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흑백영화 <동주>는 제목 그대로 윤동주강하늘에 관한 영화다. 하지만 단순히 시인 윤동주만을 조명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동주>는 만주에서 순수하게 시인의 꿈을 품었던 윤동주와 극렬하게 불합리한 세상에 저항해 이상적인 세계를 꿈꾼 송몽규박정민에 관한 영화다. 한 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라났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을 묶은 건 문학적인 소양이었다. 하지만 윤동주에게 문학이 인생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이상이었다면, 송몽규에게 문학이랑 세상을 갈아엎을 수 있는 쟁기 같은 수단이었다. 그리고 <동주>는 서로 다른 시점으로 시대를 바라본 두 사람이 결국 어떻게 유사한 운명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는가를 살피는 영화다.
<동주>는 1943년 일본 후쿠오카 교도소에 수감된 윤동주가 일제의 고등형사로부터 취조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구체적으로는 송몽규와의 관계에 대해 추궁 받는다. 송몽규와 민족주의자로 연합해 무장봉기를 계획했다는 혐의에 관한 취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함께 자란 만주 북간도 용정의 1935년으로 플래시백된다. 한 집에서 태어나 둘도 없는 형제처럼 자란 두 사람이 문학에 재능이 있고 뜻을 품었던 청소년 시기를 거쳐 경성의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이 취조과정에서 질문을 받게 되는 윤동주의 현재 시제 사이사이로 답변처럼 나열된다. 그 과정에서 윤동주가 남긴 다양한 시어들이 그의 인생을 위한 수식어로 함께 읊어져 윤동주의 시에 깃든 그의 인생을 아련히 되새기게 만든다.
알다시피 <동주>는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길이 없는 영화다.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기 불과 6개월 전이었다. 송몽규 또한 3월 7일에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송몽규는 죽음 직전 교도소로 면회를 온 가족에게 윤동주의 죽음을 알리고, 자신 역시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리고 죽음의 이유가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라 알린다. <동주>는 그 죽음을 부각시켜 울음을 부추기는 대신 그들의 생을 둘러싸고 있었던 시대의 공기를 천천히 되짚으며 극적인 온도를 높여 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시인이 되길 꿈꾸며 시대 속을 전전했던 윤동주와 시대적 혁명과 민족의 독립을 꿈꾸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려 했던 송몽규가 각자 품었던 꿈과 함께 살았던 시대를 조명하고 재현한다.
비극적인 결말을 예감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지만 전반적으로 우울하기만한 작품인 것은 아니다. 청운의 꿈을 품은 두 사람이 북간도 용정에서 경성으로, 그리고 도쿄에서 교토로 결국 후쿠오카 감옥으로 가기까지, 그 과정에서 주로 주목할 수 있는 건 좌절이나 패배가 아니라 의지와 열망이기 때문이다. 윤동주에게 있어서 송몽규는 넘어서고 싶은 산이면서도 따라 흐르고 싶은 강이다. 송몽규에게 있어서 윤동주는 띄워 날리고 싶은 연이면서도 함부로 깨질까 걱정되는 유리다. 두 사람은 같은 곳에 누워있지만 다른 꿈을 꾸기 때문에 서로에게 마음을 쓸 수밖에 없는 관계로 거듭난다.
무엇보다도 윤동주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날카로운 창처럼 세우고 일제의 억압에 극렬히 저항하려 하는 송몽규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시상이란 것이 도태된 낭만에 불과하다는 허무를 느낀다. 반대로 송몽규는 윤동주의 순수한 꿈이 작금의 시대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깊이 염원한다. 두 사람은 각각 서로의 현실에 반하는 꿈을 품은 존재들이지만 한편으론 자신들의 꿈을 존재하도록 이끄는 이상이기도 하다. <동주>가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인 건 그래서다.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린다는 건 그 시대가 당대의 청춘들에게 부과했던 필연적 비극을 되짚는 여정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동주>는 인물의 내면과 서사에 집중하는 영화이지만 한편으론 시대 속에 깃든 다양한 풍경을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930년대부터 해방 직전인 1945년도까지의 시대상을 재현한 <동주>의 주된 무대는 만주와 경성 그리고 일본까지 세 장소로 나뉜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태어나 살았던 북간도 용정과 경성에서 재학했던 연희전문학교와 하숙집, 그리고 유학생활을 했던 도쿄와 교토의 대학과 자취방, 마지막으론 후쿠오카 교도소까지. 그 중에서 북간도 용정은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에서 촬영했는데 강원도의 북방식 한옥들이 고즈넉하게 자리한 풍경은 <동주>의 흑백영상 속에서 윤동주와 송몽규의 어린 시절이 깃든 북간도의 풍경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한편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의 윤동주와 송몽규가 창씨개명을 독려하는 춘원 이광수를 보며 서있는 장면은 연희전문대학의 역사를 이어받고 있는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촬영됐다. 1920년대에 지어진 근대식 건축물인 아펜젤러관과 언더우드관, 스팀슨관은 윤동주와 송몽규가 자리했던 그 시대를 여전히 기억하는 역사적 공간이란 점에서 영화적 배경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영화상에서 송몽규는 윤동주와 함께 한글 잡지를 만들어 민중을 계몽하려 한다. 하지만 일제는 학교에서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한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시절 문화적인 말살을 강행하는 일제에 맞서 문인들은 잡지를 간행했다. 특히 1939년에 창간한 <문장>은 이태준과 이병기 그리고 <동주>에서도 등장하는 시인 정지용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문예지였다. <문장>은 한글신문들이 차례로 폐간 당하던 1940년대까지도 한글 사용을 고집하며 끝까지 버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문화적 선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를 주도했던 정지용은 한때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윤동주가 도쿄의 릿쿄대에서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한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시샤 대학에는 정지용의 <압천>과 윤동주의 <서시>가 각인된 시비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지식인들은 일본 유학 생활을 하면서 문화적 외연을 넓혔지만 한편으론 고국에 대한 향수를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은 일본 유학 후 고국으로 돌아와 지은 시인데 일본 유학을 통해 더욱 짙게 체감한 민족적 그리움이 잘 표현돼있다.
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에서도 정지용 시인과 유사한 감정이 읽힌다. 일단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시구에서의 육첩방은 다다미 여섯 장이 바닥에 깔린 크기의 방을 의미한다. 일본의 전통 가옥에 자리한 다다미방이 그의 시에 등장하는 건 실제로 그가 일본 유학 시절에 느낀 감정을 시에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창씨개명이 의무화된 이후로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일본 유학을 제안한다. 어차피 조선땅에 남아 있는다 해도 일본 이름을 달고 일본말로 일제가 정한 교육을 받아야 하니 차라리 일본 본토로 건너가 공부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인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교토 제대 입학시험에 응시했으나 합격한 송몽규와 달리 불합격한 윤동주는 도쿄의 릿쿄대로 진학했다. 하지만 군국주의적인 강압이 강했던 릿쿄대학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편입해 송몽규와 재회한다. 일본에서 겪은 이런 일련의 과정은 윤동주에게 이상의 상실과 현실의 환기로 다가온다.
사실 윤동주는 시대에 극렬하게 맞선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시 역시 민족적 저항을 희망하거나 시대적 변화를 이끌어내길 촉구하는 뜨거운 시가 아니다. 민족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적 야만에 대한 슬픔과 그런 시대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무력감과 죄책감을 드러낸 사적인 수기에 가깝다. 웅변이 아닌 고백인 셈이다. 그런 윤동주가 민족주의자로 낙인 찍혀 죽음을 맞이했던 건 그의 순수한 재능이 살아남기에는 잔인한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시대에서 태어난 것이 어쩌면 비극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윤동주의 시는 일제 치하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윤동주의 시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6년에서야 시집으로 출간됐다. 그 시집이 윤동주의 유일한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젊은 시인은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부끄러워 참회했고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며 반성했다. 그래서 <동주>를 통해 누구보다 시를 쓰고 싶었고 그 마음이 부끄러웠던 젊은 시인의 가혹한 시절을 편히 앉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필연적으로 숙연한 마음을 품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차가운 겨울 새벽 공기처럼 마음이 깨는데 깊은 구석에서 일어나는 불길을 마주보는 듯한 감상이 남는 일이다. 그야말로 ‘영화가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처럼 느껴지는, 실로 슬픈 이야기인데 이리도 맑고 고울 수가 있나 싶어 진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동주>는, 이 영화는.
영화 저널리스트이자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와 세상만사에 관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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