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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거름내기와 농기구

농가에 전해 오는 ‘한 사발의 밥은 주어도, 한 삼태기의 거름은 주지 않는다.’, ‘똥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누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경우에는 자신의 밭이나 논에서 일을 보라.’, ‘똥 한 사발이 밥 한 사발이다.’, ‘쇠똥 세 바가지에 쌀 세 가마.’라는 말에서 거름의 소중함과 농민이 그것을 장만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대표 거름
거름으로 가장 많이 이용된 것은 똥·오줌·재 등이다. 중국 고대 문헌인 『한비자韓非子』에는 “땅의 힘을 북돋우려면 반드시 똥을 주어야 한다.”고 기록하였고,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똥은 모의 뿌리를 튼튼히 한다.”고 하였다. 『순자荀子』에도 “많은 똥이 땅을 거름지게 한다.”고 적고 있고, 『한서漢書』에는 “똥을 주어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것을 분치糞治라 일렀다.”고 전한다. 『정자통正字通』에서도 “오늘날 농부들은 똥이 농사의 근본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능히 벼의 생육을 북돋운다.”고 똥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동물의 똥도 중요한 거름으로 쓰였다. 부지런한 농사꾼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개똥삼태기를 메고 길가에 널린 개똥을 호미로 긁어 담았다. 『과농소초課農小抄』를 편찬한 박지원朴趾源은 농부 엄씨가 동물의 똥으로 양질의 거름을 만들어 서울의 좋은 논밭에 거름을 제공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구월에 서리가 내릴 때부터 시월에 엷게 얼음이 얼 무렵이 되면, 남의 뒷간의 똥찌꺼기. 마구간의 말똥, 홰 밑에 구르는 쇠똥·닭똥·개똥·거위똥 등을 치운다. 또 돼지똥·비둘기똥·토끼통·참새똥을 주옥처럼 긁어모아도 누구 하나 염치없다 하지 않고, 그 이익을 독점해서 의롭지 못하다 않고, 아무리 많이 차지하여도 양보할 줄 모른다는 따위의 말을 듣지 않는다. 왕십리의 무, 살꽂이 다리의 순무, 석교의 가지·오이·수박·호박, 연희궁의 고추·마늘·부추·파·개나리, 청파의 미나리, 이태원의 토란 등은 제일 좋은 밭에 심지만 모두 엄씨의 똥을 써야 토질이 비옥하고 잘 자란다.”고 적고 있다. 오줌도 채소밭에 중요한 거름이다. 사랑방이나 뒷간 가까운 곳에 오줌독을 따로 묻어 두고 오줌을 모았다. 우하영1741∼1812은 『천일록千一綠』에서 오줌의 거름 효능을 설명하고 있는데, “사람의 오줌은 독에 담아 오래 썩을수록 효과가 크다. 그러므로 농가에서는 큰 독 2~3개를 땅에 묻어 두며, 또 질그릇 동이 4~5개를 집 안팎 으슥한 곳에 놓아서 오줌을 받아 큰 독에 부어야 한다. 초겨울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모은 것은 가을 보리밭에 주고, 정월부터는 오줌에 재를 섞어 뒤집으면서 햇볕을 쬔 뒤에 덧거름으로 쓴다. 한 해 동안 한 가정이 오줌을 모으면 100무의 논밭에 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는 뒷간 한쪽에 모아 두고, 이를 모으는 잿간을 따로 세우기도 하였다. 똥을 누고 나서 고무래로 재를 끌어다가 똥·오줌에 버무려서 밀어두는 것이 똥재이다. 똥재는 운반이 쉽고 냄새도 적은데다 재의 알칼리 성분은 잡균의 번식이나 곤충의 접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1429년에 편찬한 『농사직설農事直說』에는 “올벼 못자리에 똥재를 주되 다년간 못자리로 쓰던 논은 다섯 마지기당 석 섬을, 처음 만든 논에는 넉 석[四石]을 준다.”고 똥재의 양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거름 도구
똥·오줌을 논밭에 내기 위해서는 똥바가지, 장군, 새갓통, 거름지게 등이 필요하고, 재나 두엄을 담기 위해서는 고무래, 거름대, 삼태기 등이 필요하다. 똥바가지는 똥오줌을 담는 바가지로 뒷간의 깊이에 따라 알맞은 자루가 달린 것을 사용하며, 장군은 오줌이나 똥을 담아내는 통으로 옹기나 나무로 만들며, 담는 물건에 따라 오줌장군·똥장군이라고 각각 달리 불린다. 똥장군으로 똥·오줌을 나르면 흘러넘치지도 않고 냄새도 덜하였는데 보통 지게에 지고 나른다. 똥이나 오줌을 장군 대신 거름통에 직접 담는 경우에는 거름지게로 나른다. 새갓통은 통나무를 귀때가 달리도록 판 바가지로 오줌이나 인분을 담아 밭에 뿌릴 때 사용한다. 삼태기는 재나 두엄을 담아내는 도구로서 짚이나 칡넝쿨, 싸릿대, 얇게 쪼갠 대오리 등을 엮어 만든다.

거름대
거름대는 ‘거름’과 ‘대’가 결합한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거름으로 쓰는 두엄을 뒤집거나 퍼 담을 때 쓰는 도구이다. 또한 농토로 운반한 거름을 흩뿌리는 데에도 사용하였다. 전체 길이는 120~130㎝ 내외로, 날 부분이 포크처럼 세 갈래로 갈라진 모양 때문에 ‘호꾸포크’ ‘삼지창’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거름대의 날은 나무로 만들었기에 잘 부러지는 단점이 있어 1960년대 이후에는 쇠거름대로 대체되었다.

장군
사람이나 가축의 똥과 오줌을 담아서 옮길 때 쓰는 나무 또는 옹기로 만든 그릇으로 똥을 담는 장군은 ‘똥장군’, 오줌을 담는 장군은 ‘오줌장군’이라고 달리 칭한다. 장군은 액체를 담았을 때 잘 새지 않도록 대체로 입구가 좁으며, 나무장군은 나무로 된 판자로 몸체를 만들고 액체가 새지 않게 나뭇조각으로 틈새가 없도록 메운 후 대나무나 소나무 뿌리를 쪼갠 끈으로 단단하게 돌려 매어 고정해서 만든다. 이러한 나무장군은 위아래보다 좌우 너비가 길고 몸체 중앙에 입구가 있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유약을 입혀서 불에 구워 만든 오지장군은 옹기장甕器匠이 만들었으며, 나무장군처럼 좌우 너비가 긴 것과 항아리처럼 위아래가 더 긴 형태로 구분된다. 장군의 입구는 짚을 단단하게 틀어서 만든 마개로 막아 운반 중에 분뇨가 새는 것을 방지하였다. 장군에 담아 온 똥은 주로 논밭의 밑거름으로 사용되고 오줌은 덧거름으로 사용되었다. 좌우 너비가 긴 장군은 타원형에 가까워 뉘어서 지게로 운반하기 편하다. 나무장군의 수명은 4~5년 정도이고, 오지장군은 주의해서 쓰면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무겁고 떨어뜨리면 파손되기 쉽다. 기존의 나무장군이나 오지장군을 대체하여 가벼운 플라스틱 장군이 등장하였지만, 지금은 농촌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농기구가 되었다.

새갓통
새갓통은 바가지 형태로 똥이나 오줌 거름을 담아서 농경지에 뿌리기 편하도록 귀때가 달린 점이 특징이다. 귀때는 주전자의 부리같이 도구의 한쪽을 바깥쪽으로 내밀어 만든 구멍을 의미하며, Y자형 손잡이는 좌우로 갈라진 부분이 귀때 방향으로 향해서 액체가 흘러내릴 때 방해되지 않으면서도 새갓통을 잡았을 때 손잡이로서의 안정적인 기능을 고려한 것이다. 새갓통은 나무의 속을 파서 바가지 모양으로 다듬거나 박을 반으로 쪼개어 만들었는데, 옹기로 만든 것은 ‘귀때동이’라고 달리 칭하기도 한다. 똥바가지나 오줌바가지는 일자형 손잡이를 잡고 분뇨를 퍼내거나 담을 때 주로 썼다면 새갓통은 장군과 같은 그릇에 담아 온 분뇨를 조금씩 부어서 농경지에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새갓통은 분뇨를 담는 그릇의 한 종류로서 귀때라는 배출구를 통해 좀 더 세밀하게 거름을 줄 수 있는 농기구로서 의미를 가진다.

거름통
거름통은 거름, 오줌 등을 담는 통으로 참죽나무 판재를 원통형으로 붙이고, 그 둘레에 대나무를 엮어서 고정시켰다. 상부 양쪽에는 나무판을 길쭉하게 걸어 손잡이를 만들고 가운데 부분은 홈을 내서 거름지게 고리에 걸리도록 하였다. 거름통은 운반할 때 거름이 옆으로 덜 흘러내리도록 속을 깊게 만든다. 그런데 나무거름통은 플라스틱 거름통으로 대체되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농기구 되어 버렸다. 거름지게는 거름통을 나르는 데 쓰는 지게로, 등태에 긴 막대기를 가로 대고, 양 끝에 고리를 연결한 형태이다. 거름대신 물을 나르면 물지게가 된다.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정월 대보름에 자신의 논밭에 거름을 가져다 붓기도 한다. 대보름 만월의 생산력을 빌어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의례라고 할 수 있다. 경북 영천에서는 보름 새벽 첫 닭이 울면 퇴비를 세 번씩 논에다 붓고, 강원도 고성·명주, 영서 지역, 충북 옥천, 경남 남해 등지에서는 보름에 퇴비 한 짐을 논에다 붓는다. 이것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이기도 하며, 부지런히 농사를 시작했으니 금년 농사가 풍년이 되게 해달라고 지신에게 비는 뜻도 담겨 있다. 충남 금산에서는 보름에 과일나무에 거름을 주어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기도 한다.


글 | 정연학_전시운영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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