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일까? 힘들 때는 든든한 응원군이 되고, 슬픈 때는 위로가 되는 사람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 부담과 걱정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쩔 때는 한없이 밉기도 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가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 의미와 형태는 조금씩 변해왔을지 몰라도 가족이라는 가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족의 시대상과 문제들을 고찰해온 김광호 EBS 다큐멘터리 PD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에는 직업선택의 기회가 많았다. 기자가 되고 싶던 청년은 EBS에 지원했고, 영상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예능프로그램, 눈에 띄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2005년 《60분 부모》를 제작하게 되면서 삶의 방향 자체가 달라졌다.
“‘60분 부모’는 요일별로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육아, 교육, 가족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정말 놀랐고, 후회스러운 감정도 들었습니다. 미리 알고 준비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못 배웠을까 한탄스러웠죠. 당시 2~3살 정도였던 아이와 문제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더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돈 벌어오는 기계라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아이가 아빠를 향해 달려와 볼에 뽀뽀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오히려 자신을 어색해하는 아이를 발견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갈수록 ‘아내가 아이를 잘 키우겠지’, ‘난 돈을 벌어오니까’라고 합리화하게 됐다.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아빠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60분 부모’에서 배운 대로 아이와 눈을 맞추고 놀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금방 관계가 좋아지더라고요. 하지만 금세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은 좋은데 훈육이라는 축이 무너진 것이죠. 프로그램에 나온 부모와 아이들은 특별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그들과 똑같았습니다. 누구나 겪고 있고,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자신의 문제를 푸는 것이 곧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 가족 안에서 겪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다보니 《마더쇼크》, 《파더쇼크》, 《가족쇼크》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다. ‘왜 유독 요즘 가족은 이렇게 서로를 힘들어할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가족들이 겪는 문제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직도 가족이 혈연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중요한데 이를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요. 부모, 자식 간에도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 사람 간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을 먼저 점검하죠. 하지만 가족 내에서는 상대방이 바뀌기만을 바랍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놀랄 정도로 모르면서 말이지요.”
그는 많은 강연을 통해 가정 내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부모들을 만난다.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에게 책 한권을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아이의 밥상》을 고른다. 하지만 사실 《마더쇼크》나 《파더쇼크》를 골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엄마로서, 아빠로서의 자신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엄마는 아이의 식습관을 고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 둡니다. 그런데 유치원과 집 안에서 관찰카메라를 통해 아이를 보니 놀라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이가 친구들의 먹는 속도를 계속 체크하는 거였죠. 아이에게는 먹는 것이 곧 인정을 받는 일이었던 겁니다. 끊임없이 엄마가 아이가 밥은 잘 먹는지, 골고루 먹는지 확인하고 질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가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은 곧 엄마의 불안과 맞닿아있습니다.”
현 시대 엄마들의 불안은 세 개로 정해진다. 첫 번째는 책에서 배운 대로 안 된다, 두 번째는 지금의 육아방식이 불안하다, 세 번째는 다른 엄마들은 잘하는데 자신만 못하는 것 같다이다. 아빠들의 경우는 ‘혼란’으로 규정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자신의 불안과 혼란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책을 보고 배우려고 하지 말고 아이 자체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애착관계입니다.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훈육도 되지 않습니다. 훈육은 아이의 행동에 제한선을 두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애착을 먼저 쌓고, 제한선을 정하라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면 아빠와 15분 동안 놀면 그만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하는 것이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착과 훈육은 철저히 아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대가족 형태였던 이전 세대에서는 함께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는 이웃에게서 육아를 배웠다. 즉, 공동체 관계 속에서 육아와 가족의 역할에 대해서 습득한 것이다. 그러나 핵가족이 된 지금은 아파트에 살면서 아빠, 엄마, 아이로 구성된 가족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가족, 즉 공동체라는 가치는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는데,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있습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함께 한다는 것에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면서 가족이라는 관계를 형성해온 것이죠. 이러한 가족의 가치는 우리의 몸에 가장 잘 맞는 옷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서양식만 추구합니다. 어느새 가족 내에서도 개인주의를 중요시하고 있지요. 가족 내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선조들이 잘 지켜온 가족이라는 가치를 지금 어떻게 되살리느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가족관계에서도 지식이 경험을 대체했다고 지적한다. 아이가 배탈이 났을 때 할머니가 손으로 배를 어루만져주고,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애착관계를 형성해오던 경험들은 지금 시대에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전통적인 방식들을 등한시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시대별로 ‘관계’라는 게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다뤄보고 싶습니다. ‘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조부모의 관계, 골목에서의 관계, 공동체 내에서의 관계 등을 이야기해본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가족의 방향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족의 형태가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의 관계는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가치일 것이다.
EBS 《60분 부모》, 다큐프라임 《아이의 밥상》, 《내 아이의 전쟁, 알레르기》, 《마더 쇼크》, 《파더 쇼크》 등 우수한 육아,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출했다. 자타 공인 부모 교육 전문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호흡하는 베테랑 피디다. 2005년 《60분 부모》로 한국방송대상, 2008년 《다큐프라임 조선의 프로페셔널 – 화인畵人》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11년 《다큐프라임 – 마더쇼크》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남녀평등상, YMCA 선정 좋은 방송대상, 2012년 《다큐프라임 – 오래된 미래, 전통육아의 비밀》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