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시기 우리 삶과 생활사를 기록한 사진, 영상, 음원 기록을 통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비단 과거의 한 장면뿐만이 아니다. 그 기록 안에는 사회와 문화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백 년 전, 50년 전, 30년 전 그리고 현재의 생활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 기록은 그렇게 세대 간의 연결과 소통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현재의 크고 작은 생활 기록을 남기는 것이 민속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아카이브 특별전 「아카이브 만들기」를 기획한 김형주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2018년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아카이브 만들기」에 대해 소개해 달라
김형주 학예연구사이하 김형주_이번 특별전은 2007년 출범한 국립민속박물관 ‘민속 아카이브’의 자료를 되돌아보고 정리하고자 ‘자료 수집 10년’이라는 주제로 준비했다. 지난 10년간 민속 아카이브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는 의미에서 준비한 전시다. 또한 우리 인생의 시기를 나눠 사진을 전시한, 전시 속의 전시인 ‘인생사의 풍경’을 준비해 관람객이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했다.
Q.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김형주_‘유물을 다루는 박물관이 왜 아카이브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민속학이 태동하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민속학자들의 ‘현장 조사’를 통해 수많은 기록물이 생산되어 왔다. 종이와 문서부터 사진, 영상, 음원 등 다양한 자료들을 생산해 연구 자료로 써온 것이 민속학계의 풍토였기 때문에 국립민속박물관 역시 그런 활용 가치 높은 자료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2007년 ‘민속 아카이브’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아카이브를 운영하는 것이 왜 필연적인지, 그리고 국립박물관 최초로 아카이브를 운영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싶었다.
또한 2020년 파주에 개관할 예정인 국립민속박물관의 개방형 수장고 및 정보센터의 중요한 기능 역시 ‘관람객의 아카이브 열람’이기 때문에 그 전 단계로 아카이브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전시 내에 ‘라키비움’이라고 해서 라이브러리, 아카이브, 뮤지엄 경험 요소를 혼합한 열람 공간을 꾸려 놓은 것도 어떤 형태의 아카이브가 관람객에게 가장 활용 가치 높고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 일종의 실험을 해 본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국립민속박물관 아카이브에서 최근 5년간 통계를 내 가장 인기 있었던 1등부터 5등까지의 자료를 그 공간에 구현해 놓았다.
Q. 이번 전시의 대표적 전시품을 소개해 달라
김형주_전시장 내 ‘라키비움’에 있는 헤르만 산더 사진첩을 꼽고 싶다. 국립민속박물관 아카이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자료이기 때문이다. ‘역대 가장 인기 많은 자료 1위부터 5위’를 전시한 것 중에 보물도 두 점이 있는데, 나는 보물보다도 이 헤르만 산더 사진첩에 의미를 두고 싶다. 2위는 한국전쟁 당시를 기록으로 남긴 찰스 버스턴의 사진이다. 1위와 2위가 모두 사진이라는 점에서 시각 자료, 특히 사진 자료의 힘에 대해 다시금 확인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1부에 소개된 사진 중 국립민족박물관 앞에서 촬영한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 선생의 사진을 꼽고 싶다. 국립민족박물관이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이기도 하고, 석사 논문을 석남 송석하 선생을 주제로 썼던 터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Q. 지난 10년간 수집한 1백만 점의 아카이브 자료 중 총 240여 점의 전시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김형주_국립민속박물관에서 유물을 분류하는 기준이 따로 있다. ‘용도 · 기능 · 분류’라는 것이다. 그 기준에 맞춰 사진 자료나 도서 자료를 분류하면 관람객이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자료 분류를 시작했다. 최종 전시된 2백40여 점의 자료 선정은 ‘관람객이 가장 공감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우리 삶이 흐르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관람객의 공감도도 높이고 ‘민속은 곧 우리 삶이며 문화다’라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2백40여 점을 최종 선정했다. 예를 들어 ‘돌잔치’를 사진 자료로 보여준다고 할 때 수십 년 전의 돌잔치와 2000년대 이후의 돌잔치 사진 자료를 함께 나열함으로써 생활사의 변화를 한눈에 보고 느끼게 한 것이다.
Q. 국립민속박물관 민속 아카이브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분들의 도움이 있었나?
김형주_국립민속박물관 아카이브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과거 몇 차례 기증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때 전시 준비를 위해 만난 기증자들과의 인터뷰, 자료 수집 같은 밑바탕이 있었기에 이번 전시의 큰 방향을 정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었다. 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일하다 보면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옆에서 지켜보면 항상 고생하는데 사진만 남고 정작 작가 자신은 가려지는 경우가 많아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었다. 그동안 함께 작업했던 사진작가 두 분께 인터뷰를 요청해 그분들이 국립민속박물관과 작업하며 쌓인 소회와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시에 반영할 수 있어 좋았다.
Q. 우리가 현재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것이 민속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
김형주_역사학의 입장에서 볼 때 예전에는 거시사만 역사로 인정하고, 미시사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학자들 사이에서 미시사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고 미시사를 통해 거시사의 오류도 잡아냄으로써 미시사의 의미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세대 간의 이해와 배려, 소통과 융합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 미시사의 힘이 아닐까? 자료가 언제 어떻게 쓰일지는 현재의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메모, 사진, 영상, 음원 등 수많은 자료가 모두 민속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박물관이 수행하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바로 이렇게 현 시대의 자료를 모아 놓고 다음 세대가 그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형주_1백만 점에 달하는 아카이브 자료를 혼자 살펴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년 전부터 이번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나를 포함해 스물서너 명의 아카이브 팀 인력이 격주에 한 번씩 모여 꾸준히 회의를 진행했다. 각각의 주제를 만들고, 그 주제에 맞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어떻게 찾고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합동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획자로서 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보람 있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Q. 이후 아카이브 관련 다른 전시를 기획한다면, 어떤 주제를 잡고 싶은가?
김형주_아카이브 자료와 유물과의 연계성을 가지고, 그 둘 사이의 시너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다. 예컨대 전시장에 유물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유물에 대한 아카이브의 다양한 자료를 함께 열람할 수 있게 해 관람객의 흥미와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말이다. 이번 특별전에서 라키비움을 통해 그 첫 번째 시도를 했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형주_무엇보다 많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박물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한다. 전시된 사진과 자료를 둘러보시면서 지나온 내 삶의 한 단면을 떠올리고, 옆 사람과 그 기억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기쁘겠다.
특별전 「아카이브 만들기」는 2018년 12월 5일(수)부터 2019년 3월 11일(월)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Ⅰ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