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민족학박물관은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새로운 박물관이다. 그 이유는 박물관 개관연도가 무려 1872년으로 유럽에서도 가장 초기의 전문 박물관 중 하나이지만, 작년인 2022년 3월에 박물관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개관하였기 때문이다. 깊은 역사가 깃든 신축된 박물관 건물은 7,000㎡의 전시 공간과 서점, 레스토랑, 도서관, 자료센터와 정원까지 갖추고 관람객을 향해 열려 있다.
단순하면서 역동적인 푸른 조각 – 박물관 공간
헝가리민족학박물관은 부다페스트시 중심에서 그다지 멀지 않으며,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녹지 중 하나인 도시공원 입구에 위치한다. 버이더후녀드성, 회쇠크 광장, 세체니 온천 등 부다페스트에서도 손꼽히는 관광 포인트가 즐비한 이 도시공원에서도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갖춘 이유는 그 독특한 건축물 때문이기도 하다. 박물관 건물은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의 빨래방망이나 떡살같이 폭이 좁고 기다란 사각판이 약간 휘어진 형태인데, 그 중심부는 반쯤 땅속에 파묻혀 있는 독특한 모양새이다. 또 어떻게 보면 그 모양은 거대한 원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과도 같은데 건물의 두 끝을 따라 원을 그리면 그 지름이 1㎞라고 하며, 부지 면적은 37,000㎡에 달한다. 건물의 지붕에 해당하는 윗면은 7,000㎡ 규모의 옥상정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24시간 관람객들에게 개방된 열린 공간이다. 전시실은 지상 1층과 지하 1~2층에 걸쳐 조성되어 있고, 지상 2층은 외부 정원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강당과 라운지 등 커뮤니티 공간 등으로 조성되어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박물관 외벽은 통유리이며 그 밖을 둘러싸는 철제 픽셀 이미지가 단순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박물관 건물 역시 단순한 형태로 도시공원의 전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드는 동시에 하늘을 향해 살짝 뻗은 모습은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긴 벽면을 따라 펼쳐지는 세계 도자기 여행 – 도자기 전시
상설 전시의 일부이기도 한 세계 도자기 전시Ceramics Space는 40m 길이의 계단 양쪽을 따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약 4,000개의 도자기를 선보이는 공간이다. 헝가리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5대륙 35,000점 이상의 도자기 중 극히 일부를 선보이고 있는 이 수장형 전시의 콘셉트는 재미있게도 ‘좌뇌와 우뇌’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 도자기 전시 중 하나는 좌뇌에 해당하며 지리적 영역, 도자기 형태 등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부분은 우뇌에 해당하여 도자기 색채, 변형과 복제, 영감, 터부와 메시지 등 도자기와 연관된 직관적인 반응과 상호연관성을 탐구하는 다양한 주제들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도자기 전시는 건물의 구조상 생겨난 일직선의 긴 통로 벽면을 진열장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또한 박물관의 다른 전시들이 유료인 것과 달리 통로에 있어 입장권을 사지 않고도 여기를 지나는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기에, 박물관의 방대한 도자기 컬렉션을 선보이며 관람객의 흥미를 끌고 있다. 박물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듯 여러 나라의 도자기들이 모여 와글와글하게 다채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눈이 즐겁다.
수집이 없는 박물관은 죽은 박물관이다 – ‘폐관 동안의 수확’ 전시
5개의 특별전시 중 하나인 새로운 수집품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신수 유물 소개’라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주제의 전시이지만 ‘이전 및 개관’의 과정을 관람객에게 자연스럽게 또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 전시의 제목과 전시 개요는 꿈보다 해몽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폐관 동안의 수확Harvest of Closure’이라는 제목 아래, 4년간 이전 개관을 준비하며 관람객을 맞이하지 못한 기간 동안 박물관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선보이게 되었고,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헝가리민족학박물관은 원래 폐관 기간에는 유물을 수집하지 않고 자료들의 안전한 재배치만을 신경 쓰려고 했다. 그러나 대영박물관 전 관장인 데이비드 윌슨이 ‘수집하지 않는 박물관은 죽은 박물관’이라고 한 것과 같이, 이런저런 연유로 생기는 수집의 기회들을 마다할 수가 없었기에 원래의 계획과 달리 계속 수집을 이어갔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보존 및 복원 작업을 전시에 필요한 수준까지만 수행하고, 전시물도 선별 분류만 하여 지금과 같이 전시하게 되었다. 이 컬렉션들은 향후 다른 전시와 카탈로그로 선보이게 될 것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박물관의 수집 과정을 관람객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이 전시의 취지이다.
전시를 보는 새로운 관점 – ‘ZOOM-A Change in Perspectives’ 전시
이 전시는 아직 첫선을 보이기 이전인 상설 전시관의 ‘맛보기’이자, 개관할 상설 전시의 도입부에 해당하여 관람객들에게 유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카누배는 박물관에서 가장 크기가 크고, 물고기 입장에서 배를 보는 시각을 제시한다. 건축물의 일부분인 유물이 원래는 어떤 전체의 부분인지를 프레임으로서 제시하는 전시물도 있고, 확대경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한 벽면을 들여다보면 사진 속 인물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체험도 있다. 이외에도 열기 어려운 유물 모형‘면도 상자’을 퍼즐을 풀 듯이 직접 만지고 움직이는 체험 등 전시는 여러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해석이나 텍스트보다는 직관적인 접근을 유도하는 전시물들은 재미있게 박물관 전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끈다. 전시장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전시물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온갖 물건들이 뒤섞여 거대한 오브제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박물관의 폭넓고 다양한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소개했던 전시들 외에도 헝가리민족학박물관에서는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클라우디아 안두자르Claudia Andujar가 아마존의 야노마미족을 촬영한 사진 특별전과, 집시의 삶과 문화를 연구했던 전설적인 연구자 카밀 에르되스Kamill Erdos 특별전, 서울역사박물관과 함께 개최하는 ‘서울의 멋’ 특별전 등 의미 있는 전시들이 열리고 있다. 또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문화적 잠수면’을 주제로 교육하고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무게를 내려놓고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새로 지은 매력적인 공간과 참신한 전시 주제, 재치 있는 전시 연출 등 이 박물관의 많은 장점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무엇이라 설명하기 어려운 ‘여유’가 아닐까 싶다. 박물관 이전 개관과 동시에 상설 전시를 개막하지 않고 도입부‘ZOOM’ 전시만 공개하면서 2년 동안 천천히 상설 전시를 준비하는 점도 그러하고, 폐관기간 동안의 수집품을 간단히 선보이면서 그 미완의 과정을 관람객들에게 솔직하게 내보이는 점 등에서 우리나라 박물관들과는 어딘가 다른 신중함과 여유가 느껴졌다. 박물관 건축과 콘텐츠 모두 안팎으로 관람객들이 박물관을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자세는 인류학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에서 큰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주홍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