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전시품과 관람객이 소통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한편의 드라마이며, 전시디자인은 이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1) 전시에서 ‘큐레이팅Curating’은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것을 말하는 큐레이션Curation에 큐레이터의 활동을 포함하여 정보를 수집, 종합하고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내해주는 활동을 의미하는 용어다. 거기에 전시의 구현 대상이며, 관람객이 마주하는 현장이자,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체계이기도 한 ‘공간’이라는 단어를 조합한 ‘공간큐레이팅’은 공간 자체가 주제를 함의하고 경험의 가치를 갖도록 하는 활동을 지칭한다. 즉, ‘공간큐레이팅’은 전시 공간 자체를 커뮤니케이션 체계이자 모델로서 완성시키는 뮤지엄의 중요한 보여주기 방식이다.
《민속이란 삶이다》 특별전의 공간큐레이팅은 ‘민속학’이라는 대중에게도, 연구자에게도 다소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전시이기에 전시가 갖는 근원적 고민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계획안에서 제시된 전시의 기본방향과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90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학회인 조선민속학회 창립 이래 분과학문으로서 기틀을 다져온 민속학에 대해 살펴보고 향후 민속박물관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둘째, 1920-30년대 근대 학문, 독립 학문으로서 민속학의 출발점을 조명하고 민속학의 전개 양상을 소개한다. 셋째, 현대 민속학의 다양한 연구 대상과 영역 등을 소개하고 이를 토대로 민속학의 현재와 앞으로의 가치를 조명한다. 그리고 제시된 전시의 주요 유물은 최초의 ‘아키비스트’라고 할 수 있는 송석하 선생의 민속 조사 카드 486장을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이뤄진 민속연구의 기록이자 증거와 같은 자료와 생활 소품이었다. 전시의 방향과 목표를 찬찬히 생각하며 들여다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시간의 반추Lumination of Time’라는 디자인 컨셉이 떠올랐다. ‘반추反芻’는 말 그대로 소가 소화를 시키기 위해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무언가를 다시 들추어내서 생각해본다는 의미다. 관람객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민속’을 반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전시에서 이와 같은 시간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묵묵히 이어지고 연결되어 온 우리 자신의 민속지도DNA를 되새김질해보는 소중한 경험이 되리라는 확신도 생겼다.
전반적인 공간의 모티브는 전시의 콘텐츠가 대부분 자료와 기록물인 점을 감안해 오랜 역사를 가진 대도서관을 차용했다. 서가 형태로 구성된 벽부장은 방대한 민속조사 카드를 담아내기에 적합한 구조이며, 열람대의 모습을 한 전시 조감장은 관람객들이 보다 찬찬히 머물면서 세심히 내용을 들여다보는 관람 행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부의 공간이 시작된다. 이어지는 2부는 영상존으로, 민속조사 카드가 가득했던 1부를 정리하는 다시보기review의 장이자 동시에 ‘지속’, ‘추억’, ‘세계’, ‘현재’, ‘우리’라는 다섯 키워드로 구획된 3부로 이어주는 미리보기preview의 역할을 한다. 즉 ‘반추’를 위한 플랫폼이다. 그래서 이 공간을 중심으로 3부의 공간이 배치되도록 하였고, ‘민속이란 삶(사람)이다’라는 전시 제목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 그리고 사람의 모습이 꼴라주 된 바닥패턴을 통해 관람객이 삶(사람)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 공간을 형성하는 빛의 게이트는 반추의 알람 장치다. 민속의 장면들을 보여주는 영상이 종료되면 조명이 켜지고, 다시 영상이 시작되면 조명은 소등된다. 이렇듯 서로 반복해서 교차되는 공간장치가 ‘시간의 반추’를 시각화·공간화한다. 어둠 속에 사유하는 ‘침잠’의 행위와 갑자기 밝아진 환경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환기’의 행위가 교차 되면서 관람이 민속을 반추하는 하나의 의식이 되도록 역할을 부여했다.
끝으로 이번 특별전 전시 홍보물에서 포인트는 ‘삶’이면서 ‘사람’으로도 읽히는 타이포그래피다. 지금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숙모님께서 오래전 보내주신 붓글씨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런데 캘리그래피가 아닌 현대적인 고딕 서체에서 이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자모의 결합이라 읽기의 난해함이 수반됨에도 ‘민속은 삶이고 곧 사람이기도 하다’는 전시의 메시지를 지극히 단순한 색과 폰트로 담담하게 담아내 전시의 대외적인 얼굴이 돼주었다. 그것이 삶과 사람을 담는 민속과 닮아서 볼수록 정이 간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민속학’ 그리고 ‘민속박물관’의 활동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삶의 일부로서 수용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인들께 늘 우수개 소리처럼 하는 말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방문한 사람은 없다.”
1) 최미옥, 소설의 서사구조를 차용한 공간큐레이팅, 서울아트가이드 2022. 2, p.32
글 | 최미옥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