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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늘 기록법, VR

커다란 고글을 쓰고 두리번대는 모습, 요즘 부쩍 많이 보았을 거다. 고글 안에는 낯선 세계가 마치 현실처럼 360도, 경계나 한계 없이 펼쳐져 있다. 이것이 가상현실, 즉 VRVirtual reality이다. 이 기술이 반가운 것은 한 자리에 고여 있는 삶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시대를 초월하여 미래와 과거를 넘나들고픈 현대인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우리의 기록들을 눈 앞에 풀어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가상현실과 민속의 기록, 카이스트의 우운택 교수를 만나 들어보았다.
 
 

기록자의 관점을 흡수한
있는 그대로의 기록 ‘VR’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순간들로 이뤄져 있다. 스마트 기기의 알람 소리로 아침을 시작해 다시 스마트 기기로 전자책을 보다가 잠드는 일과 중 어떤 것을 골라 2016년의 오늘로서 남겨두어야 할까. 그리고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기록해야 할까. 글? 아니면, 사진?
 

“삶이 다채로워지면서 기록 매체도 함께 발달했습니다. 글에서 그림으로, 사진으로, 비디오로. 이제는 그것을 넘어선 상태예요. 최근에 보급되고 있는 360도 촬영기기와 기술은 VR의 초입과도 같은 단계입니다. 과거의 기록 방식이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좌지우지 되었다면, 360도 카메라는 찍는 사람의 의지와는 큰 관련이 없어요. 현장을 가감 없이 기록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원하는 정보를 취하고 알아서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사건 현장이나 사회 현상을 기록하기 위해 현장에 360도 카메라 한 대만 두겠다는 얘기이다. 360도 카메라가 묵묵히 현장을 촬영하고 있는 동안,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은 그 카메라를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을 더 가까이 당겨 보거나 다른 각도로 살펴볼 수 있고, 스스로 그 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사고현장을 각자의 관점대로 촬영하고 편집해 방송으로 송출하는, 거기에 편집자나 사회자의 개인적 의견이 첨가된 그런 주입식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이런 방식의 기록이라면 기록자의 관점과 관계없이 현상이나 현장을 기록하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유용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 사람이 항상 따라다니면서 손으로 적었던 것이 기술로 대체되고, 편견 없는 시점을 전제하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러한 객관성은 민속 아카이브를 남기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VR로 현재를 기록한다면, 훨씬 사실성 높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는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복원해낼 수도 있습니다. 이를 정확히 ‘복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그 상상력을 도울 수는 있을 거예요. 이것을 공유했을 때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상상력에 얼마만큼 몰입시킬 수 있을 지가 관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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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을 스마트 기기를 통해 보면 이러한 형태로 보인다. 고글 등의 추가 기기를 사용하면 더욱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상현실 체험이 가능하다.

 
 

보여주는 것의
뒷면까지 보여주는 전시

 

그렇다면 박물관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현재 기술의 수준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박물관 콘텐츠에 대해 우운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전시실에서는 대체로 시청각 중심의 전시가 주를 이루는데, 360도 카메라로 유물을 촬영한다면 단순히 유물의 보여지는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각도로 조정해가면서 매우 입체적으로 유물을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손을 댈 수 없는 중요한 책이라 해도 VR을 통해서라면 책장을 넘겨보고, 책등, 책 뒷표지 등 보기 힘들었던 부분까지 세밀하게 볼 수 있죠. 더 많은 정보를 사실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전시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스마트 기기와 애플리케이션만으로도 유물을 실제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한다면 박물관에서 유물을 관람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시대 속을 살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저잣거리가 눈 앞에 펼쳐지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 관람객은 거리를 걷기도 하고, 상인들이 팔고 있는 물건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어쩌면 상인과 흥정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당장 이루어질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그 때가 올 것이다.
 

“앞으로 소리, 촉감, 냄새, 맛 등의 기록도 가능해질 거예요. 사실 대중화가 되지 않았을 뿐, 이미 이 기술은 개발되어 있어요. 전시 기법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합니다. 강원도의 안개 낀 모습과 그 현장의 바람, 냄새 등도 느낄 수도 있어요.”
 

그 수준으로 비교한다면 단순해 보이는 시각과 청각을 이용한 VR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매우 크다. 우리 두뇌는 생각보다 단순한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이 원리를 적절히 응용하면 공포영화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것보다 열 배 이상 큰 공포감을 얻을 수도 있다. 박물관이라면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셈이다.
 
 

상상력과 기술력이 균등히 반영될 때
기술은 더 발전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시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다. 전시가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VR은 국립민속박물관의 목표와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전시 기법일 수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기록 작업이 ‘현재’를 포함한다면, 모든 장치의 기술을 동원해서 현실과 똑같이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과거의 것 중에서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또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후 기술을 선택하면 되죠. 기술은 준비가 되어있어요. 다만, 우리는 현재의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해 있는지 잘 알지 못할 뿐이에요.”
 
우운택 교수는 이 모든 것들이 실현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소통’으로 꼽았다.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전시 기획자가 기술적인 면에 취약한 것은 당연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 기술이 어디에 적용되면 좋을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자 떠 있는 섬 같은 그 간격을 줄여야 한다고, 우운택 교수는 강조했다.
 
“기술 적용에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다면 더 좋은 기술이 개발될 수 있어요. 현재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문제는 없지만, 그것을 더 개선해 나간다면 더욱 높은 수준의 기술이 개발될 것이고, 이것은 기록 분야에서도 전시 분야에서도 훨씬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과거로 타임머신 여행을 떠나고, 가만히 앉아 전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그 미래에 이미 우리는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가상 세계가 현실감 넘친다고 해도, 실제의 유물, 풍습, 삶이 주는 감동을 따라갈 수는 없다. 다만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도구로서 VR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기술임은 분명하다. 이 기술을 토대로 기록자의 편견 없이, 가감 없이 기록한다면 미래가 가질 수 있는 민속은 훨씬 더 풍성해 질 것이다.
 
 

우운택 |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2001년부터 ‘혼합현실’ 분야의 연구를 진행해 국내외 증강현실 기술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현실과 가상 환경을 융합하여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증강휴먼연구센터에서 연구팀을 이끌고 있으며, 한국HCI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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