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흰옷 입기를 좋아하고 겨울에도 부채를 흔들며 턱 아래 구슬을 달고 있는(우리나라 풍속에 갓끈을 구슬로 한다) 것 등을 중국 사람들이 조롱하고 있다.”
문생門生들이 물었다. “턱 아래 구슬을 달고 있는 것은 마치 승려가 목에 염주念珠를 두르고 있는 것과 같으니, 선비가 사용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할까 합니다.” “그렇다. 중국 사람이 바로 이 점을 조롱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구슬갓끈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었다. 성리학을 개국 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 턱 밑에 주렁주렁, 염주 같은 구슬을 달고 다니는 사대부들의 모습이라니! 조선을 다녀간 중국 사신들은 그 광경을 보고 비웃음 가득한 글을 남겼다. 조선에서 이미 풍습을 이루었음에도 그는 결코 따르지 않았다. 조선의 유학자, 송시열宋時烈이었다.
옷감으로 짠 갓끈이 떨어져나갈 때를 대비해 무게감이 있는 구슬갓끈이 만들어졌다.
한여름이면 땀에 젖어 떨어지기 쉬운 까닭에
쓰개에 끈을 달았다면 그 용도는 대략 두 가지로 볼 만하다. 장식이거나 혹은 실용이거나. 만약 그 쓰개가 머리 위에 살짝 올려 쓰는 갓이라면 턱밑에 고정해 묶을 끈은 그야말로 ‘필수템’. 이렇게 본래의 쓰임에 맞게끔 갓 양옆에 옷감으로 만들어 꿰맨 갓끈을 ‘포백영布帛纓’이라 했다. 그런데 갓에는 포백영 외에도 끈이 하나 더 있었다. 모양도 재질도 사뭇 달랐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쓴 이익李瀷에 따르면 그 끈을 하나 더 단 것은 ‘옷감으로 짠 갓끈이 한여름이 되면 땀에 젖어서 떨어지기가 쉬운’ 탓이었다. 행여 포백영이 떨어져나가더라도 갓이 벗겨지는 망측한 일을 막을 수 있도록 적당한 무게감을 가진 또 다른 갓끈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담백하게, 오로지 실용을 위해 만든 구슬갓끈의 전형을 사람들은 ‘연자영’이라 했다. 연못 속 연밥에서 얻은 흔한 열매, 연자를 엮어 만든 끈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렁주렁 턱밑으로 늘어뜨리는 끈을 주영珠纓, 즉 구슬갓끈이라 불렀다.
호박 갓끈이 아니면 쓰지를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슬갓끈 또한 달라졌다. 각양각색 재료를 쓰면서 생긴 일이었다. 구슬처럼 꿸 수 있는 게 어디 연자뿐이랴. 호박琥珀과 거북 등껍질 대모玳瑁 · 자수정紫水晶과 금 · 은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보화가 사대부의 턱밑을 장식할 재료로 발탁되었다. 소박하고 엽렵한 연자와 대나무 따위를 엮어 걸던 구슬갓끈은 이제 어떤 보석으로 만드는가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조선 사대부들의 최신 유행 품목이자 사치품’으로 떠올랐다. 한 번 높아진 눈은 낮아질 줄 몰랐다. 갓끈으로 사치하는 사대부들이 늘어났고 조정 대신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다 못한 정조正祖가 “호박 갓끈은 당상관이 쓰는 것인데, 요즘 사치 풍조가 나날이 심해져서 문관 · 음관 · 무관이나 당상관 · 참하參下를 막론하고 호박이 아니면 쓰지를 않는다”며 질책했다. 곧 당하관들에게는 자마노와 자수정만 갓끈으로 쓰라는 명이 내렸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고 마침내 이익이 “후세에 와서 호박 · 대모 · 수정 · 금패 따위로 만든 갓끈을 갖지 않은 이가 없으니, 날로 사치해진다”고 통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금은보화로 꾸민 갓끈의 쓸모는 그저 사치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손쉬운 환금성을 담보로 뇌물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갓끈은 크기가 작지만 경제적 가치는 높고 게다가 남의 눈을 피해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이점을 가진 물건이었다. 구슬갓끈을 좋아하는 사대부와 조정 관리들에게 그것은 아주 적절한 뇌물이 될 만했다. 조정 관리들의 뇌물 사건에는 어김없이 구슬갓끈이 등장했고 뇌물 공여 및 취득에 따른 ‘장오죄贓汚罪’로 처벌되는 일 또한 끊이지 않았다. 구슬갓끈에서 어느덧 실용의 의미는 퇴색하고 사치스런 물건이라는 오명만 들러붙고 있었다.
일부 사대부는 호박, 대모 등으로 만든 호화로운 구슬갓끈으로 신분과 재력을 드러냈다.
실용과 사치, 그리고 동일시와 차별화
구슬갓끈의 시작은 갓을 온전히 고정해 쓰기 위한 목적, 즉 실용에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사치의 전형으로 낙인찍혔고 그때부터 실용을 벗어난 사치로, 그 진로를 달리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 옛 것을 넘어선 듯 열렬히 환영 받으며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따르면 그를 일컬어 유행이라 한다. 흥미롭게도 유행 뒤에는 참으로 다른 두 가지 속성이 자리하고 있다. 남과 같고자 하는 마음, 그럼에도 또한 다르고자 하는 욕망. 실용과 사치가 한 물건에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유행이 가진 속성과도 비슷하다고 말하겠다. 때론 하나의 물건이 실용적이면서도 충분히 사치스러울 수 있다. 단, 그때의 실용은 담백한 쓰임 그 자체와는 미묘하게 다른 맥락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조선시대, 그들의 턱밑에 자리했던 그 구슬갓끈처럼.
참고문헌
송시열,「송자대전宋子大全」
이익,「성호사설星湖僿說」
「정조실록正祖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