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6월 25일,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지만 음력으로 명절의 하나인 5월 5일 단옷날이다. 양수陽數인 5가 겹쳤다고 하여 길일로 여겨 설날, 추석과 함께 중요 명절로 여긴 날이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단오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상의 날이 되고 말았다.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단오가 빠졌기 때문이다. 다만 강릉단오제, 법성포단오제, 자인단오제와 같은 지역축제로 명맥을 유지하며 옛 명절의 하나로서 기억되고 있을 따름이다.
단오端午의 ‘단端’은 처음,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오五, 곧 다섯과 통한다. 그러므로 단오는 ‘초닷새初五日’라는 뜻이다. 『삼국유사』에서는 단오를 ‘술의날戌衣日’이라고 하였고, 고려의 노래 「동동」에서는 아예 ‘수릿날’이라 읊었다. 수릿날은 수리의 날이라는 뜻이고, ‘수리’는 고高, 상上, 봉峰, 신神을 의미하는 옛말이다. 그러므로 수릿날은 신일神日이요, 상일上日이다. 5월 5일이 한 해 동안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라는 뜻에서다.
이도령과 춘향이가 만난 날
이도령과 춘향이가 가연을 맺은 날이 단옷날이고, 만난 곳은 광한루의 그네터였다. 단오빔을 차려입은 어여쁜 춘향이가 ‘섬섬옥수 번 듯 들어 그넷줄을 갈라 잡고 선뜻 올라 발 굴러 한번을 툭’ 오르는 모습에 이도령은 쥐었던 부채를 놓고 넋을 잃었다. 아마도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 머언 바다로 / 배를 내어밀 듯이, / 향단아.”라는 서정주의 시 「추천사」처럼 향단이 역시 곱게 차려입고 춘향이의 그네를 밀었을, 그 요염한 분위기에 방자 또한 흠뻑 빠졌을 터이다.
이렇듯 단오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맘껏 드러나도 좋은 계절의 명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빔이 있듯이 단오빔이 있다. 기록에서는 단오옷을 ‘술의戌衣’라 했다. 단옷날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창포 뿌리로 만든 단오잠이라는 비녀를 꽂았다. 비녀에는 복을 비는 뜻에서 ‘수壽’와 ‘복福’ 자를 새겼고, 비녀 끝을 연지로 붉게 칠하기도 하였다.
단오빔 차려 입고 그네 뛰는 여성들
단오는 『춘향가』처럼 문학작품의 소재로 쓰였지만 회화 작품도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혜원 신윤복1758~?의 <단오풍정>간송미술관 소장이다. <단오풍정>의 중심 상단에는 붉은색 치마와 노란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그네를 올라타고 있고, 바로 위에 타래머리를 풀거나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여성을 묘사했다. 오른쪽 위에서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개울가에서 목욕하는 반라半裸의 여인들, 그리고 바위틈에 숨어서 훔쳐보는 어린 승려들, 음식을 이고 등장하는 여인까지 단옷날에 벌어짐직한 여러 에피소드를 짜임새 있게 담아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하는 것은 단옷날의 그네뛰기다. 그네는 단옷날에 뛰는 대표적인 여성놀이다. 우리말 ‘그네’는 ‘근위『재물보』’, ‘글위『훈몽자회』’에서 왔고, 한자어로 ‘추천鞦韆’이라 한다. 『고려사』 열전 「최충헌전崔忠獻傳」 조의 “충헌이 단옷날에 그네를 매고 문무관을 불러 사흘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라는 기록에서 보듯, 그네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지닌 놀이이다.
그네를 뛸 때 뛰는 사람의 수효에 따라 외그네뛰기와 쌍그네뛰기또는 맞그네뛰기로 나뉜다. <단오풍정>의 그네는 외그네뛰기이다. 그넷줄을 잡은 여인의 손이 서툴고 줄 아래에 매단 밑싣개발판에 올라타는 모습이 뻘쭘하다. 마치 처음 타 보는 것처럼 주춤거리는 것을 보면 그네뛰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같다. 드러내 놓고 목욕을 하던 여인과 달리 더불어 옷을 벗기에는 다소 낯선 상황을 무마하려는 데서 생긴 돌발상황이다.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추쳔하는 모양>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은 평지에 기둥을 세우고 그네를 맨 ‘땅그네’를 타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단오빔을 차려 입은 앳된 여성이 외그네를 타고 있고, 여성들이 둘러싸 이를 구경하고 있다. 여성 한 명이 단오부채를 들고 있고, 뒤쪽에서는 여성 둘이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기산풍속도의 또 다른 그림 <단오에 산에 올나 추쳔하고>독일 MARKK 소장는 단오빔을 한 여성들이 산에 올라 소나무에 맨 그네에 올라 외그네뛰기를 하고 있는 그림이다. 아이를 동반한 여성들이 이를 구경하고 있는데, 좌우의 두 여성이 단오부채를 들고 있다. 오른쪽에는 한 어린이가 그네는 안중에도 없이 엽전을 꺼내 엿을 사는 데 바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엿장수가 출현하기 마련인데, 엿가락은 당대의 인기 있는 군것질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씨름으로 이름을 날리는 날
단옷날에 씨름을 하는 남성들의 장엄을 그린 대표적인 그림은 김홍도1745~1806?의 <씨름>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유숙1827~1873의 <대쾌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아닌가 싶다. 씨름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할 만큼 아주 오래된 민족의 기예技藝의 하나인데, 단오는 물론 백중과 추석의 명절놀이로 사랑받았다. 이들 작품에 묘사된 씨름은 경기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띠나 샅바의 유무에 따라 선씨름, 띠씨름, 바씨름이 있고, 샅바를 어느 손으로 잡는가에 따라 왼씨름과 오른씨름으로 구별된다. 그림들은 이런 특징을 잘 살려 그렸다.
김홍도의 그림은 손목에 샅바를 두른 것으로 보아 바씨름이다. 그런데 씨름꾼의 얼굴 왼쪽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오른씨름이다. 오른씨름은 왼다리에 맨 샅바를 상대가 오른손으로 잡고 겨루는 씨름이다. 오늘날의 왼씨름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고조된 씨름장의 분위기와는 아랑곳없는 목판을 멘 엿장수가 등장한다. 구도의 안정감을 주려는 배치이기도 하지만 서민적 감흥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단옷날의 사실적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유숙의 <대쾌도>는 낮은 언덕들의 연결로 자연히 형성된 무대에 펼쳐진 놀이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언덕의 경사를 따라 둘러앉은 구경꾼들은 위쪽의 열띤 선씨름과 좀 떨어져 도포 자락을 허리에 동여매고 택견 자세를 취한 두 젊은이들에게 적당히 시선을 나눴다. 화면의 제일 아랫부분에는 이런 때를 놓치지 않고 한몫 보려는 술장수를 그렸다. 한 손님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듯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 술을 사고 있다. 기산 김준군의 그림에서도 씨름은 놓칠 수 없는 소재이다. <단오에 시름하고>독일 MARKK 소장는 오른씨름을 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중치막을 뒤로 묶은 사람이 심판인데, 쥘부채를 들어 시작을 알리고 있다. 구경꾼이 씨름꾼 주위를 둘러서 앉거나 서서 구경하고 있다. 삿갓을 쓴 엿장수가 목판을 메고 서서 엿 파는 것을 잊은 채 씨름의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기산풍속도의 또 하나인 <시름하는 모양>독일 MARKK 소장은 샅바를 매지 않고 허리띠를 잡고 하는 띠씨름을 그린 그림이다. 푸른색 저고리를 입은 씨름꾼이 흰색 저고리를 입은 씨름꾼의 허리와 다리를 잡고 무릎 위로 올려 메어치려는 순간이다. 흰색 저고리를 입은 씨름꾼이 머리와 옷자락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치막을 뒤로 묶은 심판이 마지막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고 있다. 아마도 ‘판막음’에 해당하는, 마지막 씨름판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이처럼 그림에 묘사된 단옷날의 씨름 풍경은 당대의 명절 분위기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의 명절에서도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 씨름대회가 낯설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는 단오부채를 다시 들어야 할 때
단옷날에는 부채를 선물하였다. 주로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하사했다. 이를 단오부채端午扇라 했다. 공조와 지방관아에서 부채를 만들어 조정에 올리면 왕은 신하들에게 하사하고, 신하는 아전들에게 고루 나눠 주었다. 그야말로 내리사랑을 편 선물이다. 쥘부채摺扇와 둥글부채團扇를 선물했는데, 쥘부채가 단연 인기였다.
“고려 태조가 즉위할 때, 견훤이 공작선孔雀扇과 대화살竹箭을 보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듯, 부채는 그 역사가 매우 깊다. 송나라의 손목孫穆이 쓴 『계림유사』에는 “선을 부채라 한다扇曰孛采”라고 기술하면서 ‘부채孛采’라고 우리말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또 서긍의 『고려도경』에 쥘부채의 특이함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부채와는 달리 쥘부채摺扇는 고려만의 특산품이었던 것 같다.
기록상 세종조에 들어와서는 단옷날에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이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되었고, 단오진선端午進扇를 폐지한 고종대에 이르기까지 단오의 대표적인 민속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증명이라 하듯 ‘여름 부채 겨울 달력夏扇冬曆’이란 말이 굳어졌다. 이름하여 단오에는 부채를, 동지에는 달력을 선물한다는 뜻이다.
씨름이나 그네를 타는 장면을 그린 그림에서 부채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위를 쫓고 햇볕을 가리려는 실용적 목적에서 주고받았겠지만 무엇보다도 부채는 내리사랑의 표현이고, 더불어 함께하려는 의지의 선물이다. 유래 없는 코로나 19를 극복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이제는 단옷날을 맞아 부채 하나쯤 당당히 들고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를 이끄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었으면 한다.
1) 웹페이지 서체 지원 한계로 한글 고어는 현대어로 표기 하였음
글 | 장장식_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