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天文을 주제로 다양한 과학문화재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진 최고의 도록이다!” 이 도록은 전통천문학에 대한 방대한 과학문화재들에 대하여 고화질 자료로 모아서 풍부한 해설을 바탕으로 작성된 전통과학 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역사 사료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책은 ‘천명天命’, ‘하늘을 기록하다’, ‘하늘을 궁리하다’, ‘하늘에 담은 꿈’으로 총 네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하늘을 기록하다’와 ‘하늘을 궁리하다’에서는 여러 가지 천문관측기기, 해시계, 천문도, 물시계에 대한 정보와 연구 성과 등을 수록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통과학과 서양과학이 서로 융합되어 제작된 「혼천시계」, 「신법천문도」, 서양식 해시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소개한다. 전통천문학 연구자로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여러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혼천의를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여 당시 관람객들에게 벅찬 감동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도록 자료집을 통해 유물에 대한 정보를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혼천의」는 동서양에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우주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우주 모델에는 별들의 운행, 태양과 달의 운행, 오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운행을 알 수 있어 당시 우주 질서의 원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였다. 시대가 흘러 「혼천의」 가장 안쪽에는 직접 천체별, 해, 달 등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구가 장착되기도 했다. 이 기구는 마치 오늘날 망원경의 경통과 같이 천체들의 위치를 쳐다보면서 그 위치를 눈금으로 읽었다. 이후 혼천의는 물의 동력으로 운행하거나, 추동력으로 운행하는 기술이 결합되어 시계장치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완형으로 남아 있는 「혼천시계」국보 제230호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천문도나 옛 서적에 담겨 있는 별자리를 보면 그 모습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르다. 간혹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옛날 별들과 오늘날 보는 별은 다른 거죠?”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닙니다!” 별도 사람들처럼, 태어나고, 젊은 청년시기를 보내고, 다시 노년시기를 보내고, 죽는다. 즉, 별들도 새롭게 생성되고, 폭발하여 없어지는 것. 그런데, 이 과정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태양의 수명을 보통 100억 년이라고 본다. 이런 수치로는 상상이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쉽게 말해 지금 우리가 보는 하늘은 조선 시대, 아니,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 사람들이 보았던 하늘과 똑같다. 즉, 과거의 별들과 오늘날 보는 우리가 보는 별은 같은 별이다. 물론 그 중에 몇 몇 별들은 일부 사라지거나 태어난 별이 있을 수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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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남계총성도> 조선 후기에 그려진 황도남계 별자리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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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 숙종 대에 만들어진 천문도를 탁본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상열차분야지도>국보 제228호를 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별들이 있다. 그것은 별과 별을 연결해 표현하는 별자리 형태로 인한 것이다. 조선 시대의 별자리는 정치사상과 관련한 별자리로 구성되어 있다. 임금이 사는 공간인 북극 주변을 자미원紫微垣, 나라의 관리가 일하는 관청이 있는 태미원太微垣, 백성들의 삶의 터전인 시장이 있는 공간인 천시원天市垣, 그리고 그 주변을 28개 구역인 28수宿로 구분한 영역을 기준으로 별자리를 구성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이 배우는 별자리는 국제천문연맹IAU에서 정한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름에서 따온 88개의 별자리다. 재미난 것은 북두칠성UMa과 오리온 별자리Ori, 전통사회에서는 ‘삼수參宿’로 부름의 형태는 오늘날의 별자리와 거의 같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모든 천문관측 행위가 오늘날처럼 과학을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물론 자연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관측을 하고, 계산하고, 예보하는 행위는 과학적 행위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천상의 움직임을 인간사와 연결해 ‘길흉화복’을 예측하여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기회로 여기려는 목적도 있었다. ‘길흉화복’에 대한 것은 민간 사상뿐만 아니라 백성을 통치하는 제왕에게도 항시 고려의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측과 정밀한 관측을 위한 노력은 조선시대 국초에서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특히 일월식에 대한 예보는 조선왕조의 정통성과 국가통치 수단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행위였다.
국가통치를 위한 중요한 수단은 천문관측을 통한 시간의 관리라고 할 수 있다. 세종 16년1434 7월 1일을 기준으로 새롭게 운영되는 「보루각루報漏閣漏」‘자격루’라고도 부름는 국가표준시계로서의 역할을 했다. 기존에 사용한 물시계도 있었으나, 여러 가지 부품을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성하고, 과학기술을 집약해 만든 첨단 시계였다. 장영실은 자격루가 완성된 뒤, 4년 후에 세종을 위해 「흠경각루欽敬閣漏」‘옥루’라고도 부름라는 왕실 물시계를 제작한다. 이 때 제작한 자동 물시계는 당시까지의 첨단기술을 집약한 조선 최고의 기술이 투입된 천문시계였다. 아쉽게도 이 「흠경각루」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다행인 것은 중종 31년1536에 제작된 「자격루」국보 제 229호의 물시계 부분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지난 2005년, 연구를 통해 자동시보장치가 복원되었다.
조선 초기 국가에서 관리한 시간정보는 조선 후기에 들면서 백성들이 직접 제작하고 사용하는 다양한 해시계로 발전한다. 「양천척量天尺」이라는 나무해시계가 등장하거나 부채 끝에 매달아 간편하게 시간을 살피는 「선추扇錘 해시계」 등이 통용된다. 또한 「양경규일의兩景揆日儀」, 「휴대용앙부일구」 등이 관청이나 고위직 신분층에서 사용되었다. 시계의 사용과 활용은 더 이상 국가의 통제가 아닌, 일반 백성들도 자유롭게 사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휴대용 나침반 겸 해시계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천문天文: 하늘의 이치·땅의 이상>에서 소개하고 있는 과학문화재는 고인돌의 별그림으로부터 조선후기의 민간인들이 사용한 해시계, 민속과 관련된 천문 사료까지 다양한 천문 유물과 연구 성과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전통천문학을 연구하고 우리의 과학문화재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이 도록집의 가치와 평가를 말한다면, 오랜 기간 소장하고 보고 싶은 역사 사료와 같은 소중한 존재라고 전하고 싶다. 또한 유물에 대한 최근 수집 내용과 연구 성과 등을 바탕으로 두 번째 ‘천문天文’전시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글_ 김상혁 박사 | 한국천문연구원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충북대학교에서 POTS-DOCTOR 연구원을 지냈고, 문화재청 일반 동산문화재 과학기술분야 감정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천문의기 복원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선시대 간의대의 배치와 척도에 대한 추정」, 「흠경각루의 내부구조에 대한 연구」 등의 주요 연구 논저와 《국보 제230호 송이영의 혼천시계》, 《천문을 담은 그릇》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