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냇가에 물이 줄어드니 물고기를 잡아보세川獵.
해는 길고 한참 바람이 불다 멈추니
오늘 놀이 잘 되겠네.
벽계수碧溪水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水丹花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촘촘한 그물을 둘러치고 모양이 좋고
큰 물고기 후려내어 넓은 바위에
작은 솥을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이 맛과 바꿀 소냐.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정학유丁學游, 1786~1855
앞의 노래는 조선 헌종 때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천렵川獵을 묘사한 부분이다. 현장감 있는 묘사가 천렵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여름을 맞아 6월 1일부터 상설전시관1 ‘한국인의 하루’를 여름 주제로 전시를 개편하였다. 상설전시관1은 2018년 12월 ‘한국인의 하루’라는 주제로 새롭게 개편하여 조선 후기 선조들의 계절별 ‘하루’를 전시로 구성하였다. 선조들의 일상 속에 표현되는 가치를 의·식·주와 관련된 살림살이와 생업도구, 문헌, 회화 등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관람객의 입장에서 전시 관람시기에 부합할 수 있도록 봄·여름·가을·겨울 각 계절에 맞는 유물들로 교체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여름 전시 또한 계절감에 맞는 교체전시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선조들이 여름에 사용한 생활용품, 농기구, 세시풍속 자료들을 함께 전시하여 관람객들에게 계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장은 어스름한 여명에 의관을 정제한 선비와 농사일을 준비하는 농부의 모습을 시작으로 한낮에 이르러 바빠지는 농사일,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하루’ 라는 시간단위를 전시장에서 구현하고 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인 사士·농農·공工·상商의 생활문화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우리 조상들은 음력 4월은 맹하孟夏, 5월은 중하仲夏, 6월은 계하季夏로 부르며 각 절기에 맞는 세시풍속과 농사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래서 ‘한국인의 하루-여름’은 노동과 여가가 교차하는 하루를 주제로 계절을 상징하는 전시물과 집안과 집밖의 공간으로 전시장으로 구성하였다.
이른 아침, 선비들이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사용한 죽부인, 등거리, 대나무 돗자리, 발, 부채와 더위를 쫓는 부적 등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전시장에는 여름이 시작되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던 옛 사람들의 모습을 통발, 가리 등의 도구와 여름을 즐기는 그림으로 전시하였다.
여름날 노동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김을 매는 중경용 극쟁이, 소입망 등 밭농사와 논농사에 사용한 농기구를 비롯하여 농가 생활을 재현한 진열장에서는 시원한 삼베옷을 만들기 위해 삼 삼기를 하는 농가 생활을 전시하였다. 이어 마을공동체인 두레와 김매기 하던 모습을 농기農旗와 호미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특히 3미터 남짓의 농기農旗의 상단에는 용머리와 꿩털이 장식되어 있어 두레에서 농기農旗가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다. 농사일이나 길쌈 등을 함께 나누는 풍습인 두레는 농기農旗를 들고 논두렁에 세우고 난 뒤, 나팔을 신호로 작업을 시작하였다. 두레는 농촌의 대표적인 풍경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대표적인 형태로 한국인들의 삶에 자리 잡고 있다. 이윽고 밤이 되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밤하늘의 별은 칠성신앙과 남극노인, 별자리 관련 신앙들을 만들어내는 근원이 되었고 전시장에는 이러한 신앙을 천문도天文圖,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 꿈풀이 책 등으로 보여주었다.
이렇듯 ‘한국인의 하루-여름’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여름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예년에 비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올 해 여름 일기예보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만 여름을 즐긴 옛사람들의 모습을 전시로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이 또한 즐거운 여름나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한 강화된 방역대책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은 아직 휴관중이다. 그러나, 빠른 시일 내에 더위마저 즐겨 이겨내던 선조들의 생활문화를 함께 둘러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오기를 기대 해 본다.
글 | 김희재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