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3.30~1890.7.29나 폴 고갱Paul Gauguin, 1848.6.7~1903.5.8의 그림을 보면 그 시대의 사람과 풍경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들이 술을 마시고, 산책을 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던 공간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 느껴진다. 특히 반 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70일간 머물렀던 공간인 오베르 쉬르와즈는 그가 남긴 작품 속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거리의 풍경은 물론 그와 숨 쉬던 사람들의 얼굴 표정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의 그림을 보는 이들은 누구나 반 고흐와 술집에 앉아 인생을 얘기할 수도 있으며, 산책을 하면서 위대한 자연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선사시대 반구대암각화도 풍속화의 일종
폴 고갱이 그려낸 타히티섬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은 그림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언젠가는 타히티섬에 가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이미 가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건강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타히티 여인들이 금세라도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올 듯하다.
이처럼 그림의 힘은 위대하다. 비록 사진보다 현장감이나 사실성이 떨어진다 하다라도 화폭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무게감은 우리를 매혹시키면서 오랫동안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다.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강렬함과 반역의 힘을 그림에서 느낄 수 있으며, 화가의 마음 속 깊은 생각까지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나에게 있어서 풍속화는 추억의 그림이자 반역의 그림이다. 넓은 의미에서 반 고흐나 폴 고갱의 그림은 풍속화로 분류할 수 있다. 그들의 그림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공간에 대한 탁월한 관찰력이 느껴진다. 반 고흐나 폴 고갱의 시대를 거스르는 유쾌한 반역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화가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반구대 암각화를 새긴 누군가도 탁월한 풍속화가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의 문제가 지상 최대의 과제였을 구석기시대와 선사시대를 살았던 인간 중에 누군가가 동굴 속 벽이나 절벽에 당대의 삶을 기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것도 단순한 사물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당대의 삶을 상상력을 섞어 그렸다는 점에서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이 단순하게 매일매일 사냥과 놀이에만 집착했다면 벽화는 후세에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탁월한 상상력을 가진 스토리텔링의 대가들
풍속화를 얘기할 때면 단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미상나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미상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그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역사 속의 조선을 지금처럼 친숙하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씨름판의 숨 막히는 샅바싸움,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빨래터에서 머리를 감는 여인들, 우물가의 정겨운 풍경. 어디 그뿐인가? 오월 단오의 그네 뛰는 풍경에서부터 기생첩을 옆에 끼고 야유회에 나선 양반들, 달밤에 밀회를 즐기는 남녀에 이르기까지. 두 화가의 풍속화는 조선시대의 골목 구석구석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만화경이자 또 한 편으로는 유쾌한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김홍도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풍속화로 표현했다면, 신윤복은 한량과 기생들의 연애사건에 더 관심을 가졌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둥글 넙적한 얼굴과 펑퍼짐한 몸매에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서민들이다. <단원풍속화첩> 속에는 씨름, 타작, 기와 얹기, 빨래터, 서당 등 소박한 서민들의 삶이 담겨 있다. 모든 그림에서 인간, 특히 서민에 대한 애정과 우리 문화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뚝뚝 묻어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추억이다.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신윤복은 김홍도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풍속화가지만 남녀상열지사에 관심이 많았다. 지나친 관심 때문에 도화서에서 쫓겨날 정도였다. 신윤복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하나 표정이 살아있다. 갸름한 얼굴에 눈꼬리가 올라간 표정에서 에로티시즘이 느껴진다. 달빛 아래서 밀회를 즐기는 남녀를 질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인네가 있는가 하면, 그림 한 쪽에 절구와 절구공이 혹은 참새나 개의 교미장면을 슬쩍 끼워 넣는 등 풍자와 해학에도 능했다.
이 같은 풍속화는 20세기 들어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산됐다. 80년대 번성했던 민중미술은 독재에 항거한 화가들의 처절한 투쟁이 담겨 있었다. 시위와 노동의 현장에서 만난 민중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그려낸 화가들의 투쟁은 또 다른 의미에서 풍속화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고향과 뒷골목, 다양한 놀이를 잊지 않고 담아낸 풍속화가들의 노력 또한 귀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모든 문화의 분야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게임은 물론 모든 문화영역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풍속화가는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의 대가들이다. 풍속화를 그려온 선조들의 유쾌한 반역과 탁월한 상상력 덕분에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한류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주로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해 왔다. 1986년 동인지 《대중시》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대중음악의 노랫말에 얽힌 사연을 담은 에세이집 《톡톡 튀는 가수 이야기》와 시해설집 《시는 아름답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