 기원이 되었던 전설 속의 인물들입니다. 갑옷을 입고 손에 예장을 들고 허리에 보검을 차고 있는 모습입니다. 울지공·진숙보는 당나라의 실존 인물들이 신격화된 것으로 흔히 금갑장군金甲將軍으로 부릅니다. 이들은 길이가 한길이 넘고 황금빛 갑옷을 입었으며, 한 장군은 도끼를 들고, 또 한 장군은 절을 든 모습입니다.
문배門排는 궁궐 대문이나 관아의 문과 같은 커다란 문에 붙이던 것에서 점차 민간에 확산되었던 풍습입니다.
과학이나 논리로 따지자면 웃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의식이고 행위이지만, 이런 작은 바람을 위한 풍속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이 묻어 있습니다.

민속소식 제313호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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