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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박물관

비가 올까봐 잠도 설쳤던
소풍逍風·消風

소풍,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60년대, 나이 어린 3학년 때 25리 산길을 걸어갔던 그때의 소풍이 기억의 마디로 자리 잡고 있고, 애써 걸었던 먼 길이 결코 힘들지 않았던 것을 행복한 순간으로 간직한 세대로서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소풍’이라 하지 않고 ‘현장학습’이라 부르지만, 필자가 겪었던 소풍과는 맛이 다를 것 같다.

4월~5월, 바야흐로 소풍의 계절이 다가온다. 공휴일이 근로자의 로망이라면 소풍은 학생들의 로망임이 분명했다.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행했는데 그때마다 시간은 금세 흘렀고 그토록 기다리던 하루가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뾰족한 일이 없는 익숙한 행사인데도 너나없이 소풍을 기다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보다도 교실에 앉아 시간표에 따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과 일탈의 특별함이 있는 날이고, 미처 가보지 않은 곳을 또래끼리 찾아간다는 설렘이 작동하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먹지 않는 김밥, 사이다와 같은 먹거리와 음료수도 있고, 용돈은 물론 새 옷과 새 신발 같은 뜻밖의 호사도 누릴 수 있었던 탓이다. 이래저래 소풍은 기대되는 날이었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소풍을 소환할 때 시점은 중요한 근거가 된다. 모두의 기억이 다르고, 소풍을 체험했던 시절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총체로서의 소풍’에 대한 개념과 기억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오늘날의 ‘소풍’ 개념과는 다른 소풍은 아무래도 80년대를 소환해야 할 것 같다. 소풍이 현장학습 내지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이동수단이 도보에서 버스로 바뀐 것도 중요한 근거가 될 성싶다. 이것은 내용과 형식에서 큰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그림_정을순(어반스케치 회원)

소풍을 소환할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들
소풍을 기억하는 데 첫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날씨’와 ‘보물찾기’일 것 같다. 소풍 전날 비가 오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나름의 소풍을 그려보고, 소풍 당일 보물찾기를 할 때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기대에 찬 신념에 부풀었다. 누구는 장기자랑 시간에 참가하기 위해 특별한 레퍼토리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특별한 재능과 끼를 가진 이들의 시간이다. 아무튼 소풍 전날은 고요한 가운데 분주하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소풍의 진미를 위해 김밥거리와 음료수, 과자와 초콜릿 등을 애써서 준비하였다. 모두가 소풍을 위해 돌진하는 자세로 임했다. 그러면서 날씨가 화창하기를 기원했다. 어떤 학교는 말짱한 날씨인데도 소풍날만 되면 비가 온다는 도시괴담 같은 징크스가 있다고 했고, 어떤 학교의 선생님은 “설령 비가 올 날씨라도 내가 알아서 그치게 한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모두가 확률적 사실과 욕망의 확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이고, 일상 속에 행해지는 소풍의 특별함을 둘러싼 담론들이다.

1980년대의 소풍이라도 소풍을 가는 곳은 천차만별이었다. 우선 도시와 농어촌이 달랐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초등과 중등이 달랐다. 주로 걸어갈 수 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기 마련인데, 4~5㎞ 거리에 있는 명승지와 고적을 택했다. 저학년은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줄을 지어 이동했고, 고학년의 경우 제각각 목적지로 집결했다. 서울의 경우 경복궁, 창덕궁과 같은 궁궐이나 서오릉, 동구릉과 같은 왕릉을 택했고, 때로는 어린이대공원, 남산 어린이회관으로 이동했다. 제법 먼 길이지만 즐겁고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지방에서는 인근의 사찰과 국립공원을 찾았고, 해수욕장이 있는 바닷가나 계곡물이 흐르는 산자락에 집결했다. 하지만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하기보다는 학교를 벗어나 어디론가 하는 그 행위 자체가 신나는 법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자연을 감상하고 심신을 단련하며 역사문화에 대한 현장학습이라는 교육목적을 내건 행사였지만 학생들에게는 학교를 벗어나 ‘먹고, 노는 날’임이 분명했다.

소풍지에 집결하면 출석 체크로 현장학습을 시작했고, 장기자랑을 벌이거나 점심시간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장기자랑은 반 대항을 기본으로 하지만 개인적 재능이 드러나는 기회였다. 중등학교 장기자랑에서는 포터블 카세트를 동원해서 유행가에 맞춰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끼를 마음껏 발휘하고 마침내 ‘짱’이 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보물찾기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능력을 벗어나 누구에게나 기회가 동등한 활동이 바로 보물찾기이다. 인솔 교사들은 장기자랑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필통ㆍ공책ㆍ연필ㆍ지우개’ 등 다양한 학용품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보물’이라는 이름으로 몰래 감춰두고 이를 찾게 했다. 돌 밑이나 틈 사이에도 숨겼고, 키 작은 나뭇잎이나 가지 사이에도 보물딱지를 감췄다. 학생들은 너나없이 보물딱지를 찾아 나섰고, 마침내 시간이 종료되면 탄식은 그만큼 커지기도 했다. 때로는 1인 1딱지로 보물을 제한하는 교육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복수의 딱지를 찾은 학생들이 친구들에게 보물을 나눠주는 배려심을 보이게끔 했다.

그림_박세라(어반스케치 회원)

바람을 쐬고 한가로이 거닐던 자유
소풍은 영어로 피크닉picnic이라 하는데, 이는 프랑스어 피크니크pique-nique에서 비롯된 말이다. 피크는 ‘집거나 고르다’라는 pick이고 니크는 ‘적은 양의 물건이나 값나가지 않은 물건’을 뜻하는 말이라 하니, 각자 가벼운 소량의 음식물을 들고 와서 야외에서 함께 먹는 행위를 강조한 말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逍風소풍과 消風소풍이라는 말을 썼다. 둘 다 뜻은 같다. 이 가운데 소풍逍風은 “한가로이 이리저리 슬슬 거닐다.”라는 뜻인데, 逍遙소요라는 어휘로 상통하여 널리 쓰인 말이다. 불가에서는 마음을 속세간俗世間 밖에서 유람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였고, 철학적으로 장자莊子가 말한 소요유逍遼遊, 절대자유의 경지라는 의미와 통했다.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언급되는 소풍의 유학적 뜻은 교육적 개념으로 볼 때 매우 적극적이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관자冠者 5~6인과 동자童子 6~7인으로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無雩에서 바람을 쏘이며 읊조리다가 돌아오겠다.”라는 대답에서 등장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얽매임을 벗어나 동학들과 자연 속에서 즐긴 소풍의 즐거움이니, 상식적인 기억보다는 더 종교ㆍ철학적이고 교육적인 가치를 지닌 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근대 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은 ‘원족遠足’라는 어휘를 즐겨 썼다. 일본어의 ‘엔소쿠えんそく’에서 온 말인데, “발을 멀리 옮긴다.”라는 공간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처럼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어휘 ‘소풍’이지만 내면에서 다소의 격차格差가 담겨 있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소풍을 추억할 때 “바람을 쏠 것인가, 절대자유를 느낄 것인가, 아니면 멀리 갈 것인가” 중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인가? 의미의 층위가 다를 테지만 관용적으로 ‘기분 전환을 위해 야외를 거닐었던’ 공간 탈출의 의미만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하지만 소풍이 소멸된 시대에 ‘소요유1)’하면서 소풍이 지닌 본디의 뜻을 실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 장자가 말한 ‘별 다른 목적없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노는 삶’


글쓴이 | 장장식_길문화연구소장, 한국암각화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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