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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 ‘파주관’ 디자인 이야기

전시관이 된 수장고의 디자인 프로젝트

건축물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와 그 안에 포함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져 고유한 정체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이하 파주관는 설계 당시 건축물에 담고자 했던 이념과 방대한 양의 민속 유물들이 곧 그 정체성으로 완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드러나지 않은 여러 가지 건축적인 요소들과 이곳에 자리 잡은 유물의 가치가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되고 동시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전시관이 된 수장고’의 디자인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Project 1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마침표가 된 사이니지Signage 디자인

건물이 지어지면 공간의 설계 의도를 이해하고 그에 어울리는 사이니지Signage1) 디자인이 설계되어야 비로소 그 공간이 완성되는 것이기에, 파주관의 정체성을 완성하기 위한 사이니지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파주관은 관람객 스스로 공간 체험과 전시물 감상, 다양한 정보의 활용을 통한 자신만의 관람 경험을 형성해 나가는 곳으로, 관람객의 능동적인 관람을 도울 수 있는 사이니지가 요구되는 공간이다. 초기의 설계 계획과 달리 내부 공간의 구획과 성격이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변경되고 구체화됨으로써 이를 적절히 반영하기 위한 사이니지 또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건축물 설계와는 별개로 새롭게 디자인된 파주관의 사이니지는 공간의 특성과 건축적 특징을 배경으로 박물관 공간과 주변 환경의 조화 속에 관람객과 소통하는 사인 디자인이 되도록 계획하였다. 사이니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길 찾기 시스템Way-finding System이다. 관람객이 낯선 시설 안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쉽게 접근하고 공간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파주관은 건물 중앙에 주출입구가 있고 로비에는 타워형 수장고가 좌·우의 공간들을 분할하고 있어 동선이 다소 복잡한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들어갈 수 없는 출입 제한구역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이를 안내하기 위한 올바른 사이니지 계획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용자가 편안함을 느끼며 불편함을 줄일 수 있도록 공간 구조와 관람객의 행동 패턴을 예측해보며 다각도로 설계 방향을 고민하였다.

관람객 중심의 사이니지 디자인
파주관의 사이니지는 외부와 내부 공간을 구분하여 설계하였다. 외부 사이니지는 크게 박물관 마당에 놓인 메인 로고 사인, 건물 파사드Façade2)의 로고 사인, 주차안내 사인, 위치안내 사인 등으로, 건축물과 마감 소재, 조경과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디자인하였다. 메인 로고 사인은 하나의 조형적 오브제이자 개방형 수장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가로 8m, 높이 1.7m의 루버Louver3)형의 열린 구조로 제작하였으며, 멀리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레이톤의 도장 면에 화이트 스카시すかし4)로 마감하였다. 이 밖에도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내부로 진입할 수 있도록 박물관 로비로 향하는 적재적소에 방향 안내 사인을 배치하였다. 다크 그레이톤의 묵직한 느낌의 건물 외관과 달리 내부는 전체적으로 밝고 벽면이 화이트톤임을 고려하여 내부 사이니지는 스테인리스 스틸에 화이트톤의 도장으로 심플하게 제작해 시트로 마감하였다. 인테리어 마감재와 이질적이지 않으면서 절제되고 모던하면서 너무 드러나지 않게, 그렇지만 관람객에게는 늘 가까이 있는 친절한 사이니지가 될 수 있도록 고려하였다. 내·외부 사이니지는 모두 불필요한 장식적 요소는 배제하고 꼭 필요한 사인과 정보로 구성하였다. 한글을 중심으로, 실명室名5)에는 영문과 점자를 병기하였고, 화장실이나 수유실과 같은 편의시설은 픽토그램Pictogram6)을 활용하여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16개 수장고의 실명 사인은 숫자를 그래픽 디자인으로 활용하여 전면 배치함으로써 관람객과 관리자 모두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서체는 가독성이 좋은 고딕 계열을 사용하고, 색채는 다크 그레이와 화이트를 기본으로 활용하였다. 설치는 벽면에 시트지나 스카시 부착 방식을 주로 하였고, 일부 바닥이나 유리면에 시트를 부착하기도 하였다. 종합 안내 사인과 층별 안내 사인은 스탠드형으로 제작하여 주목성을 높이면서 관람 편의를 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파주관의 사이니지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시각적으로 정돈된 안내 시스템을 구축하여 편안함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Project 2 보이는 수장고 속 보이지 않는 디자인. 열린 수장고의 수장대 디자인

타워 수장고열린 수장고 4~6, 9~11는 4면이 유리인 대형 쇼케이스 형태의 ‘개방형 수장고’로 수장고 자체가 핵심적인 전시물에 해당한다. 수장고의 조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유물을 효율적으로 격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장대收藏臺7)의 설계는 가장 큰 숙제였다. 타워 수장고는 건축의 격자형 스틸 프레임 구조를 껴안은 형태의 수장대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건축의 그리드Grid8) 패턴을 모든 수장대에 적용시켰다. 1.8m×1.8m 그리드 체계 안에서 시각적인 개방감과 통일감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ㄷ자형으로 수장대를 배치하고, 격납 대상 유물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높낮이와 형태, 크기 등을 설계하였다. 대형 항아리부터 작은 유리잔까지 다양한 크기의 유물 격납을 위해 큐브형의 기본 구조에 선반, 서랍장을 배치하여 여러 가지 타입으로 수장 전시를 전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수장대 컬러는 전체적으로 화이트 색상으로 마감하여 깔끔하고 세련된 디스플레이를 통해 유물 고유의 조형미와 색감이 더욱 부각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도·토기 유물의 형태적인 특징으로 인해 드러나는 하부의 음영을 보완하고 모든 유물에 동일한 조도 조건을 맞추기 위해 수장대 전면에 세로형 조명을 일체형으로 설계하였다. 이는 일반적인 수장고와는 차별되는 수장대 설계 방식으로, 유물의 수납과 더불어 ‘전시’의 기능을 보다 고려한 결과물이다. 개방형 수장고의 수장대 설계는 관람객과 관리자 모두 편리한 디자인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관람객의 관람 동선은 곧 관리자의 작업 동선이자 유물이 반입·반출되는 공간임을 고려하여 안전을 위한 여유 공간을 고려하였고, 수장고 관리에 필수적인 선반 번호는 관람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돈된 디자인으로 마무리하였다. 이처럼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부분까지도 관람객의 안전과 관람 편의를 고려한 디자인이 세심하게 반영되었다. 그야말로 ‘보이는 수장고’를 위한 ‘보이지 않는 디자인’ 요소들이 가득 채워진 곳이 바로 타워 수장고이다.

Project 3 전시관이 된 수장고. 16수장고의 전시디자인

로비 좌측에 자리한 16수장고열린 수장고에는 지역별 받닫이와 소반, 떡살과 다식판 등 총 471점의 유물이 격납되어 있다. 그 어느 곳보다 전시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이곳은 로비의 타워 수장고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공간 연출에 좀 더 중점을 두고 계획하였다. 16수장고의 수장대 디자인도 타워 수장고에서 사용한 그리드 패턴을 유지하면서 격납 대상 유물의 크기를 고려하여 변형, 설계하였다. 타워 수장고4~6, 9~11가 화이트 큐브라면, 16수장고는 블랙 큐브로, 대비되는 공간감을 연출하였다. 어두운 공간 속 벽면을 가득 채운 수장대와 그 안에 자리 잡은 유물들이 뿜어내는 아우라Aura가 가히 인상적이다. 일부 공간은 큐레이션된 유물로 연출 공간을 마련하고 받침대의 디자인과 소재에 변화를 준 설계를 통해 관람의 재미를 더하였다. 16수장고의 유물들이 모두 목재인 점을 반영하여, 대형 프로젝션 영상을 통해 ‘나무’의 소재, 문양의 다채로움을 조명하고 유물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계획하였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아카이브 공간에는 전산화되기 이전에 유물 관리를 위해 사용한 유물카드를 전시하고, ‘나무’, ‘목가구’ 관련 국립민속박물관 발간 자료를 배치하였다. 이와 같이 기존의 수장고에서 체험할 수 없던 여러 전시적 요소를 통해 관람객은 수장대 사이를 걸으며 자유롭게 유물도 감상하고 정보를 탐색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디자인은 영국인 집사와 같아야 한다’9)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집사의 역할에 ‘디자인’을 빗댄 것이다. 파주관의 디자인 프로젝트는 이러한 디자인 집사를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관람객이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세심한 배려를 받으며 즐겁고 편안하게 이용하길 바란다.

1) (일반 대중들을 위한) 신호들, 여러 개의 간판이 규칙적인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
2)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
3) 가로나 세로형의 판의 배열로 공기나 빛이 통하는 건축 구조
4) 입체 문자나 문양을 표현하는 제작방식
5) 공간의 명칭
6) 사물, 행위 등을 상징화한 그림문자
7) 서랍장, 격납선반, 랙, 유리 격납장 등 수장 설비
8) 격자형식의 무늬
9) 디터 람스 Dieter Rams, “A Good product should be like a good english butler.”


글 | 유민지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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