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박물관에서는 | 4대에 걸친 고집스런 일기 쓰기와 오래된 요리책 『수운잡방』

광산김씨 예안파 김효로 집안의 가족 이야기 전시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2012년부터 매년 한국의 명문종가들의 가계계승을 주제로 상설전시관3 가족 코너에서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군자의 길을 걷다-광산김씨 예안파 김효로 집안의 가족 이야기》로 내년에 예정된 상설전시관3의 개편 작업에 따라 9년에 걸친 교류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광산김씨 예안파 김효로 집안을 중심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과 집안 대대로 다져진 가학家學의 전승이라는 주제로 문중에서 소장 중인 각종 문집과 고문헌 자료, 민속품 등 260여 점이 소개된다.

광산김씨 예안파의 세거지 군자마을과 그들이 남긴 보물급 자료들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는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의 세거지世居地인 군자마을이 있다. 이곳은 1976년 완공된 안동댐 건설로 본래의 위치에서 수몰을 피해 현재 위치로 주요 건축물들을 옮겨서 조성한 곳으로, 후조당後彫堂, 탁청정濯淸亭, 침락정枕洛亭 등의 아름다운 고택들이 어우러져 있다. 또한, 보물 제1018호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소장 고문서 1,000여 점, 보물 제1019호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전적 3,000여 점도 전해지는데, 이 자료들은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보관 중이다.

 

예안 입향조 김효로와 퇴계 이황과의 인연
광산김씨가 예안에 들어와서 살게 된 것은 21세손 김효로金孝盧, 1454∼1534 때부터이다. 김효로는 26세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도 관직에 생각이 없어 평생을 은거하며 독서를 즐기며 살았다고 한다. 퇴계 이황은 김효로의 묘갈명에서, 그를 청렴결백의 신념을 굳게 지킨 군자라 칭송하였는데, 퇴계 이황과의 오랜 인연은 김효로 때부터 시작되었다. 김효로의 두 아들 22세손 김연과 김유도 퇴계와 긴밀하게 교류하였고, 손자인 23세손 김부필·김부의·김부인·김부신·김부륜은 퇴계의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 군자마을의 여러 건물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 많은데, 퇴계와 광산김씨 예안파와의 긴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요리에 대한 깊은 관심, 수운잡방
광산김씨 예안파가 남긴 자료 중에는 특이하게도 요리책 한 권이 전해진다. 22세손 김유와 24세손 김령이 지은 『수운잡방需雲雜方』이 그것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책 가운데 하나로, 모두 121종에 달하는 술과 음식 만드는 법이 담겨 있는데, 이 가운데 86종은 김유가, 35종은 그의 손자 김령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하는 것奉祭祀接賓客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당시 사대부들의 실용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김유가 시작하여 손자인 김령이 마무리하였다.
『수운잡방需雲雜方』에는 조선 시대의 음식문화를 알 수 있는 여러 음식이 수록되어 있는데, 고추가 전래하지 않은 시기라서 매운 음식이 일절 없는 점이 주목된다. 이 책에는 증류주인 소주를 비롯한 다양한 술 만드는 법, 장류 제조법, 김치 제조법, 다양한 국을 끓이는 법 등이 수록되어 있다.

 

4대 100년간의 고집스러운 기록, 일기
요리책 『수운잡방』 외에도 광산김씨 예안파가 남긴 주목할만한 자료에는 일기가 있다. 광산김씨 예안파는 4대에 걸쳐서 일기를 썼는데, 24세손 김령의 『계암일록溪巖日錄(1603∼1641)』, 『정미일록丁未日錄(1607)』, 25세손 김광계의 『매원일기梅園日記(1603∼1645)』, 26세손 김염의 『묵재일기默齋日記(1636∼1640)』, 26세손 김선의 『여온일기汝溫日記(1639∼1644)』, 27세손 김순의의 『과헌일기果軒日記(1662∼1714)』가 그것이다. 이들은 1603년부터 1714년까지 4대에 걸쳐 무려 100년간의 일기를 남겼는데,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대를 이어 일기를 남긴 집안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이 남긴 일기에는 생생한 생활사 자료들이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난 시의 의병활동 기록, 예안의 양반가문과 지방관의 갈등, 재산분쟁 기록, 손님맞이와 제사 지내기, 질병 치료와 식생활 등 당시의 실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중요한 일은 가족들이 함께, 집안의 좋은 전통은 대를 이어 지속시키다
광산김씨 예안파 집안의 가풍은 실용적·민주적이었지만, 지켜야 할 가치는 고집스럽게 지켜나갔다. 여러 문헌 자료를 통해 남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가족 구성원들이 협력하여 일하는 실용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국난에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국가에 헌신하였다.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남을, 가족보다는 나라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실천적인 군자의 삶을 사는 한국의 명문 종가이다.


글 | 박수환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