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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3

2023 경운박물관 K-museums 공동기획전 《소색비무색, 흰옷에 깃든 빛깔》

경운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K-museums 공동기획전 ≪소색비무색素色非無色, 흰옷에 깃든 빛깔≫을 개최하였다. 경운박물관은 경기여자고등학교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우리나라 근세 복식문화 전문박물관을 지향하며 2003년에 문을 열었다. 경기여자고등학교 동문의 봉사로 운영되고 있으며 여든이 넘은 선배부터 10대 학생들까지 함께 즐기는 창조적인 공간이자 지역주민과 연구자에게 우리의 우수한 복식문화를 소개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운박물관은 전시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지역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고자 2023년 K-museums 공동기획전에 지원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과의 협업을 통해 폭넓은 시각과 전문성을 갖춘 복식 전시를 선보일 수 있었다.

전시장 모습

천연 섬유로부터 얻어진 빛깔, ‘소색素色
이번 전시는 경운박물관 개관 20주년을 맞이하여 본 박물관 소장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색 복식 유물을 통해 천연 섬유로부터 얻어진 빛깔, 소색을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와 더불어 2016년 국립민속박물관 ≪때, 우리 삶에 스민 색깔≫의 ‘하양=백白’을 심도 있게 확장한 전시로 백색 옷을 즐겨 입은 우리 민족의 복식 문화상과 백의白衣의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삼국지』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문헌 기록에서 우리 민족이 백의를 선호한 습속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여행기를 비롯해 1927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의 복장』에는 조선인 복식의 80%가 백의라는 조사 결과도 확인된다. 하지만 백의는 문자 그대로의 인위적인 백색 옷이 아니라 모시, 대마, 목화, 누에고치 등 원료가 지닌 천연의 색, 소색 빛깔 옷을 말한다. 소색의 ‘素’자는 바탕, 근본이라는 뜻이 있으며 원료 본연의 색상으로 만들어진 백의는 조선의 백자와 같이 단조롭지만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한 우리 민족의 미감을 담고 있다.

1부. 소색의 근원, 자연이 준 선물
바탕, 근본이라는 뜻을 가진 소색을 안내하고 백의는 소색 원료로 만들어진 복식임을 전달하고자 한다. 직물의 가장 원초적 형태인 태모시, 삼 껍질, 누에고치, 목화 등 섬유의 원료를 품종별로 진열하여 원료 본연의 빛깔과 질감을 관찰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와 함께 다양한 소색 직물을 전시해 투박한 옷감과 정세하고 투명한 옷감에서 느낄 수 있는 소색의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원료가 지닌 성질이나 실을 만드는 가공 과정, 실의 굵기, 조직 구조에 따라 다양한 소색 질감과 빛깔을 얻을 수 있으며 햇빛에 자연스럽게 탈색되거나 반복적인 세탁으로 인하여 순백색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원료 이해를 위해 동·식물성 섬유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사진과 옷감에 스며있는 각종 무늬 영상을 함께 선보인다.

2부. 우리 옷에 깃든 소색
옷감 본연의 빛깔과 재질이 돋보이도록 장식을 줄이고 ‘자연의 미’를 살린 소색 한복들로 구성하였다. 자연이 준 색상, 섬유 본연의 빛깔로 만들어진 우리 옷은 ‘검이불누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의 정석을 보여준다. 왕실과 황실에서 착용한 끌림 치마와 속바지가 투명하게 비치는 착장, 치마를 휘감아 입은 착장 등 조선시대 혹은 대한제국 시기 흑백사진에 담긴 착장을 연출하여 우리 민족이 즐겨 입은 백의의 소박하고 기품 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모시, 삼베, 무명 등 다양한 소재와 조직으로 만들어진 여성 저고리와 직물사적으로 희소성이 높은 남성 모시항라 저고리를 함께 배치하여 남녀 저고리 형태와 성격을 비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 외에도 완순군 이재완完順君 李載完, 1855~1922의 삼베 단령을 통해 조선 말기 의복 간소화가 반영된 관복 형태를 엿볼 수 있다.

“일본 남자들의 탁한 회색 옷들 사이로 한국 촌로들의 눈부신 흰옷이 섞어 들기 시작했다.
이 흰옷은 먼지나 오물이 묻어도 햇빛처럼 밝아서 어디서나 특이한 친근함을 자아낸다.”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 『고요한 아침의 나라(Im Lande der Morgenstille)』 1915년 방문

 

3부. 소색의 변주
오행을 바탕으로 백색과 조화를 이루는 흑색 복식을 소개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색채는 다섯 방위의 색, 오방색 원리가 적용된다. 서로 생기와 활기를 북돋아 주는 상생 관계의 백색과 흑색 조합은 우리 복식문화에도 자주 확인된다. 쓰개 혹은 옷에 흑색 가선을 둘러 상생, 중화의 기운을 반영하거나 때를 가려 상중喪中에는 백립, 백사모, 백색 신발을 착용하고 평상시에는 흑립에 백색 두루마기를 입는 등 백색과 흑색 조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조선 말기 성리학자이자 국권 회복에 힘쓴 간재 전우艮齋 田愚, 1841~1922의 흑색 복식 위용과 저고리, 두루마기, 전복, 쓰개를 통해 다양한 흑색 복식 질감과 빛깔을 담아보고자 하였다. 전시장에서는 ‘화성능행도병풍華城陵幸圖屛風’,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 1820~1898 사진’ 등 조선시대 그림과 근현대 사진을 활용해 만든 영상을 상영하고 있으며 백의민족으로 불린 조상들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소색 복식 유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3D 가상 착장 시뮬레이션 영상으로 준비하여 현재에도 우리가 멋지게 입을 수 있는 친근한 옷임을 알리고자 하였다. 경운박물관 개관 20주년과 연계하여 디지털 공간과 로비에서는 경기여고 동문의 적극적인 기증과 자원봉사로 일구어낸 경운박물관의 발자취와 역대 전시, 소장품을 담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소색비무색素色非無色, 흰옷에 깃든 빛깔≫ 공동기획전은 저고리, 두루마기, 쓰개 등 190여 점의 다양한 복식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2023년 12월 30일(토)까지 경운박물관에서 진행된다. 현대인들은 플라스틱이 원료인 폴리에스터 등 관리가 편한 화학섬유를 선호하고 화학염색이나 과잉생산으로 발생한 쓰레기가 여러 환경문제를 초래한다는 기사를 더러 접하게 된다.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요즘,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에서 얻어진 원료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색상과 우아함을 표현할 수 있음을 전달하고 우리의 패션 소비 습관을 돌아보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글 | 문희원_경운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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