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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큐레이션

보이지 않는 요괴가 노리는
인간의 몸에 대한 상상력,
그리고 그 문화적 의미 추적

이 책의 저자인 야스이 미나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학문적 대상은 인간의 신체와 괴이怪異이다. 『요괴가 노리는 인간의 신체』는 저자가 2014년 발표한 『괴이와 신체의 일본문화: 이계로부터 출산과 양육을 되묻다』怪異と身體の民俗學:異界から出産と子育てを問い直す, 2019년 한국 출간의 후속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저서에서 저자는 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로서의 ‘요괴’, 그 요괴가 침입하려는 인간의 신체와 침입의 주된 통로로 여겨진 ‘성기’, 젠더적 비대칭성 속에서 호명되는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이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살피기 위해서 근대 일본에서 ‘보이지 않는 요괴’를 ‘어떠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어떻게 이미지화했는지’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일본에서 근세-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병, 통증 등을 어떤 방식으로 가시화했는지를 살폈다. ‘가시화’는 곧 ‘시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이해의 지평은 그것을 시각적 이미지로 인지하게 되면서 비로소 열리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림 1 매약류의 전단 <양신환養神丸・매약買藥>, 본서 5쪽

위 그림 1은 ‘양신환’의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단이다. 얼굴에 이름을 써 붙인 사람 모양의 의약품[憲兵]이 같은 형태의 질병과 싸워 이기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는 보이지 않는 적의 가시화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2장에서는 복통과 두통을 사례로 들어 보이지 않는 병과 신체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외부로부터 사람의 몸으로 병이 들어온다고 할 때 신체의 어느 부위가 취약하다고 여겼는지, 그리고 이를 예방하거나 이미 발생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신체의 어떤 부위에 어떤 방책을 해왔는지를 민속적 전승을 따라 살폈다. 요괴와 관련된 빙령[빙의, 憑依]을 치료했다는 주술사가 민간전승과 민간요법, 경혈 등을 형성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했을 가능성을 지적한 것도 눈길을 끈다.

3장에서는 1930년대에 등장하는 ‘뱀에게 습격당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인식 변화의 추이를 살핀다. 이 시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던 요괴를 뱀으로 치환하고, 앞선 시기 민간 주술사의 역할을 근대 의사가 수행한다고 하였다. 뱀에게 습격을 당하는 존재가 ‘여성’이나 ‘아이’로 나타나는 것은 이들이 ‘사회적 약자’로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특히 ‘여성(과 그 성기)’이 ‘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젠더 인식의 비대칭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4장에서는 젠더적 비대칭성의 문제를 보다 확장해서 다루었다. 요괴의 습격을 받는 여성에서 나아가 요괴가 되어 남성을 공격하지만 결국 퇴치되는 여성에 대한 전승을 살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이 여성을 요괴로 만들었다고 할 때 그 심연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

그림 2 얼굴에 여자 성기가 있는 <성기의 요괴性器の妖怪>, 본서 139쪽

5장에서는 요괴를 소재로 하여 젠더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한 것은 성과 성기에 대한 표현이다.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 습격받기 쉬운 여성의 성기가 시각화되는 과정에서, 드러냄으로써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체神體로 모셔지는 남근의 양상을 드러내 요괴와 관련된 젠더성의 문제를 다시 환기하고 있다.

6장에서는 태반과 탯줄을 통해서 신체에서 이탈한 인체 부위가 지닌 주술적 힘에 대해 분석하였다. 태반과 탯줄이 탄생과 생명의 상징이었기에 불로불사의 약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림 3 <임부염서희> 본서 179쪽

7장은 6장에서 나아가 에도의 시각회화, 우키요에문화와 서구의 의학적 지식이 융합하며 만들어진 도상에 대해 검토하였다. 태아의 성장을 그림으로 설명한 <태내시월도胎內十月圖>, 메이지 시기 인쇄된 니시키에[錦絵]인 <임부염서희妊婦炎暑戱>를 통해서 여성의 신체가 ‘보여지는 신체’로 정착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8장에는 앞선 논의를 요약하고 향후 과제를 제시하였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2020년 이후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경험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였으며,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코로나에 대응하던 초기의 상황을 보면, 코로나 확진자를 ‘병 그 자체’로 간주하고 분노와 공포 따위의 감정을 확진자에게 쏟아낸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이 저자가 지적하는 보이지 않는 적의 가시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눈에 보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세의 역전이 가능해질 수 있다.

기실 이러한 상황은 현대나 근대 일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을 겪는 동안 수많은 미디어, 저널에서 ‘처용’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역병을 몰아오는 보이지 않는 역신과 그를 물리치는 처용. 이해할 수 없는 질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21세기의 상황이 처용이 살았다고 하는 9세기 말 신라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의 비슷한 상황이 19세기 말 ~ 20세기 초 일본에서도 있었음을 이 저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병(병인)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등장하는 요괴, 그리고 요괴가 노리는 신체의 부위, 요괴가 침입할 수 있는 통로로 여겨진 성기, 그 맥락에서 대상화되는 여성이라는 사회적이고 젠더적인 문제를 아주 무겁지 않게, 하지만 섬세하게 짚어 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관념(혹은 민속적 관점)과 서구를 통해 들어온 근대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융합되는지, 또 무르익은 에도문화의 대중적 확산이 메이지 시기와 어떤 형태의 조응을 이루는지도 이 저서에 담겨 있다. 특히나 다양한 이미지가 곁들여져 저자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자의 관심은 ‘신체’와 ‘괴이’이다.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괴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살피고 책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불가사의한 현상 그 자체이자 원인으로서 활용되는 괴이라는 용어, 그것의 가시화된 상으로서의 요괴. 우리가 일상에서 활용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해에 따라 독해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스로 이 책의 두 가지 특징을 꼽는다. 하나는 젠더적인 관점에서 요괴의 표적이 되는 인체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는 것이다. 그로써 사회적 모순과 약자의 처지가 이미지화될 때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을 밝혔다고 하였다. 다른 하나는 요괴와 인간 신체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연구가 비교연구의 관점에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글쓴이 역시 두 특징이 곧 이 책의 장점이라 본다.

다만 조금 아쉬운 지점이 남는다. 첫 번째는 일본문화에 서구적인 시선이 개입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고찰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신체가 요괴에 노려지다가 종국에는 여성 자신이 요괴가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다소 명확하지 않게 느껴진다. 달리 말하면 여성의 대상화 과정에 대한 추적과 논증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저자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고,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새롭게 발표될 연구와 저술을 기대한다.

두 번째는 저자가 대체로는 각 장의 말미에 언급한 현대적 관점에서, 혹은 다른 지역(문화권)과의 비교를 언급한 대목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언급은 물론 타당하다. 다만 피상적인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의 요괴 문화는 일본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미 여러 문화권에서 관련된 비교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이 같은 상황을 더 언급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쇄 과정, 혹은 번역 과정에서의 오기는 곧 수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책 전체를 볼 때 이 같은 아쉬움은 무척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전통과 근대의 조응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 ‘요괴와 인간의 신체’, ‘사회적 약자와 젠더 비대칭성의 문제’라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일독을 권한다.


글 | 유형동_한신대학교 한국어문학전공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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