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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한국인의 하루> 봄이야기

우리가 지내던 평범한 어느 봄의 하루에 공감과 위로를 보내며
여러분의 하루는 어떠할까? 그 어느 때보다도 재택근무와 온라인 등교가 활성화되어 시·공간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에 하루 시간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평범한 하루를 떠올린다면, 열에 아홉은 아침, 오후, 밤이라는 3개의 활동 시간대로 구분지어 말하리라. 어느 가수가 읊조리듯 외는 가사처럼 ‘별일 없이 산다’를 외치고 싶은 요즘, 문득 과거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1 ‘한국인의 하루’는 17세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옛 사람들의 하루를 보여주고자 하는 기획 아래 2018년 12월에 전면 개편되었다. 모름지기 상설전시라면 언제 와도 그 자리 그대로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변함이 없어야 하겠지만,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1은 관람객이 찾아오는 계절에 맞게 계절감이 담긴 유물들로 교체 전시하여 특별전시의 성격도 동시에 보여주는 실험적 전시를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 3번째 봄을 맞이하는 상설전시관1은 새로운 주제 ‘시장 풍경’을 선보여 관람객의 흥미를 진작시킬 것이다.

상설전시관1을 더욱 즐겁게 관람하기 위하여,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먼저 관람객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의 하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365일 중 1일, 24시간을 설명한다면 어떤 점을 설명하고 싶은가? 상설전시관1의 주 공간은 조선 후기 사농공상士農工商계층이 한데 모여 사는 마을로 설정하였다. 계층은 다양하지만, 각 계층을 상징하는 개인이 보냈을 하루를 생각해보며 관람을 시작해보자.

동이 터올 때 쯤,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에 제일 먼저 아침을 맞이하며 의관을 정제整齊하는 사대부가 있다. 자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하고 옷과 정자관을 단정히 차려입고 사랑방에서 수양하는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아마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수양修養하지 않았을까? 지금 시대에야 엄격한 규율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듯한 사대부의 생활이 어딘가 불편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선 후기의 사대부는 매일 아침 몸가짐을 바로 하고 유교경전을 익힘으로써 수양을 했다. 또한, 가져야 할 덕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상적 기물은 늘 가까이에 두고 사용하였다.

 

士大夫心事 當如光風霽月
無纖毫菑翳 凡愧天怍人之事 截然不犯
自然心廣體胖 有浩然之氣

사대부의 마음은 광풍제월光風霽月1)처럼
털끝만큼도 가려진 곳이 없어야 한다.
하늘에 부끄럽거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일체 범하지 않으면
자연히 심광체반心光體胖2)해져
호연지기浩然之氣3)가 생긴다.
『정약용 필적 하피첩丁若鏞 筆蹟霞帔帖4) 정약용丁若鏞(1762~1836)

사대부가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여 담소를 나눌 동안 농부는 한 해의 농사 풍작을 매일 바라며 해가 뜨자마자 겨우내 갈고 닦은 농기구를 챙겨 들고 논과 밭으로 향한다. 농부는 거름을 뿌려 기름진 땅으로 만들고 땅을 갈아 씨앗을 뿌리며 작물이 잘 자라나길 바란다. 쟁기질하는 농부 옆으로 아낙네는 호미질하며 냉이, 달래 등 봄 내음 가득한 나물을 캐고 망태기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 하루의 반찬으로 만들어 낸다. 지금도 봄나물 무침은 봄 밥상 최고의 밥도둑이 아니던가.

관람객은 발걸음을 옮겨 활발한 낮의 시장 속으로 들어선다. 2020년 겨울까지 장인의 가구제작과 지역별 반닫이가 연계되었던 진열장은 2021년 봄을 맞이하여, 낮의 시장 풍경과 상인의 하루를 엿볼 수 있도록 새롭게 조성되었다. 흰 벽면 위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 생몰년 미상의 풍속화 ‘시장市場’ 영상을 통해 낯익은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깝게는 편의점, 주말에는 대형 쇼핑몰로 향하는 것처럼, 조선 후기의 시장에는 물건을 파는 상인, 그리고 저마다 필요한 물건을 구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대를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필수품 중 신과 옷감을 선보였다.

신은 계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신는 것이며 시대를 초월한 필수품이 아니던가. 물론 시대가 흐름에 따라 모양새가 달라졌지만, 집 밖을 나설 때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내 신발 어딨어?’니까. 근현대에 이르러서야 다양한 신발을 한데 모아 놓고 파는 가게가 생겼지만, 과거에는 신의 제작 재료에 따라 짚신과 미투리는 승혜전繩鞋廛, 나막신을 팔던 곳은 초물전草物廛이 따로 있었다. 또 농사일을 쉬는 동안 농가에서는 직접 짚신을 만들어 놓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오늘날 동대문 원단시장에서 옷감을 떼어다가 옷을 직접 지어 입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조선 후기의 부녀자들에게는 가족을 위해 옷을 짓고, 바느질하는 일이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라는 속담이 있듯 바느질 도구가 있다면 옷을 짓기 위한 옷감도 당연히 필요하다. 조선시대의 가정에서 베짜기길쌈노동을 통해 옷감을 충당하기도 하지만, 옷감도 직조방식에 따라 신처럼 파는 가게가 따로 있었다. 시장 풍경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각각의 가게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구하는 물건과 구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전시를 표현하는 일에 초점을 맞췄기에 관람객은 다양한 자연재료로 염색한 알록달록 옷감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 눈이 즐거울 것이고, 옛 옷감 가게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상인의 하루는 기존 전시장에서 사농공상士農工商 계층 중 상계층의 하루 생활이 드러나지 않았던 점을 보완하여 이번 2021년 봄 전시에 새롭게 시장 풍경에 함께 구현하였다. 여러 상인 중에서도 등짐장수 부상負商을 소개함으로써 관람객은 상인의 하루를 엿볼 수 있다. 부상은 지게에 옹기甕器, 목기木器, 바구니, 소금, 젓갈류 등 일상생활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들을 한 짐 짊어지고는 시장 좌판에 늘어놓은 채 사람들에게 판매하였다. 많은 양의 짐을 한번 싣고 이동하면 제대로 앉아 쉬기 어려워 부상들은 촉이 달린 작대기, 일명 촉작대물미장라 불리는 지겟대를 들고 다니며 지게의 가장 아래 목에 끼워 서서 쉬곤 했다. 이번 전시에서 충남 저산8구 상무좌사 보부상이 사용한 유품 중 하나로 국가민속문화재 제30-1호 촉작대1)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낮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면 머지않아 저녁이 되듯, 저녁 식사를 하러 귀가했을 옛사람들이 눈에 선하다. 관람객은 부엌 코너에 자리한 프로젝션 맵핑과 영상 체험으로 구현한 봄 계절 밥상을 통해 조선 후기 어느 봄날의 저녁을 만끽할 수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안치고, 밥 짓는 냄새가 날 즈음, 밭에서 캐온 봄나물 반찬을 내고 저녁상을 차려본다. 생각만 해도 맛있고 군침이 돈다. 저녁상에 옹기종기 모여 먹으며 그네들이 보낸 하루를 서로 이야기 나누었을 장면을 상상해보자.

전시장 말미에서 관람객 여러분은 급격한 타임슬립을 경험할 수 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현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평범한 하루 시작이 닭의 울음소리였다면, 어느새 우리는 핸드폰의 알람 소리로 하루 시작을 안다. 다만, 하루를 묵묵히 보내고, 그리고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 끝에 다가 올 다음 날을 기대하는 마음만큼은 조선 후기에나 오늘날에나 변함 없다. 상설전시관1 관람을 통해 관람객 여러분의 평범한 하루가 몇백 년 전의 사람들도 보냈을 하루였다는 걸 공감하길 바란다. 더 바라본다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어지는 코로나19 생활로 지친 여러분들에게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1) 비 온 뒤에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
2)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이 편해 살이 찜
3) 크고 강직한 기개
4) 보물 제1683-2호 『정약용 필적 하피첩』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부인 홍씨가 보내온 치마를 잘라 만든 서첩에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을 적은 것으로 원래는 네 첩 구성이지만 세 첩만 전해져 온다.
5) 부여 정림사지박물관 소장(김삼환 기탁)


글 | 나훈영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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